후계자 ‘밥그릇’도 무럭무럭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1.1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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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그룹 2, 3세 경영인 지분 변화에서 대림·일진그룹·대신증권의 상승률 눈에 띄어

▲ 지난해 말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모인 재계 총수들. 2, 3세 경영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연합뉴스

재계의 경영권 승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은 최근 4년간 재벌가 2, 3세 지분율 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주요 그룹들은 그동안 증여나 상속, 계열사 간 합병 등을 통해 오너 자녀들의 핵심 계열사 지분을 늘려놓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거액의 증여세나 상속세를 물었으나 몇몇 그룹은 편법 승계 논란에 휩싸여 눈총을 받고 있다.

<시사저널>이 재계 전문 사이트 ‘재벌닷컴’의 ‘50대 그룹  핵심기업 지분율 변화’ 자료를 넘겨받아 분석한 결과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해욱씨가 지분율을 가장 많이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현재 대림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 32.12%를 보유하고 있다. 연말 인사에서 이 회사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 사실상 경영권을 넘겨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해욱씨의 등극을 둘러싸고 뒷말이 적지 않다. 지분 이전 과정에서 편법 승계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림 이사회는 지난해 9월 대림코퍼레이션과 물류 계열사인 대림H&L의 흡수·합병을 의결했다. 합병 비율은 1 대 0.78. 대림H&L의 주식 78%가 고스란히 대림코퍼레이션 주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대림H&L 주식 100%를 보유한 해욱씨는 이 조치로 단숨에 대림코퍼레이션 2대 주주에 올랐다.

대림그룹, 지분 이전 과정서 ‘편법 승계’ 의혹도

문제는 대림코퍼레이션과 대림H&L의 합병 비율을 1 대 0.78로 산정한 근거이다. 대림코퍼레이션의 경우 그룹의 간판 계열사인 대림산업 지분 21.67%를 보유하고 있다. 대림산업은 다시 주력 계열사인 삼호와 고려개발, 여천NCC, 대림자동차공업, 대림콘크리트공업 등을 거느리고 있다. 대림H&L은 이해욱 사장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매출이나 순이익 면에서 이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대림H&L의 매출 자체도 대부분 그룹 계열사 물량이어서 경영권 승계를 위해 무리하게 ‘꼼수’를 부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림그룹측은 “외부 전문 기관의 엄격한 평가에 따라 양사의 합병이 진행되었다. 편법 지원 의혹은 말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림H&L과 대림코퍼레이션의 매출이나 순이익을 감안할 때 대림측의 해명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경제개혁연대도 최근 ‘두 회사 간의 합병 결정 배경과 합병 비율 산정 근거를 공개하라’는 내용의 공개 질의서를 대림코퍼레이션 이사회에 보낸 바 있다.

이해욱 사장에 이어 지분 증가율이 두드러진 인물은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장남 정석씨이다. 그는 지난 2006년 일진중공업 대표이사 부사장에 취임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과정에서 그룹의 지주회사인 일진홀딩스 지분을 급격하게 늘렸다. 지난 2004년 말 12.47%에서 지난해 말 28.95%로 4년 만에 16.48%나 증가했다. 일진그룹 역시 계열사인 일진전기와 일진다이아몬드를 합병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이에 따라 일진다이아몬드의 최대 주주였던 정석씨의 지분율 역시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정석씨는 현재 아버지 허회장의 지분 10.64%보다 높은 19.37%를 확보해 일진홀딩스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주의 손자인 양홍석 대신증권 부사장도 4년 만에 지분율이 5.55% 증가했다. 지난 2006년 8월 대신증권에 입사한 그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고 있다. 입사 1년여 만에 전무로 승진하더니, 지금은 부사장을 맡고 있다.

이밖에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정원씨(두산건설 부회장)가 4.03%,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2.66%,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의 장남 세창씨(금호아시아나 상무)가 2.65%, 김승연 한화 회장의 장남 동관씨가 1.87% 지분율이 상승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태평양그룹이나 대한전선의 경우 증여 및 상속을 통해 자식들의 지분율을 높였다. 서경배 태평양 사장은 지난 2007년 말 미성년자였던 딸 민정씨에게 5백억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되는 아모레퍼시픽 주식 20만주를 증여했다. 이로 인해 서사장은 2백억원이 넘는 증여세를 내야 했다. 민정씨는 현재 미성년자 주식 부호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한전선의 3세인 설윤석씨 역시 상속을 통해 지분율을 16.30%로 끌어올렸다. 지난 2004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3월 대한전선 스테인리스 사업부 마케팅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경영전략실 차장, 부장을 거쳐 지난해 9월 전력사업부 해외영업 부문 상무보로 승진했다. 이 과정에서 타계한 아버지 설원량 회장의 지분 30%를 거의 물려받아 최대 주주가 되었다. 그는 현재 대한전선의 지주회사인 삼양금속 지분도 53.77%나 갖고 있다.


SK·현대중공업·CJ 등은 후계 지분율 0%

지분 상승률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일찌감치 경영 승계 구도를 확정한 그룹들도 눈에 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차남 남정씨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현재 동원그룹의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 상무로 근무하고 있지만, 67.2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윤세영 태영그룹 회장의 장남 석민씨(태영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와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장남 동원씨(농심홀딩스 부회장)도 각각 태영인더스트리 지분 52.30%와 농심홀딩스 지분 36.38%를 보유해 그룹 후계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밖에 신동빈 롯데쇼핑 부회장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장남 남호씨(유학 중),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장남 몽진씨(KCC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부회장, 이운형 새아그룹 회장의 장남 태성씨, 장형진 영풍문고 회장의 장남 세준씨 등이 10%대 중반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이 KCC그룹이다. 정몽진 회장의 아들 명선군이 0.43%(시가 1백28억원 상당)의 지분을 보유해 미성년자 주식 부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에 반해 그룹의 핵심 계열사 지분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2, 3세들도 눈에 띄었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경우 현대차 지분율이 고작 0.01%에 불과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남 인근씨나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장남 기선씨,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선호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남 정영선씨, 이웅렬 코오롱그룹의 장남 규호씨, 정몽규 현대산업개발의 장남 준선씨,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장남 형덕씨, 강형중 대교그룹 회장의 장남 호준씨 등은 상장사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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