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내민 손 이란을 바꿀까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9.02.17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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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대통령 선거에 ‘변화’ 기대 커 양국 화해와 핵 포기로 이어질지 주목

▲ 이란의 하타미 전 대통령(위)이 6월 선거에 재출마할 예정이다. 아래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 하메이니 사진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AP연합(위), EPA(아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 대화하겠다는 매우 건설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그는 아랍어 TV 방송과의 회견에서 “이란과 같은 나라들이 불끈 쥔 주먹을 푼다면 우리가 내미는 손을 발견할 것이다. 미국은 당신들의 적이 아니다. 우리도 과오를 범했다”라고 말했다. 부시의 오만과는 사뭇 다른 겸손한 자세이다. 오바마는 2월9일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역시 다음 날 회견에서 대화 제의를 환영하면서 ‘상호 존중과 공정한 분위기’를 조건으로 달았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조짐들이 양국에서 잇따라 나오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양국의 적대 관계가 하룻밤 새에 풀리기에는 30년 증오의 세월이 너무 길다. 게다가 이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혹시 고르바초프 같은 인간이 나타나 서방과 대화를 한답시고, 이란 혁명과 국가를 망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란은 오는 6월12일 대통령 선거를 한다. 어쩌면 21세기 현대사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선거이다. 두 가지 관점에서 그렇다. 첫째는 중국식 개혁·개방을 통해 이란을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킨 30년의 이슬람 통치에서 벗어나려는 갈망이고, 둘째는 고르바초프식 개방을 하려다가 나라를 망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종교 집회에서는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와 ‘이스라엘에 죽음’이라는 구호가 흔히 뒤섞여 들린다. 바로 이 구호 속에 이란의 미래를 점치는 해답이 있을지 모른다.

이란의 집권자들은 당연히 그들이 잘 아는 게임을 더 좋아한다. 이란은 겉으로 보이는 이란과는 다르다. 이란이 지금까지 걸어오던 길을 바꾼다고 해도 이는 자가당착을 위장하려는 술책일 수 있다. 이 나라의 유명한 변호사는 어느 날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진실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속임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사술(詐術)로 진실을 만든다는 것이 가당찮은 말이지만 그의 말투는 진지했다. 정치는 어차피 인위적 도박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미국도 그런 식의 외교를 하지 않았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대화’를 말살 음모로 보는 최고 지도자 하메이니 설득이 관건

이란과 미국의 역사적 악연을 되돌아보면 이란이 잘되면 미국이 골치 아프고 미국이 잘나가면 이란이 힘들었다. 오바마의 대이란 메시지는 그런 궤적을 담고 있다. 오바마는 이란과 대화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이니는 ‘대화’를 이란 말살 음모로 받아들인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일은 오바마의 몫이다.

하메이니는 절대자로 자처하지는 않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의 인물이다. 이란에서의 그의 영향력은 소액 주주 수준이지만 그가 신권(神權)을 받았다고 확신하는 점에서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메이니의 입장은 탄압과 자유,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중간에서 오락가락하는 형국이다. 

6월 선거는 하메이니의 존재와 이란의 고르바초프가 되겠다는 모하메드 하타미 전 대통령의 재출마가 얽혀 이란의 미래를 선악의 갈림길로 인도하는 분수령이 된다. 만약 하타미가 대통령이 되면 하메이니와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고르바초프를 흉내 낸 하타미의 개혁·개방은 실패했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그의 집권이 남긴 것은 실망뿐이다. 그는 개혁 열기의 정점에서 결국, 후퇴했다. 하타미의 후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도 경제 개혁과 서방과의 대화에서 죽을 쑤었다. 유가 상승으로 벌어들인 천문학적 돈은 행방이 묘연하고 각종 정책은 교착되었다. 이 때문에 하타미 향수가 되살아나고 있으나 하타미의 개방 정책에 한 번 데인 이란 사람들의 가슴은 여전히 긴가민가한다.

어쨌든 하타미의 재출마는 기정사실이고, 미국도 은근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하메이니와의 관계가 걸림돌이다. 하메이니는 핵을 개발하고 이란을 페르시아의 대변자로 만들려는 아마디네자드의 열정에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이란 유권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란의 UFO’로 불릴 만큼 좌충우돌하는 하타미의 과속에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두고 보자는 분위기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가설은 아마디네자드도 오바마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란식 그라스노트(개방)를 시도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란의 신권 체제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에서이다. 그러나 무너진 공산주의의 폐허 위에 자본주의를 건설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보아온 터라 그런 가설에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서방의 최대 목표는 아마디네자드의 재집권을 막는 데 있다. 그가 추구한 맹목적 대결정책을 감안하면 그는 오바마의 옵션이 아니다. 지난 주말 뮌헨을 방문한 바이든 부통령의 발언에서 그런 냄새를 느낄 수 있다. “할 테면 해보라. 결과는 압력과 고립밖에 없을 테니까.” 바이든의 협박은 부시의 전철을 따른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또한, 오바마의 어조를 정확히 반영하지도 않았다. 이란 국가안보위원회 대변인이 “지배자적 언행을 멈추라”라고 일갈한 것만 보아도 이란을 향한 미국의 첫 걸음은 빗나갔다. 미국이 강하게 나가면 하타미가  유리해지고 화해 제스처를 보이면 하메이니가 힘을 얻는다. 하메이니가 고집불통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에게 미국에 도움을 줄 가능성은 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고색창연한 영국 대사관 관저가 있다. 1943년 11월30일 그곳에서는 거창한 연회가 열렸다. 처칠 수상의 69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과 10여 명의 요인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찢긴 이란의 미래를 결정하는 이 모임에 이란인은 단 한 사람도 참석하지 못했다. 서방 혹은 강대국에 대한 이란의 증오는 어쩌면 바로 여기서 싹텄는지도 모른다.

 강대국에 대한 이란의 증오 가라앉히는 것도 선결 과제

이란 혁명의 핵심은 강대국의 간섭을 받지 않는 명실상부한 독립이다. 핵 개발을 계속하고 자체 개발한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도 국가 자존심의 발로이다. 오바마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이란 체제를 전복시키지 않고 개방시키는 것이 미국의 목적이라면 이란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대신 그들의 자존과 꿈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란 문제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스라엘 그리고 크게는 중동 전체의 평화와도 맞물려 있다. 제재와 인센티브를 어떻게 절충하고 또 어느 선까지 해야 하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부시는 이 옵션을 애당초 찾으려 하지 않았으나 오바마는 이란인 마음의 벽을 두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일이 쉽지는 않다. 이란에도 강경파가 있고 워싱턴에도 강경파가 있다.

2백여 년 전 독일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는 세계사는 평화와 대재앙 두 가지 가운데 하나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핵전쟁을 두고 한 말이다.  이란의 핵 보유는 바로 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양국이 대화를 원한다고 하지만 핵 문제에서는 하늘과 땅 만큼의 인식 차이를 보인다. 이란은 전력 생산을 위한 평화용이라고 말하고, 미국은 중동의 패권을 노린 음모라고 본다. 지난해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 폭격 계획을 세우고 부시에게 승인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한 일화는 지금도 이란인들의 뇌리에 살아 있다. 

이란이 고르바초프식 몰락이 아니라 중국식 개방으로 가느냐, 핵을 포기하고 국제 사회의 평화적 일원이 되느냐의 여부가 6월에 결정된다. 그리고 어떤 결정을 유도하느냐는 오바마의 수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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