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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약속 갈라선 형님들

지난 대선 직전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가 만나 모종의 '밀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밀약'이 '박연차 게이트'로 물거품이 되기까지의 내막을 추적했다

소종섭 ㅣ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4.06(Mon) 17: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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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태양과 같다. 가까이 가면 타죽고 멀리하면 춥다. 권력에 ‘영원한 2인자’는 없다. 권력은 피도 눈물도 없다. 조선왕조 태종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형제들을 도륙내는 것이 권력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듯 친구를 감옥으로 보내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꽃과 같다. 활짝 피었다가 지고나면 초라해지는 꽃은 권력의 상징이다. 줄줄이 이어지는 지난 정권 실세들의 감옥행이 보여주는 권력의 무상함이 그렇다.
형님들이 있다. 한 명은 ‘봉하대군’이라고 불렸고, 다른 한 명은 ‘영일대군’이라고 불린다. ‘봉하대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이고 ‘영일대군’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다. 같은 ‘대군’이지만 권력의 부침에 따라 하루아침에 신세가 달라졌다. ‘봉하대군’은 구속되어 차디찬 감옥으로 갔고, ‘영일대군’은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최고의 실세가 되었다.

‘형님들의 밀약’이 있었다. 2007년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의 일이다. 당시 이 일은 이명박-노무현 양 진영에서 극소수 사람들만 아는 비밀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실상을 정확하게 아는 이는 손꼽을 정도이다. “나중에 밝힐 일이다”라는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말대로 어쩌면 아직은 역사의 달빛 속에 있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이 ‘밀약’은 깨어졌다. 이상득-노건평의 밀약이 깨어져나가는 과정은 ‘박연차 게이트’가 지난 정권의 심장부를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는 현재 상황을 이해하게 해주는 한 단면이다.

제17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전이 한창이던 2007년 11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온갖 구설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허위 재산신고 등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센터(DMC) 의혹, 서울 도곡동 땅 및 다스 지분과 관련된 공직자윤리법 위반 의혹….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파괴력이 가장 큰 것은 그가 BBK 김경준 대표와 함께 주가를 조작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른바 ‘BBK 사건’이었다. 언론은 연일 의혹을 쏟아냈고,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후보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이명박 불가론’까지 대두되고 있었다. 이후보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

“BBK 도와줄 테니 로열 패밀리는 건드리지 마라”

당시 이명박 후보의 선거 캠프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한 정치권 인사는 “당시 BBK 사건으로부터 후보를 방어하기 위해 모두 전방위로 뛰었다. 그때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이 노무현 전 대통령측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로비 명목으로 2억원을 받아 지난 3월22일 구속된 추 전 비서관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한반도 대운하 추진본부 부본부장’과 후보의 전략기획특보를 맡고 있었다.

이 인사에 따르면 당시 추 전 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 있는 비자금’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추 전 비서관은 노건평씨를 만났다. 2007년 11월 초·중순쯤이다. 당시 그가 확보했던 자료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건평씨측에서 만남에 응했고, 이후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아 실제로 상당한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진행 중인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물밑에서 정권 핵심부의 아킬레스건을 잡고 ‘정치적인 거래’를 했던 셈이다.

2008년 11월5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추 전 비서관은 이에 대해 “대선 전 노건평씨를 만났다.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찾아가서 만난다. 나는 그쪽에 전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그쪽도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라며 건평씨와 만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왜, 어떻게 노건평씨를 만났는가”라는 물음에는 “밝힐 수 없다”라고 답했다.

‘비자금 자료’를 바탕으로 라인을 만든 추 전 비서관이 당시 건평씨측에 요구했던 것은 ‘BBK 사건에 대한 공정한 처리’였다. 한마디로 검찰이 수사 중인 이 사건에 청와대가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반면, 건평씨측에서는 ‘(집권하더라도) 로열 패밀리는 건드리지 말아달라’라는 요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펼쳐지는 상황을 보면 건평씨측에서 왜 그런 요구를 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추 전 비서관이 기자에게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말했던 것도 맥락이 같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이후보 캠프의 핵심 인사들은 추부길-노건평 라인이 가동되는 것을 당시에 알고 있었다. 추 전 비서관이 혼자 독단적으로 움직인 것이 결코 아니었다.

건평씨와의 사이에 길을 튼 것은 추 전 비서관이었지만 이상득 의원 또한 이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다. 추 전 비서관은 이의원의 15~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전략팀장을 맡은 측근 인사이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의원은 “당시 이상득 의원도 건평씨와 만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건평씨의 한 측근도 “두 분이 가끔 만난 것으로 안다. ‘어른’끼리 잘 지내면서 분위기를 좋게 이끌어보자는 말을 나누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상득 의원은 건평씨와의 만남과 대화 내용에 대해 여러 차례 메모를 남겼으나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추 전 비서관은 “이명박 대통령도 (추부길·이상득-노건평 라인을) 알고 있는가”라는 기자의 물음에 침묵으로 답한 적이 있다.

