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싸라기 땅에서 돌아선 남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3.16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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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재단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박정희 전 대통령 딸과 아들 사이의 대결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이 분쟁을 벌이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 서울시 광진구 능동 어린이회관의 전경.

육영재단의 파행이 끝이 안 보인다. 지난 2004년 12월 관할 성동교육청이 박근령 이사장의 승인을 취소한 이후 벌써 5년째이다. 당시 재단 이사장이던 박근령씨는 미허가 임대수익사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성동교육청으로부터 이사장 승인을 취소당했다. 박씨는 여기에 반발해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에서도 패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박근령씨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나섰다. 그는 재단 채권자 자격으로 9명의 임시이사 승인 신청서를 법원에 냈고, 지난해 11월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임시이사진이 구성되자 박 전 이사장은 이에 반발해 재단에 나와 출근 투쟁을 벌여왔다. 재단 운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때부터 육영재단은 경영권을 둘러싼 남매간의 싸움으로 비화되었다. 물론 박지만씨측이나 박근령씨측은 ‘집안 싸움’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 서울시 광진구 능동 어린이회관의 전경.박지만씨.

지난 1월 초 박지만씨의 측근 ㅈ씨는 <시사저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 회장님은 재단에 대해 전혀 모른다. 임시이사들의 프로필을 보아라. 성동교육청이 임시이사 9명을 제청(추천)해달라고 해서 한 것이다. (임시이사 선임은) 주위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추천받아서 이력서를 받은 후에 교육 기관에 맞는 적임자를 직접 골랐다. 회장님 혼자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박지만씨가 육영재단 문제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분쟁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가 추천한 임시이사들이 재단 운영권을 쥐고 있고, 측근들 상당수가 재단에 들어갔다. 박근령 전 이사장의 측근인 ㅂ씨는 “육영재단 분쟁에는 제3의 세력이 개입해 있다. 그 세력이 치밀한 각본 아래 박지만씨를 내세웠다고 생각한다”라며 다소 새로운 주장을 폈다. 어찌되었든 박근령·지만 씨 남매가 육영재단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들 남매는 왜 육영재단 경영권 분쟁에 나섰을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육영재단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육영재단은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고 육영수 여사가 설립했다. ‘육영’이라는 재단 명칭도 육영수 여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육영재단은 공익법인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이나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박씨 일가들은 가업으로 여겨왔다. 박근령 전 이사장이나 박지만씨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육영재단이 해체될 경우 공익법인의 특성상 재산권을 포함한 모든 권한은 서울시교육청으로 넘어가게 된다. 기업인인 박지만씨는 육영재단의 채권인 자격으로 이사 선임권을 갖게 되었다. 그는 지난해 2월29일(4천2백만원)과 4월24일(3억원) 두 차례에 걸쳐 육영재단에 3억4천2백만원을 빌려준 것으로 되어 있다.

어린이회관 부지, 최고 추정가 3조원대

박지만씨의 측근 ㅈ씨는 “이것(육영재단)은 공익법인이다. 만약 육영재단이 해체되면 땅이건 뭐건 모두 서울시교육청에 귀속된다. 이 재단은 개인의 재산이 아니다. 재단의 목적이 다하는 날 해체되면 재산도 모두 넘겨지는 것이다. 저들(박근령씨측)은 사학·사립대학인 줄 아는데, 그리고 일반인들도 그렇게 혼동하는데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ㅈ씨의 말은 육영재단이 서울시교육청에 넘어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지만씨가 나섰다는 것이다.

▲ 박근령씨

또 하나는 남매간의 싸움이 결국, ‘재산 싸움’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임시이사 체제가 들어서면서 한때 어린이회관 개발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임시이사측이 서편 운동장 나대지(지상에 건축물 등이 없는 대지)에 대해 실측했다는 말까지 떠돌았다. 이에 대해 재단 노조는 “임시이사들이 결국, 개발을 통해 이익을 챙기려는 흑심을 드러내고 있다”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박지만씨의 측근 ㅈ씨는 “우리 회장님은 이사장 취임 의사도 전혀 없다. 재산에 관한 것도 아니다. 자꾸 재산으로 몰아가는 것은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육영재단의 가장 큰 자산은 광활한 어린이회관 부지이다. 주소지인 서울 광진구 능동 18-11번지는 부지가 약 12만2천3백15m²(3만7천평)에 달한다. 현재 어린이회관 부지는 개별 공시지가가 3.3㎡(1평)당 100만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시지가에 불과하다. 어린이회관 주변 땅값은 실거래가가 3.3㎡당 5천만원을 호가한다. 단순 계산으로만 전체 땅값이 1조8천5백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개발로 얻어지는 시세 차익 등을 포함하면 최대 3조원대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어린이회관 부지 중 4만7천여 ㎡(1만4천평)는 나대지로 방치되고 있어서 당장 개발이 가능한 지역으로 꼽힌다.

