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장악이냐 제2 촛불이냐 갈림길 승부
  • 유창선 (시사평론가) ()
  • 승인 2009.02.0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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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제2차 입법 전쟁’ 필승을 위해 날을 세우고 있다. 4월 재·보선을 위해서도 결판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용산 참사를 계기로 민주대연합도 다시 움직이고 있다.

▲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과 시민·사회 단체 및 각계 인사들이 현 정부의 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2009년 정국은 아무래도 격돌로 점철될 것 같다. 당장 상반기 정치 일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 격돌의 시작은 이제 막 문을 연 2월 임시국회이다. 1월 한 달을 휴식기로 보낸 여야는 2월 임시국회에서 ‘제2차 입법 전쟁’을 치를 태세이다. 해가 바뀌었지만 쟁점 법안들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일부 법안에 대해서는 ‘협의’ 처리하기로 여야 간에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정치적 논란이 따르는 법안들을 둘러싼 대치 상황이 재연되면 여야의 전면전은 피할 길이 없다. 두 차례에 걸친 ‘입법 전쟁’의 승자와 패자가 어떻게 엇갈리게 될지, 현재로서는 예측불허이다.

2월 국회에서의 쟁점 법안 처리 결과는 이후 정국 주도권의 향배와 직결된다. 한나라당은 이들 법안을 2월에는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여의치 않다. 야당이 다시 실력으로 저지할 경우 이번에도 강행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임은 분명하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딜레마이다. 정국 경색과 여론의 악화를 무릅쓰고 쟁점 법안들을 밀어붙이는 것도 부담이다. 그렇다고 1백72석의 거대 여당이 이제 와서 쟁점 법안을 처리하는 데 손을 들어버린다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결국, 야당과의 타협이라는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하겠지만, 한나라당의 기를 살릴 만큼 큰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나라당은 2월 국회에서 명분과 실리 모두에서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17대 국회 시절 열린우리당이 ‘4대 개혁법안’ 처리에 실패하면서 겪었던 무기력증을 한나라당이 그대로 겪을 가능성도 있다. 그 점을 읽고 있는 민주당은 다시 결사적으로 ‘MB 악법’ 저지에 나서 제1 야당의 힘을 보여주려 할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2월 국회의 결과는 곧바로 4월 재·보선을 통해 심판받게 되어 있다. 현재까지 네 곳이 확정된 재·보선 실시 지역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4월 재·보선이 수도권, 영·호남 등 여러 지역에서 치러지는 점을 감안하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어느 한쪽이 완승을 거두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느 당이든 재·보선에서 참패를 당하게 되는 경우, 정국 주도권 상실은 물론이고 내부 리더십의 붕괴까지 예견되는 상황이다. 여야 모두에게 4월 재·보선의 승부는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역주행’이 반대층 결집시켜

따라서 여야는 재·보선을 통해 두 차례에 걸친 ‘입법 전쟁’의 최종 승부를 가리게 될 것이다. 그 결전을 위해 여야는 쟁점 법안 문제를 넘어 국정 전반에 걸친 전방위적인 대결을 벌이게 될 것이고, 이때 4월 재·보선은 격렬한 이념 대결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 문제가 선거전의 기본 쟁점이 되겠지만 사실 경제 쟁점을 통해 여야 간의 차별성이 부각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보다는 2월 국회에서의 쟁점 법안 처리 결과를 근거로 하여 상대를 향한 이념 공세가 전면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같은 정치 일정에 더해지는 격돌 요인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국정 드라이브가 있다. 지난해 말부터 ‘속도전’을 내걸었던 이대통령은 새해를 맞으며 국정 운영에서 승부를 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범정부 차원에서 경제 살리기를 위한 총력전 태세를 갖추며 국민의 협력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감안하면 이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국정 운영 과정에서 ‘소통’이 배제되고 일방통행식의 집행만이 있게 된다면 그 부작용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대통령의 국정 드라이브는 경제 살리기에 그치지 않고 각종 법과 제도를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려는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법치’와 ‘사회 개혁’의 이름 아래 진행되는 이같은 변화는 과거로의 역주행이라는 반발을 초래하며 반대층을 결집시키는 상황을 낳고 있다. 문제는 이대통령의 이같은 국정 운영 방식에 별다른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용산참사와 관련된 이대통령의 소극적 대응 기조를 통해서도, 소통 부재의 국정 운영이 낳는 문제점이 드러난 바 있다.

