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진화했나 퇴화했나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02.1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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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무지로 ‘오독’해온 다윈주의를 ‘해독’시키는 과학 교양서

2월12일은 찰스 다윈이 탄생한 지 꼭 2백년이 되는 날이다. 다윈 탄생 2백주년을 맞아 세계 도처에서 다윈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다. 학계뿐만 아니라 언론, 대중문화, 교육 분야에서도 다윈에 대해 천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전시회와 이벤트, 방송 프로그램과 지난해부터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온 다윈 관련 도서들이 ‘다윈 붐’을 증명하고 있다. 2백년이나 흘렀으면 다윈의 이론은 그저 ‘원조’ 정도로 남고 한층 업그레이드된 이론이 다윈의 이름을 퇴색시켰을 법한데, 왜 ‘다윈으로 돌아가자’는 분위기를 보이는 것일까.

일반인들은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말하고자 한 핵심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설사 다윈에 대해 안다고 해도 ‘다윈 이후’의 여러 가지 학설을 통틀어 다윈의 진화론으로 이해해오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또, 다윈을 몰라도 진화론에 대해 잘못 알고 있거나,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양분해 터부시해온 경향도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다윈의 ‘이후’ 연구 결과물이나 학설들이 진화론을 제대로 아는 데 방해를 하기도 했다.

‘다윈’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

▲ 1874년 에른스트 헤켈의 저서 중 인종 차별을 드러낸 삽화. ⓒ사이언스북스 제공
스티븐 제이 굴드는 평생 다윈에 대한 오해를 풀려고 노력했던 진보적인 생물학자이다. <인간에 대한 오해> 등의 저서로도 잘 알려진 굴드는 <다윈 이후>에서 이미 근·현대의 온갖 편견으로부터 다윈을 해방시키려 했다. ‘진화론의 투사’를 자처해 ‘다윈의 생물관’의 본래 모습을 생생하게 복원해낸 굴드는 19세기와 20세기의 정치·사회·문화적 흐름 속에서 다윈의 사상이 어떻게 왜곡·확산되었는지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고생물학·지질학·동물학·과학사라는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했던 굴드는 다윈 이후 100여 년 동안 진화 생물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한 ‘진화 과정상의 단절’을 설명했으며, 다윈의 사상이 과학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해명하고, 과학주의적 오류를 과학자의 입장에서 비판해 진화 생물학의 논의를 심화시켰다. 진화 생물학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데도 힘썼던 굴드는 “우리 서양인들은, 인간은 미리 예정된 과정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므로 지구와 생물들을 지배하고 소유할 수 있는 운명을 지닌 존재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사실 나는 참된 다윈 정신이 그러한 우리의 오만한 사상을 부정함으로써 황폐해진 이 세계를 구원해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라고 말했다.

다윈이 진화를 당대 과학계에 확신시키는 데에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제안한 자연 선택 이론은 1940년대에 유전학의 도움을 얻기 전까지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다윈은 자연 선택을 비둘기 육종에서의 인위 선택에 빗댔는데, 여기에서 많은 오해가 불거졌다. 인위 선택의 과정에서는 우월한 형질과 도태시켜야 할 개체가 사전에 결정되어 있다. 그래서 자연 선택은, 자연계라는 더 많은 자손을 남기기 위한 투쟁의 현장에서 적절한 방향으로 변화하지 못한 불운한 개체를 말살시키는 무자비한 원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굴드는 “인위 선택에서의 한 육종가의 바람은 어느 생물 집단의 ‘환경 변화’를 의미하고 이 새로운 환경에서는 일정한 형질들이 선천적으로 우월하므로 동물 육종에의 비유는 정당하다. 생물들은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골라내자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상대적으로 적합한 형태적·생리적·행동적 형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형질들이 축적되어 자손들의 적응도를 높인다”라고 설명했다. 다윈주의의 본질은 자연 선택이 ‘적자’를 창조한다는 주장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는 특정한 방향으로 개선되고 향상된 적자를 선발하는 과정이 아니라, 우연한 유전자 변이가 선택되어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물의 적응도를 높여 가는 (적자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주장이다.

다윈 이후 여러 학문과 연계된 진화론은 역사적 오해를 탈피하고 한층 융성했다. 그러나 진화론의 확장은 진화론에 대한 ‘오독’을 낳기도 했다. 진화론을 오용해 범죄자를 유인원으로 치부한 선천성 범죄형 이론, 발생학을 동원해 인종의 불평등을 정당화했던 역사적 실례 등이 그렇다. 굴드는 정치적 메시지가 가미된 과학적 오만에 일침을 가했다. 특히 과학의 진보를 맹신하고 유전자로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생물학적 결정론과 인간의 사회 현상을 생물학적 관점으로 설명한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 생물학에 우려를 표했다.

이렇듯 <다윈 이후>는 다윈의 당대에서 지금까지 ‘잘못 이해되고 인용되고 적용되고 있는’ 다윈주의에 대한 총체적 진단서이다. 굴드는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는, 기초로부터 시작해 고상한 정점에 이르는 진화의 사다리에서 미리 예정된 최종적인 걸작품이 결코 아니다. 단지 무수하게 가지치기를 해온 진화의 관목에서 제대로 자라는 데 성공한 곁가지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라며 자연 앞에 겸손해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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