세종대와 어린이회관 사이에 위치한 ㅅ부동산 김 아무개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 건설업체가 어린이대공원역(7호선) 근처에 있는 땅을 개발하기 위해 지주에게 땅을 팔라고 했는데 3.3㎡당 가격을 5천5백만원을 부르자 포기한 일이 있었다. 이 건설업체는 5천만원이면 땅을 매입해서 건물을 지으려고 했다. 만약 어린이회관 부지가 개발된다면 땅값이 3.3㎡당 7천만원 이상까지 치솟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 중심가에 이 정도 넓이의 여유 부지는 거의 없다. 단순히 땅만 넓은 것이 아니다. 어린이회관의 입지는 주변 환경부터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땅의 가치를 평가하는 역세권과 배후 녹지대, 전망 등을 놓고 볼 때 최적의 ‘황금 입지’이다. 여기에다 강남과 가깝고 주변에 세종대, 건국대, 건국대병원 등이 있어 최고의 상권으로 꼽힌다.

상권 분석 전문가인 이홍구 창업피아 대표는 “서울의 5대 상권으로는 명동, 종로, 신촌, 강남, 대학로를 들 수 있다. 강북 최고의 상권은 건대입구이다. 어린이회관이 개발된다면 당장 6위권에 드는 상권을 형성할 것이다. 원래 땅값이 강남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이곳은 7호선(어린이대공원역)과 인접해 있으며 2호선(건대입구)이나 5호선(아차산역)과도 아주 가깝다. 어린이대공원 같은 녹지대와 탁 트인 조망권 등을 따져 볼 때 대박은 떼놓은 당상이다”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입지 조건 때문에 어린이회관 부지가 개발된다는 루머가 오래전부터 나돌았다. 앞서 말했던 ㅅ부동산 대표는 “이미 10년 전부터 개발 이야기가 있었다. 개발업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우리한테도 곧 개발이 된다면서 정보를 팔고 다녔다”라고 말했다. 박근령 전 이사장 시절에도 개발업자들이 수시로 찾아왔다고 할 정도이다. 

“10년간 소송하다가 시간 다 보냈다”

아직까지 어린이회관 부지 개발을 위해 계획된 것은 없다. 하지만 육영재단의 경영 상태로 볼 때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다. 육영재단의 주 수익원은 목적사업과 수익사업으로 나뉜다. 목적사업은 유치원, 근화원 예절교육관, 과학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매년 이용객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수익사업은 예식장, 눈썰매장, 주차장, 사무실 임대 등이다.

 현재 육영재단의 부채 규모는 약 100억원대에 달한다. 지난 2005년 당시 백원우 열린우리당 의원(현 민주당)이 제시한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육영재단의 2004년 말 부채가 약 1백57억원이다. 이에 반해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24억원 정도에 그쳤다. 유광선 육영재단 홍보실장은 “한 달 평균 2억원 정도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이 돈으로 직원 100여 명의 월급 주기가 빠듯하다”라고 말했다.

경영 상태가 어렵다 보니 지난 10여 년 동안 시설 투자 등을 하지 못했다. 육영재단이 황폐화된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했다. 건물은 노후되어 갈라지고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여기저기 부서지고 있지만 보수를 하지 못해 흉물로 변하고 있다. 어린이회관 과학관에 전시된 컴퓨터 사양이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286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재영 육영재단 노조위원장은 “직원들 복지도 열악하다. 대졸 초임 월급이 1백50만원을 넘지 않고 있으며, 전체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2천만원 정도이다. 겨울에도 석유난로를 때고 있으니 말 다했다”라고 말했다.

박 전 이사장의 측근인 ㅂ씨는 “우리는 지난 10년간 소송하다가 시간을 보냈다. 일단 발등의 불을 끄다가 보니 투자하는 데 엄두를 못 냈다. 우리가 떠안고 있는 부채도 실제로는 박근혜 전 대표 시절부터 내려오던 부채였지 박 전 이사장 시절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부채 규모도 80억원 정도이며 그것도 임대보증금이다”라고 항변했다.

어린이회관 임대업자들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린이회관 웨딩문화원 관계자는 “육영재단의 오랜 파행 운영으로 예식장에 영향이 없지는 않다. 당장 예식을 문의하거나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었고, 예약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 답답하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단 노조나 직원들은 ‘설립자의 취지’라는 조건이 충족되면 굳이 개발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재영 육영재단 노조위원장은 “어린이 육영 사업이라는 설립자의 취지에 맞고 좋은 시설을 갖추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면 개발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육영재단의 경영권 분쟁에는 ‘개발’이라는 화두가 숨어 있다. 아직 구체적인 개발 프로젝트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언제 터져나올지 모른다. 

성동교육청 평생교육체육과 관계자는 “육영재단 문제의 본질은 공익법인인데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립자의 취지는 ‘어린이 보육사업’인데 지금 육영재단에서 제대로된 보육사업이 뭐가 있는가. 이것이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육영재단 정문에 들어서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필로 쓴 표지석과 마주친다. 여기에는 ‘해같이 밝고 꽃처럼 아름답게, 슬기를 키우는 어린이 나라’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지금 어린이회관에는 ‘어린이’는 없고 대립만 이어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나 육영수 여사가 지하에서 보면 통곡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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