반대 세력은 적대시하고 지지층만 챙기는 분열의 리더십으로는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대통령이 걸고 있는 국정 드라이브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개선책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대통령의 국정 드라이브는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모두 담고 있다. 경제 살리기의 노력이 그래도 성과를 거둘 경우에는 여러 논란거리를 덮고 국정 장악에 성공을 거두겠지만, 경제 살리기 성과조차 부진한 상태에서 정치적 갈등만 촉발시키는 결과가 될 경우 ‘제2의 촛불’까지 우려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대통령이 승부를 걸었다면, 그 승부의 결과가 성공인지 실패인지가 올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각 정당들의 부침도 관심사이다. 우선 거대 여당 한나라당이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 것은 올해에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집권 1년 동안 한나라당은 구심이 부재한 상황에서 리더십의 취약을 드러내기도 했고, 중요한 고비 때마다 청와대로부터도 소외당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문제는 심각하지만, 올해에도 특별한 반전이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우선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이대통령의 시각에 변화가 예상되지 않는다. 이대통령은 ‘여의도식 정치’에 갇혀 있는 한나라당으로부터의 이러저러한 소리들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아니다. ‘정치’보다는 ‘일’을 중심으로 상황을 돌파하겠다는 생각도 여전해 보인다. 지난 1·19 개각과 사정 기관 인사의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정 체제 구축으로 평가되었다. 이대통령의 그러한 생각이 계속되는 한 한나라당의 설 자리가 마땅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나라당 내부적으로 보아도 커다란 반전의 계기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박희태 체제의 한계가 거론되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대안을 찾기도 여의치 않다. 이재오 전 의원이 봄에 귀국한다고 하나, 그가 당의 한복판에 위치하려 할 경우 친이-친박 간의 대결이 재현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리고 친박 진영이 ‘당내 당’으로 자리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좀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이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표에게 굳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이고, 박 전 대표 역시 거리 두기를 고수하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내부의 분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상태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설 연휴를 맞아 교통정보센터 상황실을 방문해 비상 근무 중인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왼쪽). 서울중앙지법 파산4부 고영한 부장판사 일행의 쌍용차 평택 본사 방문에 앞서 직원들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다(오른쪽). ⓒ연합뉴스(왼쪽), 시사저널 임준선(오른쪽)

정치·사회 전반이 친MB 대 반MB 구도로 갈 수도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지난해에 나타난 ‘무당층’의 급증 현상은 한나라당으로부터의 이탈층이 민주당으로 이동하는 것도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쟁점 법안 대치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상승 조짐을 보였던 민주당의 지지율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정부·여당이 아무리 잘못해도, 민주당을 지지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인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이 차기 주자의 부재, 대안 능력의 부재라는 결정적 취약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계속 답보 상태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고, 결국 민주당의 정국 주도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4월 재·보선 결과에 따른 정세균 체제의 유지 여부, 정동영 전 의장의 복귀 여부 등의 변수들도 현재로서는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내부 문제일 뿐이다.

민주당의 진로와 함께 관심을 끄는 것은 ‘반(反)MB 민주대연합’이 본격화하는 움직임이다.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민주대연합’은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 가시화되었다가 민주당이 국회로 들어가면서 와해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용산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규탄하는 과정에서 다시 민주대연합의 움직임이 가시화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과 재야 시민단체들이 연합하는 구도는 물론 특정 국면에 대처하는 전략의 일환이지만, 4월 재·보선에서는 후보 단일화와 선거연합 등 좀더 발전된 형태를 띠게 될 가능성이 있다.

재·보선 이후의 전반적 정국 상황도 야권의 대연합을 계속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 예상된다. 이명박 정부의 과거 역주행 논란이 계속된다면 정치·사회 전반이 ‘친MB’ 대 ‘반MB’의 양자 구도로 재편되는 분위기가 강화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의 결집이 촉진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일회적인 선거연합을 넘어선 상설적인 연합의 단계로까지 발전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물론 현재의 야당 세력이나 재야 시민단체들이 갖는 영향력의 한계를 감안하면 파괴력 있는 변화는 아니겠지만, 사회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층의 결집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정국의 변수가 될 수 있다.

2월 국회를 기점으로 우리 정치·사회에서는 이처럼 크고 작은 격돌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승자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승자는 없이, 패자들 사이의 순위를 가리는 대결로 끝날지도 모른다.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이념적·정치적 논란을 유발시키는 행동을 자제하고 모두를 껴안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미 끝난 얘기로 여겨졌던 ‘정치적 민주주의’의 문제가 다시 논란거리가 되는 상황은 정권과 국민 모두에게 불행이다. 야당 또한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주체로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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