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혈·설사 증세 길어지면 ‘의심’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1.20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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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평균 완치율 80%…원인은 아직 불확실


뼈 내부에는 스폰지 같은 조직의 골수가 있다. 닭 뼈를 단면으로 잘라보면 붉은 부분이 보이는데, 그것이 골수이다. 골수에는 혈액을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들어 있다. 이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것이 최선의 백혈병 치료술이다. 백혈병은 혈액 내 백혈구에 이상이 생기는 혈액질환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상이 생긴 백혈구는 백혈병 세포라고도 불린다. 백혈병 세포가 과도하게 생성되면서 정상적인 백혈구의 생성까지 방해한다. 면역기능이 저하되어 약한 세균에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치사율이 높은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완치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백혈병의 평균 완치율은 80%에 달한다. 조혈모세포를 이식하기 전에 환자는 관해유도 치료를 받는다. 과도하게 증식한 백혈병 세포를 죽이기 위해 강한 항암제를 2~3가지 사용한다. 구토 등 항암제의 부작용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 치료로 백혈구가 없어지면서 면역기능이 극도로 저하된다. 따라서 환자는 무균실에서 격리된 채 2주 이상 치료를 받는다. 이 치료를 마친 후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다. 새로운 혈액이 생겨나면서 남아 있는 백혈병 세포도 죽게 된다.

조혈모세포 이식에도 부작용은 있다. GVHD(이식편대숙주질환)가 대표적인데, 이식한 골수에 있는 T-세포가 환자의 조직을 공격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은 환자가 사망하기도 한다. 백혈병 치료를 위해 골수 이식을 받은 환자에게는 일반적으로 이식거부와 GVHD를 예방하기 위해 ‘사이클로스린’과 같은 면역억제제를 투입한다.

백혈병은 자각 증세가 거의 없다. 감기 몸살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거나 빈혈 증세를 보이는 정도이다. 주의할 점은 감기라고 자가 진단하고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경우이다. 백혈병은 아스피린과 상극이다. 자칫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한다. 따라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빈혈, 두통, 호흡 곤란, 고열, 뼈 통증, 설사 등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 한 번쯤 백혈병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뒤늦게 병원을 찾은 백혈병 환자의 3분의 1은 뇌질환이나 폐질환 등의 합병증에 시달린다. 예를 들어 폐출혈은 심한 경우 사망의 원인이 되지만 가벼우면 수혈과 지혈로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백혈병을 치료하면 합병증은 자동적으로 치유된다.

조혈모세포에 어떤 이상 생겼느냐에 따라 4가지로 분류

백혈병의 원인은 뚜렷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환경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원인은 방사선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방사선에 노출된 지역 주민들 사이에 급성 및 만성 백혈병이 현저히 증가한 사실은 유명하다. 병원에서 가슴 엑스레이를 촬영하는 정도의 방사선량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이러스도 백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예를 들어 성인형 T세포 백혈병 바이러스는 일본 남서부, 카리브해 연안, 아프리카에서 발견되며, 이는 이름 그대로 성인형 T세포 백혈병(adult T all leukemia)을 일으킨다.

화학약품 중 벤젠과 항암제 등이 백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암제를 지나치게 투여하면 조혈모세포가 손상을 입어 골수 기능이 떨어진다. 치료는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냉동 상태로 저장해두었다가 고용량의 항암요법을 실시한 뒤에 다시 투여하는 자가 이식이 바람직하다.

출생 당시 염색체에 이상이 발견된 기형아가 훗날 성장하면서 백혈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보고도 있다.

백혈병은 조혈모세포에 어떤 이상이 생겼느냐에 따라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급성 골수성 백혈병,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등이다. 


▲ 재생 불량성 빈혈에 걸렸다가 조혈모세포 이식수술 후 건강을 되찾은 김연엽씨가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전라남도 순천에 사는 김연엽씨(59ㆍ여)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김씨가 앓았던 질환은 백혈병의 일종인 재생 불량성 빈혈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이 질환은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녀는 “지난 2003년 6월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큰 부상이 아니어서 며칠 만에 퇴원했지만 곧 몸이 좋지 않아 다시 병원을 찾았다. 추가로 10일 동안 입원했지만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계속 배가 아프고 설사가 심해져 동네 내과를 찾았더니 대학병원을 가보라고 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남의 한 대학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재생 불량성 빈혈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는 골수조직이 지방으로 대체되면서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모두가 감소해 조혈 기능의 장애를 나타내는 질환이다.

김씨는 “병원에서는 교통사고 치료에 사용한 약물 중독 증세일지도 모르니까 1주일 정도 지켜보자고 했다. 2주일이 지났지만 증세가 완화되지 않았다. 남편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가서 치료할 수는 있는지 확인해보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2개월 만에 서울로 향했다. 한 대학병원에서 진단받은 결과, 역시 재생 불량성 빈혈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의사가 눈에 비눗방울 같은 것이 어른거리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뇌혈관에도 문제가 생겼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입원한 지 3주쯤 지나니까 병원에서도 뾰족한 방도가 없었는지 퇴원하라고 했다.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가족과 함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라며 참담했던 심경을 털어놓았다.

며칠 내로 사망할 것이라고 생각한 김씨는 유언까지 남겼다. 이를 딱하게 본 지인의 소개로 여의도성모병원의 김춘추 교수를 만나면서 그녀는 삶의 희망을 찾게 되었다.

조혈모세포 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라는 말을 듣고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해 11월 이식받기로 하고 관해유도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강한 항암제로 백혈병 세포를 죽이는 치료인데, 면역기능이 떨어지므로 2주일 정도 무균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김씨는 관해유도치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고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당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 환자의 나이가 50세를 넘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이식받아도 완치된다는 보장이 없고 돈이 많이 들것 같았다. 어차피 한 번 죽는 목숨을 부지하면서 가족에게 부담을 남겨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식을 포기하려고 했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가족과 의료진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김씨 가족은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사망해도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또, 남동생은 조혈모세포를 공여하겠다고 나섰다.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받은 지 6년째, 그녀는 지금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김씨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성공률이 30%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나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준 것에 감사한다. 이식수술을 받은 후 내 혈액형이 AB형에서 A형으로 바뀌었다. 남자의 혈액을 받아서 그런지 남편은 내 성격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한다”라면서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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