이러한 ‘형님들의 밀약’ 때문인지 몰라도 검찰은 2007년 12월 초 BBK 주가 조작, BBK 차명 소유, ㈜다스 차명 소유 등 BBK 3대 의혹에 대해 이후보는 혐의가 없다며 깨끗하게 이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난 대선의 승부는 사실상 이때 끝났다. 이어진 12월19일 대선에서 이후보는 5백만표가 넘는 압도적인 표 차로 승리했다. 추 전 비서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당선인 비서실 정책기획팀장이라는 중책을 맡았고, 1기 청와대에서는 홍보기획비서관이 되었다. 당시 여권 핵심인사들 사이에서는 “이상득-노건평 라인을 확보한 공로가 높이 평가된 것이 아니냐”라는 말이 돌았다.

촛불 시위 계기로 관계에 금 가

 

   
▲ 추부길 전 비서관은 지난 3월22일 구속되었다.
ⓒ연합뉴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형님들의 밀약’은 유지되었다. 관계가 괜찮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추 전 비서관을 비롯한 여권 핵심 인사 일부는 건평씨의 편의를 봐주었다.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건평씨의 인척을 부산·경남 지역 기업들에게 연결해주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건평씨의 인척이 되레 “폭로하겠다”라며 ‘협박’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폭로’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밀약’에 금이 가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것은 촛불 시위였다. 2008년 4~6월 시청 앞 광장을 뜨겁게 달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는 이명박 대통령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집권 2개월 만에 그는 두 번이나 국민을 상대로 사과해야 했다. 그해 6월 추 전 비서관은 청와대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홍보기획비서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현 정권 간에 유지되었던 핫라인은 이때부터 붕괴 수순에 들어갔다. 이명박 정권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했다. ‘밀약’이고 뭐고 따질 계제가 되지 않았다. 자칫하면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청와대를 휘감았다.

‘촛불’로 국정이 거의 마비되는 상황을 경험한 집권 세력은 이후 대반격에 나섰다. 6월20일 MBC <PD수첩>을 검찰에 고발한 것이 시작이었다.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이 중심이 되어‘촛불 주도 세력’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들어갔다. “이대로는 국정을 끌고 갈 수 없다”라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핵심 세력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촛불 집회 주도 세력 검거, 시민단체들에 대한 고립화 작전 등이 하나씩 실행 테이블에 올랐다. 중심은 정치적인 배후를 타격하고 그들의 물적인 기반을 없애는 것이었다. 시민단체들에 대한 기업의 후원 내역을 조사하고 ‘노무현’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이다.

2008년 7월31일 국세청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 대해 전격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은 이런 질적인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연임을 노리던 한상률 청장의 승부수가 여권 핵심부의 의도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측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건평씨는 박회장의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며 추 전 비서관을 상대로 로비했고, 노 전 대통령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내뱉었다. 하지만 추 전 비서관과 또 다른 여권 실세 등을 통한 박회장의 로비는 번번이 청와대에 포착되어 제지당했다. 

한 전 청장은 지난해 11월 세무조사 결과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사항’을 보고했다. 12월4일 노건평씨는 세종증권 비리와 관련해 검찰에 구속되었다. 8일 뒤에는 박연차 회장이 구속되었다. 추 전 비서관을 구속해 걸림돌을 제거하고 이광재 의원 등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을 잇달아 구속한 검찰은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덜미까지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이제 ‘로열 패밀리는 보호한다’라는 ‘형님들의 밀약’은 박살났고, ‘태양은 하나다’라는 권력의 냉혹한 본성만 남았다. 


여권의 ‘천신일 딜레마’

 

 
▲ 천신일 회장은 여권 실제 중 한 명이다.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정치권 전면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그를 ‘박연차 게이트’의 ‘몸통’이라고 칭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한나라당 비주류인 ‘친박근혜’ 그룹은 “검찰 수사에서 왜 천신일의 이름은 나오지 않느냐”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지금껏 여권 실세로서 그림자 권력자였던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햇볕 아래로 나왔다.

지난 3월30일 서울 안암동에 있는 고려대 교우회관 대강당에서 제29대 고려대 교우회장으로 재선출된 천신일 회장은 최근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주목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동기인 그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수십 년 전부터 알고 지낸 관계이다. 박회장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관련해 대책회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박회장의 부탁을 받고 움직이는 와중에 청와대로부터 ‘경고’를 받은 사실도 있다.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소환 조사를 받은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박회장을 만난 것도 천회장의 소개 때문이었다.

지금 그의 운명은 안갯속이다. 지난 4월1일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천회장의 계좌를 광범위하게 추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각종 의혹이 제기된 만큼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이 관계자는 “계좌 추적 결과에 따라 천회장의 운명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보았다. 무언가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이 나오면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가 묻어났다.

천회장과 관련해 여권 내에는 지금 두 가지 기류가 팽팽하다. 하나는 ‘예외가 될 수 없다’는 흐름이다. 그동안에도 물밑에서 이런저런 말이 있었던 만큼 문제 되는 부분이 있으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 후반부로 갈수록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이들이다. 주로 소장파들이 이런 관점이다. 하지만 다른 흐름도 있다. 천회장이 여권의 원로 실세 그룹과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잘못 다루면 오히려 여권의 중심이 와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쪽이다. 이들은 천회장에게까지 불길이 번지면 야당의 공세가 더 거세질 것이라고 본다. ‘천신일’을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보고 어떻게든 방어해야 한다고 보는 쪽이다. 원로 그룹에 가까운 이들이 주로 이런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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