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도 하기 전에 집안만 흔들흔들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9.03.2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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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동영 출마 선언으로 계파마다 ‘각개약진’‘전략 공천’ 카드 쥔 정세균 대표가 유리한 고지 올라

▲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왼쪽)의 재·보선 출마 선언이 민주당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4·29 재·보선 전주 덕진 출마 선언이 민주당에 던진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은 현재 정세균 대표와 386 인사들로 대표되는 주류 그룹, 정동영계, 손학규계, 구 민주계, 친노무현계, 민주연대 등의 비주류 그룹이 분할하는 구조이다. 여기에 주류 그룹을 이끄는 정대표가 아직은 대선 후보로서 인지도가 미미하고, 당 지지율도 여전히 정체되어 있어 지도부의 리더십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한 상태이다. 정 전 장관의 출마는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민주당의 취약 지점을 건드리는 충격파가 되었고, 이로 인해 당내 계파 간 세력 관계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이 지난 3월13일 전주 덕진 출마를 선언한 이후 민주당 내의 기류는 크게 세 갈래로 갈라져 있다. 하나는 ‘그의 출마로 이명박 정부 중간 심판이라는 재·보선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시기(4월 재·보선)와 지역(고향인 전주 덕진)에 있어서 명분이 약하다’ 등의 이유로 출마에 여전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정동영계를 중심으로 한 원칙적 찬성 입장과 ‘이미 출마를 선언한 이상 당내 갈등을 막기 위해서는 공천을 줄 수밖에 없다’라는 현실론이다. 이 현실론은 정 전 장관 공천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찬성론으로 볼 수 있다. 또, 양 갈래와 비슷한 비중으로 아직 어느 쪽의 손을 선뜻 들어주지 않는 관망파가 존재한다. 각각의 입장은 정 전 장관 출마의 명분과 현실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계파별 이해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먼저 출마 반대를 주도하는 그룹은 현 지도부, 정대표 주변의 386 의원들이다. 특히 가급적 말을 아끼는 지도부를 대신해 386 의원들이 총대를 메고 있다. 최재성 의원, 조정식 원내대변인, 강기정 비서실장 등 386 의원들은 정 전 장관의 출마 선언 이전부터 그의 복귀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고, 지금도 출마 반대 논리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정 전 장관의 출마로 재·보선 구도가 흐트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향 복귀에 대한 논란으로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MB 정부 심판이라는 재·보선의 의미가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정 전 장관이 당과 상의도 하지 않은 채 개인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앞세운 데 대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이번에 정 전 장관에게 공천을 주면 정대표의 리더십이 땅에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 “정동영에게 굴복한 정세균으로는 재·보선을 책임 있게 치를 수 없다”라는 한 386 의원의 언급이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정대표가 정 전 대표 출마 배제의 길을 터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전략공천 카드를 던진 것도 386 참모들의 아이디어로 알려져 있다.

현재 수도권 의원들과 친노 그룹도 대체로 이같은 정대표측 주장에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3월15일 정 전 장관 출마 재고를 촉구하는 공식 성명을 낸 10명의 의원 가운데는 386 의원들뿐만 아니라 김부겸·신학용·우제창 등 수도권 의원들과 이광재·백원우 의원 등 친노 의원들이 포함되어 있다. 수도권 의원 가운데서 반대가 많은 것은 정 전 장관의 고향 출마 논란이 결국은 호남 지역주의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 출마에 우호적인 진영은 정동영계 의원들을 비롯해 구 민주계 의원, 당내 비주류 연합인 민주연대 소속 일부 의원들이다. 호남권 의원들이 이 부류와 많이 겹친다. 우선 정동영계의 경우 정 전 장관의 출마 전에는 내부에서도 찬반으로 기류가 나뉘었으나, 그의 출마 선언 이후에는 찬성 쪽으로 급속히 입장이 모아진 상태이다. 박영선·최규식·문학진·강창일 의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이들은 정대표측의 일방적 공천 배제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정대표가 향후 대선 레이스에서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정 전 장관을 미리 견제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박영선 의원이 “전략 공천 결정이 만에 하나 개인적 욕심에서 비롯되었거나 특정인의 공천 배제로 당의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였다면 잘못된 것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당내 여론 향배는 아직 점치기 일러

▲ 민주당 최고위원-상임고문 연석회의에서 원혜영 원내대표(오른쪽)와 정세균 당 대표(왼쪽)가 함께 자리했다. ⓒ시사저널 임영무

구 민주계 의원들은 출마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 기류가 많았으나 출마 선언 이후에는  “공천을 안 줄 수 없지 않느냐”라는 현실적 이유를 들어 찬성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경우가 많다. 이는 그동안 정대표 체제에 대한 소외감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정 전 장관 출마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했던 박상천 전 대표가 조만간 출마 불가피론을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구 민주계 김유정 의원은 “정 전 장관 출마에 대해서는 의원 개인의 입장이 있을 뿐이지 계파 차원의 입장을 정리한 적은 없다”라고 밝혔다.

정동영계, 김근태계, 천정배계 등 당내 비주류 연합인 민주연대는 사정이 좀 복잡하다. 참여 의원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라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령 민주연대에는 현재 지도부 당직을 맡고 있는 이미경 사무총장도 소속되어 있다. 또, 민주연대의 한 축인 김근태계도 아직은 관망 중이다. 다만, 민주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종걸 의원이 정 전 장관 공천을 적극 찬성하면서, 정대표 체제와 대립각 세우기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공천 찬성과 반대 어느 쪽으로 당내 여론이 기울고 있다고 단정하기 이르다. 정 전 장관 공천에 반대하면서도 정치적 의리 때문에 침묵하고 있거나, 결국은 정 전 장관에게 공천이 갈 수밖에 없다고 보면서도 계파 경쟁 양상을 띠는 이번 싸움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으려는 의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내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온 충청권 의원들과 관료·전문가 그룹이 대체적으로 여기에 해당한다.

다만,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대표가 현재로서는 조금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천 문제를 최종 결정할 당 최고위원들이 한목소리로 정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최고위원회의는 정세균 대표를 비롯해 원혜영 원내대표, 송영길·박주선·김진표·안희정·김민석·장상·윤덕홍 최고위원 등 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전주 덕진 출마에 부정적 기류를 전달했는데도 정 전 장관이 출마를 감행한 것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정대표측에서 “당원이 당을 이길 수 없는 것 아니냐”라고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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