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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제3의 용산’ 곳곳에 있다

재개발 사업에서 영세민 소외시키며 ‘쥐꼬리’ 보상…행정 당국의 ‘강 건너 불구경’도 문제

정락인 ㅣ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2.03(Tue) 14: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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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빌딩 주변 용산 4구역에 철거민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과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처벌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용산 철거민 참사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단지 용산이라는 지역에서 6명이 사망했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을 뿐이다. 현행 재개발 사업은 제2, 제3의 용산참사를 언제든지 재연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그만큼 허점투성이이다.

경찰의 강제 진압을 문제 삼기 전에 왜 철거민들이 건물 옥상에 올라갔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시민단체들은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재개발 사업에 대해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철거민들이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을 벌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2년에 시행된 노량진 재개발 사업지구에서는 철거민 20여 명이 건물 망루에 올라가 무려 1년10개월간 농성을 벌였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어정 재개발 지역에서는 지난 2007년 12월19일부터 지금까지 1년1개월간 농성이 진행 중이다.

현재 서울 지역에만 뉴타운 및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된 곳이 33곳에 달한다. 이들 지역에서는 조합과 세입자 간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조합과 세입자 간 분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원래 재개발 사업은 영세한 원주민의 낙후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강남을 대체하는 중·대형 고급 주택 위주의 고급도시 개발 정책으로 바꾸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건물·토지 소유주들은 개발 이익이 많이 남는 중·대형 주택 건설을 선호하면서 영세 원주민이나 세입자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고급 주택만 건설해 원주민들에게는 ‘그림의 떡’

재개발 지역 특히 뉴타운 사업지구로 지정되면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집값 상승분은 고스란히 사업 비용에 전가되어왔다. 분양가와 임대료가 높게 책정되어 저소득층 원주민들은 분양가를 감당하지 못해 분양권을 전매하거나 임대아파트 입주를 포기하는 실정이다. 재개발 지역 원주민들의 재정착률이 20%에도 못 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용산 뉴타운 4구역에서 일어난 참사도 결국, 보상비 문제가 발단이 되었다. 국제빌딩 주변의 용산구 한강로 2가 60~70번지 일대는 지난 2006년 4월20일에 서울시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했다. 같은 해 10월12일에 조합 설립 인가가 나면서 본격적인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이 지역에는 주택 세입자 4백56명과 상가 세입자 4백34명 등 총 8백90명의 세입자가 있었다. 지금까지 7백63명이 보상 조건에 합의하고 약 84억원의 보상비가 지급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나머지 1백27명은 보상 협상이 진행 중이다. 철거민들에 따르면 주택 세입자 중에는 쪽방에 살던 노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전세보증금 3백만~1천만원, 이주비 3백만~5백만원을 합쳐 많아야 2천만원을 받고 쫓겨나듯 집을 비워야 했다.

조합과 세입자들이 마찰을 빚은 것은 지난해 10월 철거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턱없이 부족한 보상 조건에 불만을 품은 세입자들은 반발하기 시작했고, 사사건건 조합과 부딪쳤다. 현행 도시 및 주거 환경정비법에 명시된 보상 규정은 ‘공익 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토지보상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재개발 조합은 상가 세입자들에게 3개월분의 휴업 보상금을 지급하며 철거를 진행해왔다. 조합은 토지보상법에 따라 철거를 진행하고 있지만 형평성에 많이 어긋나 있다.

조합이 제시하는 법정 보상금이 턱없이 부족하고 상가 임차인들의 권리금과 시설 투자비 등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ㄱ씨가 호프집을 내기 위해 보증금을 제외한 권리금 3천만원에 시설 투자비가 2천만원 등 총 5천만원을 들였다고 치자. 재개발이 시작되면 ㄱ씨는 권리금과 시설 투자비를 모두 포기해야 한다. 현행 토지보상법상 이러한 권리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권리금과 시설 투자비를 빼고 나면 다른 장소로 이전한다고 해도 권리금을 다시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영업을 포기해야만 한다.

실제로 성북주거복지센터가 용산 4구역 개발 이익을 분석한 자료에도 잘 나타나 있다. 건물주인 조합원들은 1인당 5억4천여 만원의 개발 이익을 얻은 데 반해 상가 세입자들은 적게는 1천6백80만원에서 많게는 2천5백만원의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돈으로 영업장을 옮긴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상가 임차인들은 임시 매장, 대체 상가 및 권리금 손실 보전 등 현실적인 대책을 요구해왔다.
사업 주체와 세입자들의 분쟁이 일어나도 서울시와 관할 행정관청인 용산구청은 개입을 꺼려왔다. 민간의 개발 사업에 행정 기관이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후에도 이런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인 토지주택공공네트워크 관계자는 “민간 개발 사업인 재건축과 달리 본질상 공공이 추진하는 공익 사업인 재개발·뉴타운 개발 사업의 취지에 맞게 관할 행정 관청인 시장·구청장이 분쟁에 적극 개입해서 사전에 분쟁을 예방하고 해결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철거민들 “우리가 공공의 적이 되었다”

   
▲ 용산 재개발 지역 가옥주 및 세입자들이 ‘뉴타운, 재개발 전면 중단 촉구 가옥주·세입자 공동 기자회견’에서 향후 투쟁 계획 등을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이번 참사가 일어난 또 하나의 원인은 철거업체의 무자비한 철거와 경찰의 방관적인 태도이다. 재개발 지역에서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은 이미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철거 지역에서 용역업체는 공권력을 초월하고 있다. 세입자에 대한 폭언과 협박, 심지어 폭행을 가해도 별다른 제재나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경호업법을 위반해도 경찰은 적극적인 자세보다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왔다. 이 때문에 재개발 지역은 무법천지가 되고 철거용역업체들의 살벌한 폭력이 빈번하게 자행되고 있다. 이번 용산 참사가 일어나는 과정에서도 철거 용역업체들의 위협과 방화가 있었지만 한 사람도 입건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경찰과 용역업체가 합동 진압을 했다는 오해까지 불러왔다.

그동안 철거민들은 “재개발 지역에서는 우리가 용역업체와 경찰의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라며 경찰을 향해 불만을 토로해왔다.

한편, 정부와 한나라당은 도심 재개발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핵심 골자는 세입자 보호 대책 강화이다. 이를 위해 재개발 지역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영업보상비 산정 방식을 개선하고, 조합과 세입자간 분쟁을 조정할 분쟁 조정위원회도 둘 방침이다. 여기에는 세입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조정위의 결정에 대해서는 행정심판에 준하는 강제성을 부여하기로 했다. 재개발 조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재개발 조합에 외부감사를 두고 세입자 수 등 각종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부와 협의를 마친 뒤 재개발과 재건축, 뉴타운 사업을 아우르는 통합 법령을 새로 만들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재개발 지역에서의 고질적인 병폐가 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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