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착취하는 공무원 횡령 비리, 뿌리를 뽑아라
  • 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 승인 2009.03.16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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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전남 해남 등의 사건, 복지급여 전달 체계의 허점 노출…예산 집행 과정의 투명성 확보는 국민적 요구 사항

▲ 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 침체로 인해 빈곤층과 위기 가정이 증가하면서 사회복지 관련 예산이 급증했다. 16개 광역지자체의 연간 복지 보조금이 13조원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으며, 지난 3월12일에는 청와대가 긴급 민생 대책안을 확정하고 6조원을 소외 계층에 지급하기로 했다. 공무원들은 월 급여의 일정액을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공무원의 사회복지비 횡령 사건은 열심히 일하는 일선 공무원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으며 그렇지 않아도 침체되어 있는 사회 분위기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부정 수급 모니터링 강화’ 논의할 때 지급 시스템도 논의했어야

서울 양천구에서 일어난 사건은 온 세상을 흔들어놓았다. 구청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수당을 3년여 동안 26억여 원이나 가로챘다. 국민은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아연실색하면서 그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생경한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는 20만개가 넘는 통장을 직접 조사하기에 이르렀고, 감사원이 전국 지자체들을 상대로 조사에 나서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추가 범죄 사실들이 발견되었다. 해남군 한 읍사무소의 사회복지업무 담당 여성 공무원이 2002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남편과 아들 등의 명의로 34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보조금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복지 보조금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생계비와 주거 급여까지 빼돌려 5년간 10억원이 넘는 사회복지급여를 착복했다. 이렇게 빼돌려진 보조금은 개인적으로 착복해 자동차 구입, 토지 취득, 해외 여행비 등으로 유용되었다.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을 쉽게 가로채 호화 생활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급자의 생계비와 주거 급여는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주거안정을 위한 보조금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정부의 감시망에 허점이 뚫린 사이에 도덕적인 해이에 빠진 담당 공무원이 국민의 혈세를 탕진하고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의 생존권 일부를 박탈해 자기 배를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장애인은 사회·경제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이다. 이러한 사회적 소수자를 착취의 대상으로 이용하고 기만한 행위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국민의 예산을 최일선에서 집행하는 공무원의 이같은 행위는 발본색원해 제2, 제3의 공무원 횡령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양천구 사건에서 보듯이 장애인 수당을 시도에서 지급 대상자에 대한 확인 절차 없이 총액으로만 지급하고 있고, 각 시·군·구에서는 예산 집행 통장에 총 금액과 총 지급 인원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를 검증할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이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수급 대상자의 부정 수급에 대해 우려하며 이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논의하고 있을 때, 이를 집행하는 일부 담당 공무원들이 자기 주머니를 비밀스럽게 채우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가 보조금 실태를 파악하고 보조금의 지급 시스템을 보완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같은 임시방편은 일시적 가시 효과만을 보일 뿐 근본적인 치유책이 아닌 듯하다. 사회복지 혈관의 누수(漏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복지의 병목 현상을 원활하게 소통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복지가 돌아가는 체계 만들어라

▲ 3월5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서울시와 자치구 공무원들이 청렴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시의 경우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할 때 받는 사람과 그 돈이 들어가는 예금 통장주의 이름과 계좌번호가 모두 일치해야 돈이 이체되도록 하는 전산 급여 필터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처럼 체계적인 필터링 시스템 등을 구축하고 주기적인 검증 작업을 병행해 지급의 투명성을 높이고 등록부터 보조금 지급에 이르는 중간 과정에 임의 조작이 불가능하도록 해 지급 대상자에게 직접 지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급여를 입금할 때 지적장애인이나 신용불량자의 경우 당사자가 아닌 타인 명의의 계좌로 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허점을 악용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급여를 지급하는 대상자들에게 실명의 급여 전용 통장을 발급해 횡령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또, 급여 지급과 관련해 담당 직원이 대상자 선정을 하는 데 공정을 기했는지, 급여 지급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이 형식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관련 업무를 혼자서 담당하는 1인 지급 방식의 보조금 이체 업무를 개선해 상호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더불어 정기적으로 외부에서 감사를 받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IMF 이후 빈곤층이 확대되면서 사회 복지 예산을 확대·편성했고, 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양적으로 계속 성장해왔다. 지난 10년간 ‘있는 자에게는 엄격하게’ ‘없는 자에게는 관대하게’ 하는 갈등주의적 정책 기조가 유지되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사회복지의 질적 성장을 외면한 외형 부풀리기식·주먹구구식 행정 시스템은 오히려 복지가 절실한 소외 계층 모두를 끌어안지 못하는 결과만 자아냈다.

이제 장애인 복지 분야뿐 아니라 전체 복지 영역의 전달 체계에 대해 새롭게 고민할 시기가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집행 과정상의 투명성 확보는 가장 기초적인 수준이다. 복지 수요자인 국민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인적 인프라를 우선 갖추어 주어야 한다. 복지 전담 공무원 등 복지 영역 종사자들의 근무 여건을 향상시켜주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 인력을 증원 배치하고 상호 모니터링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분야에 대한 임금 조정 등 처우를 강화해야 한다.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전달 체계의 효율성 확보이다. 각종 전산화 기제를 활용해 인간이 수기하는 과정상의 비리 가능성을 축소하고 복지 서비스를 받는 이들이 제대로 선정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상시 체크될 수 있는 방안이 전달 체계 안에 마련되어야 한다.

양천구의 사례와 해남의 비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복지가 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현재 보건복지가족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달 체계 개편안이 어떻게 짜여져야 하는지, 그리고 왜 시급한지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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