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파고든‘공포의 가루’안전 지대가 없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4.1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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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석면의 위협으로 인해 불안에 떨고 있다. 석면은 이번에 문제가 된 베이비파우더 외에 집과 학교, 지하철 등 곳곳에서 건강을 위협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베이비파우더에서 발단이 된 석면 검출 파동으로 온 사회가 분노와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4월1일 식약청이 석면 검출 업체들을 전격 공개하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석면 베이비파우더 소송모임(http://cafe.daum.net/cancerpowder)’이 개설되었고, 성난 주부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 현재(4월10일 오후 6시) 1천8백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동참하는 주부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회원으로 가입한 심수정씨는 “첫째 아이 때 분을 세 통이나 썼다. 그래서 그런지 목 주위랑 겨드랑이가 항상 간지럽다고 하고 지금은 피부가 죽은 것 같이 시꺼멓다. 항상 보면서 속상했었는데 이런 일이 터지니 진짜 열 받는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현재 카페에는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한 주부들의 걱정과 분노로 가득하다. 더 나아가 불매운동까지 불사할 태세이다.

주부들의 걱정은 탈크 파우더가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이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이번에 베이비파우더에서 검출된 석면은 독성이 강한 각섬석 계통의 트레몰라이트이다. 일부 제품은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의 농도 관리 기준인 0.1% 이하의 무려 50배가 넘는 5% 정도를 함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독성 제품을 사용할 경우 접촉성 피부염이나 피부암까지 유발할 수 있다. 아이디가 ‘피앙새’인 주부는 “우리 두 아들이 4년 동안이나 발랐는데, 혹시 병이라도 생길까 봐 두렵다”라며 걱정했다.

베이비파우더에 쓰인 탈크(talc)는 가공 과정에서 석면 성분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도 원료 공급업체는 이를 어겼고, 제조업체들은 이 원료로 베이비파우더를 만들어 시중에 유통시켰다. 여기에는 최대 90%까지 탈크 성분이 함유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주부들은 아기에게 ‘약’을 바른 것이 아니라 ‘독’을 발랐다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석면 탈크가 검출된 업체들이다. 3개 제품에서 탈크가 검출된 보령메디앙스는 홈페이지에 팝업을 세 개나 띄웠다. 먼저 임직원 명의로 된 사과문을 게재했다. 탈크 제품에 대한 즉각적인 교환과 환불을 약속했고, 탈크 성분이 없는 원료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은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이다. 회사의 운명이 걸린 만큼 해당 업체들로서는 비상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베이비파우더 석면 파동은 업체들의 매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형 마트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베이비파우더 제품 구매가 급감하고 있다. 신세계·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의 경우 베이비파우더의 매출이 거의 반 토막 났으며, 일부 매장은 진열된 제품을 모두 철수했다. 국산 베이비파우더에 대한 불신이 커진 반면, 수입산의 인기가 급등하는 등 소비자들의 심리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파우더 형태가 아닌 크림 형태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

‘석면 공포’는 생활 주변으로 번지고 있다. 석면의 종합판은 역시 건축물이다. 주택, 공장, 학교, 빌딩 등의 건축물은 거대한 석면 덩어리로 뭉쳐 있다. 건물의 지붕재로 쓰이는 슬레이트, 사무실, 상가, 공공 건물, 호텔 등의 천장 마감재인 아스텍스에도 석면이 들어 있다. 바닥 마감재로 많이 사용되는 아스타일, 사무실이나 화장실 등에 칸막이로 사용되는 밤라이트·나무라이트에도 석면이 들어 있다. 인간의 활동 무대가 온통 석면으로 뒤덮인 셈이다.

냉장고·세탁기 등 전기·전자 제품에도 석면 쓰여

아이들이 생활하는 학교는 어떨까. 교육과학기술부 조사에 의하면 놀랍게도 전국에 있는 학교 10곳 중 9곳은 일명 ‘석면 학교’이다. 석면 자재를 사용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건물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 노후하게 되고 자재는 푸석해지기 마련이다. 학교 건물에 쓰인 노후한 석면 자재는 작은 충격에도 가루가 공중에 날린다.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석면 가루를 흡입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아이들이 잦은 호흡기 질환에 시달린다면 석면 가루가 원인일 수도 있다.

공공시설인 지하철도 온통 석면투성이였다. 몇몇 지하철역은 공포의 지하철역으로 불릴 만하다. 시민환경연구소가 지난 1월 서울 지하철 2호선과 4호선 등 모두 21곳의 승강장 내 먼지를 조사한 결과 승강장 4곳의 먼지에서 석면이 검출되었다. 2호선인 봉천역·방배역·서초역은 석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역사 내의 승강장 천장이 온통 석면 뿜칠 투성이었다. 특히 봉천역 천장에서는 석면 덩어리와 분진이 수북하게 나왔다. 4호선은 한성대입구역 터널에서 석면이 나왔다.

