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앞에서 성질난 국가주의
  •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09.03.03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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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문화재 경매 둘러싸고 프랑스·중국 또 충돌

▲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달라이 라마(오른쪽)로부터 선물을 받고 있다. ⓒEPA

과거의 약탈 문화재로 인해 중국과 프랑스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 프랑스 지방법원 재판부가 중국측 변호사들의 경매 중단 소송을 이유 없다고 기각한 데 이어 해당 문화재가 경매에 붙여지자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에 문제가 된 문화재는 1860년 아편전쟁 당시 프랑스와 영국의 연합군이 청나라 황궁인 위안밍위안(圓明園)에서 약탈해간 십이지신상으로서 경매회사인 크리스티는 쥐·토끼머리상 등 두 점을 경매에 붙였다. 결국, 이들 문화재는 고가에 팔려나갔고, 이로 인해 중국과 프랑스의 마찰은 그 수위가 계속 높아질 전망이다. 이미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위안밍위안 문화재를 경매에 붙인다는 것은 국제법의 기본 정신에도 위배될 뿐 아니라 중국인의 문화적 권리와 민족 감정을 손상시키는 행위이다”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중국 정부는 프랑스와의 수교 45주년 기념식을 거부했고, 항공기 구매 협상도 중단했다.

 중국과 프랑스의 마찰이 불붙기 시작한 것은 베이징올림픽 때부터이다. 2008년 4월 파리에서 거행된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중국 정부의 티베트 탄압에 항의하는 프랑스인들의 ‘방해’에 의해 성화가 꺼진 사건이 발생했고, 이어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올림픽 개막식 보이콧을 주도하자 중국에서는 반(反)프랑스 캠페인이 폭발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계 할인점 체인인 까르푸 불매 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졌고, 프랑스 여행 자제 등 대중의 소비자 운동이 광범하게 펼쳐졌다.

올림픽 개막식 보이콧 주도하자 “프랑스 반대”

지난해 12월 프랑스가 티베트의 망명정부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한 뒤 두 나라 관계는 급속히 나빠졌다. 2008년 12월6일, 프랑스 대통령이자 유럽연합 순회 의장인 니콜라스 사르코지는 바르샤바에서 거행된 노벨평화상 수상자 모임에서 달라이 라마와 단독 면담을 가졌다. 이는 중국 정부의 강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네티즌들은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글을 띄워 프랑스 제품 불매 등 대프랑스 보복을 촉구했다.

이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 프랑스가 중국 땅에서 돈을 벌 수 없도록 해야 한다.

프랑스가 저급한 본색을 드러냈다. 이제 중국이 공격할 차례이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사르코지의 달라이 라마 회견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중국 정부는 견결한 반대와 강력한 항의를 표명한다”라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이틀 후 사르코지는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식장에서 “프랑스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만나기를 희망하는 어떤 노벨평화상 수상자와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든 어떤 신앙을 가졌든 어떤 사업에 종사하든”이라면서 달라이 라마와의 면담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사르코지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을 때, 자신의 개막식 참석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유럽을 대표해 그곳에 간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27개국의 다른 지도자들의 동의 하에 그곳에 갔기 때문이다”라며 자신이 비난했던 올림픽의 개막식에 참석했던 것에 대해 역시 후회하지 않고 있음을 밝혔다.

중국이 서유럽 국가와 마찰을 빚은 것은 비단 프랑스만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독일과도 충돌한 바 있다. 2007년 10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면담하자 중국 정부는 항의 표시로 두 건의 독일과 중국 간 고위급 회담을 취소한 데 이어 양국 간의 인권 대화를 취소했었다.

중국, 달라이 라마 문제로 독일과도 악연

악화되어가는 중국과 프랑스 관계의 이면에 아프리카 문제라는 또 다른 요인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은 석유를 포함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일찍이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지금도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한 세네갈을 방문했다.

현재 세네갈에서는 중국 가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고 ‘메이드인차이나’는 아프리카인들이 즐겨 찾는 상품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다. 갈수록 많은 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중국 기업에 맡겨지고 있다. 중국은 세네갈의 한 축구장을 정비하고 박물관과 병원도 새로 건설해주기로 약속했다. 급기야 세네갈 대통령은 중국과 세네갈의 관계를 ‘중국과 아프리카 협력의 전형’이라고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독일 언론들은 이러한 사태들이 프랑스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현재의 중국과 프랑스의 대립은 “국권이 인권보다 우위에 있다”라는 덩샤오핑의 발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 권위주의 권력에 의한 인민 및 시장 통제로 대표되는 중국의 국가주의·전체주의 시각과 급속한 시장화 및 서구식 민주와 인권을 핵심으로 하는 서방 민주주의의 시각이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 기존 국제 질서 및 가치관을 대표하는 프랑스와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기를 거쳐 바야흐로 미래 세계의 주도권에 강력하게 도전하는 중국이라는 신흥 강국의 대결이기도 하다.

 이 양국 관계가 당장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작지만, 이러한 대립과 충돌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필연적인 과정이다. 특히 그동안 세계의 유일한 슈퍼 파워로 군림해온 미국이 전대미문의 금융 위기에 휘말리면서 미국 자본주의가 기반하고 있던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근본적인 회의를 낳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중국 모델(Chinese Model)이 갈수록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발생한 세계적 전환기의 증후이기도 하다.


▲ 아편전쟁 당시 프랑스가 중국에서 약탈해간 쥐·토끼머리상이 경매에서 팔려나가자 베이징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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