서울메트로측은 지하철 역사 내에서 TV 광고판 설치, 스크린 도어 설치, 통신 공사 등을 하면서 안전 장치에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많은 양의 석면 먼지가 지하철 역사 내에 날렸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이나 작업자들의 호흡기에 그대로 스며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조사에서 빠진 1, 3, 5호선 등 나머지 구간도 석면 안전 지대라고 볼 수는 없다. 시민환경연구소 최예용 부소장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울메트로 소속 노동자 가운데 폐암 환자들이 많고, 석면폐 직전 단계인 폐기능 저하 현상이 발견되고 있어 향후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를 행정 고발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노후 건물 철거와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도 다량의 석면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런 건물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직·간접적으로 석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재개발 지역이나 건물 리모델링 공사 현장을 지날 때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공장에서 철저한 공정을 거쳐 생산된 공산품은 안전할까. 아니었다. 도시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알려진 자동차와 저탄소 녹색 성장의 상징이 된 자전거에도 석면 제품이 있었다. 자동차와 자전거가 거리를 달릴 때마다 여기에서 나온 석면이 풀풀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전자 제품도 예외가 아니다. 냉장고나 김치냉장고, 세탁기 등에는 전기 모터가 과열로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석면이 든 부품을 사용했다. 국산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의 경우 컴프레서 내부 개스킷 부품에 백석면이 들어 있었다. 가스보일러, 헤어드라이기, 빵 굽는 토스트기 등에도 석면 재료로 만든 부품이 장착되어 있다. 이들 제품을 사용하면서 석면에 노출될 위험은 적지만 고장 수리, 폐기,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석면 노출 위험성이 크다고 한다. 따라서 생활용품의 경우 재활용 과정에서 제대로 분리해 안전하게 폐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밖에도 석면 탈크는 크레파스, 연필, 고무풍선, 껌, 수술용 장갑 등 3천여 가지 제품에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다이어트 식품의 원료와 식품첨가물에도 탈크가 들어간다. 문제는 어떤 제품에 얼마만큼의 석면 탈크가 들어가 있는지 파악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국민 불안감만 키우고 있다.

증세 나타날 때까지는 20~30년 걸려

서울 방화동에 사는 주부 함유미씨(35)는 “석면 성분 제품을 제조해서 판매한 업체들도 문제이지만 식약청은 그동안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 국민 건강을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 것이냐. 아이들에게 쓰는 약품이나 여성들이 쓰는 화장품에까지 발암물질이 있는 석면 제품을 사용했다니 화가 나서 잠이 오지 않는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전문가들은 “석면에 의한 재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경고한다. 석면에 노출된 후 증세가 나타나기까지는 보통 20~30년이 걸린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석면 중독자와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석면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우선 정부가 석면 성분이 들어있는 제품을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가이드라인을 정해 규제에 들어가야 한다.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석면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석면을 사용한 모든 제품은 제조 연도, 책임자 등을 인터넷에 공개하도록 했고, 1987년부터 정부의 권고기준(0.1% 이하)을 마련했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너무 무사 안일하게 대처했다. 정부는 지난 2007년 7월 ‘석면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올해 1월부터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석면이 0.1% 이상 함유된 제품은 제조·수입·사용이 금지되도록 관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쪽짜리 법이었다. 노동부 주도로 이루어지다 보니 주로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의 석면 노출에만 중점을 둔 것이다. 탈크에 대한 법적 관리와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소관 부처가 모호해서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번 베이비파우더 파동 초기에도 식약청은 탈크 석면을 전혀 몰랐다고 해명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은폐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 윤여표 식약청장은 지난 4월9일에야 ‘석면 오염 우려가 있는 의약품 1천1백22개 품목에 대해 판매금지와 회수 결정’ 등 석면 후속 대책을 발표했다. 윤청장은 향후 탈크의 기준·규격 개정안 등 석면 위험을 막을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서울환경연합 이지현 처장은 “지난 사건들을 통해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 기업이든 정부이든 문제가 되었을 때는 무엇이라도 다 해서 해결할 것처럼 나서지만, 시민들의 반응이 잠잠해지면 어느새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번만큼은 시민들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정부가 어떻게 책임을 지는지, 해당 기업은 어떻게 피해를 보상하는지 똑똑히 지켜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4월6일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서울시경찰청 앞에서 석면 공해 방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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