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공화국 망령’ 깨우지 말고 산업 기초부터 다잡아라
  •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 ()
  • 승인 2009.04.2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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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경제는 계속 추락하는데 돈 퍼붓기 정책으로 자산 시장 과열 부추겨…부실 기업 선제적으로 구조조정해야 글로벌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

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세계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처방이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에 1조 달러 이상의 자금을 조성해서 세계 경제 안정을 위해 긴급 투입하고 각국은 별도로 총 5조 달러의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세계 경제가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돈 퍼붓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이 나오자 금융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져 각국의 증시에 불이 붙고 있다. 미국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지수는 3월 이후 한 달여 만에 6천5백 선에서 8천100 선으로 올랐다. 세계 주요 국가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20%를 넘는다. 향후 각국이 정책 집행을 본격화할 경우 이러한 시장의 기대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는 정말 살아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국제 금융시장의 호전에도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 세계 경제는 언제 활동을 재개할지 모르는 휴화산처럼 불안한 상황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대형 기업과 금융회사의 부실이 터질 경우 국제 금융 불안과 세계 경제 위기는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돈 퍼붓기 정책을 계속할 경우 세계 경제는 물가가 급격히 오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생산비가 크게 올라 기업들의 생산 활동이 위축된다. 동시에 소비자물가가 대폭 올라 근로자들의 생계가 불안해진다. 이렇게 되면 경제의 양축인 생산과 소비가 맞물려 서로 무너지는 악순환이 나타나 기업의 연쇄 부도와 대량 실업이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현재 상태에서 돈 퍼붓기만 하는 것은 오히려 불난 집에 다시 석유를 끼얹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현재 세계 경제가 겪고 있는 위기는 국제 금융 체제가 기능을 상실해 실물 경제가 생명력을 잃는 구조적 위기이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증권 산업이 부실화하면서 미국발 위기가 본격화했다. 그러자 곧이어 미국 실물 경제의 상징인 자동차 3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다. 그로부터 불과 네 달 만에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등 은행 산업이 부실 위기에 몰렸다. 금융 산업과 실물 산업이 서로 꼬리를 물고 연쇄적으로 주저앉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각국으로 급속히 파급되어 세계 경제가 함께 침체하는 글로벌 위기를 낳고 있다.

그렇다면 위기의 발원지인 미국 등 선진국부터 과감한 구조조정의 수술을 서둘러 밑 빠진 경제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그 다음 공적자금 투입과 재정 지출 확대 조치를 취해 금융을 정상화하고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세계 경제를 위기에서 구출하고 다시 살아나게 하는 수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돈 퍼붓기 정책으로 인해 자산 시장의 과열 현상부터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9월 금융 위기가 본격화한 이후 정부는 은행에 대해 자본을 늘려주기 위한 자본 확충 펀드 20조원, 부실 채권을 매입하기 위한 구조조정 기금 40조원, 선제적인 자금 지원을 위한 금융 안정 기금 20조원 등 무차별적인 지원 공세에 나섰다. 여기에 정부는 추경을 편성해 총 17조7천억원 규모의 자금을 서민 생활 지원, 공공 근로사업, 4대 강 정비 등에 투입할 예정이다. G-20 국가들과 정책 기조를 같이하며 한 발짝 앞서 대규모 자금 투입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증권시장이 빠른 속도로 가열되고 있다. 주가는 최근 들어 1천3백50 선을 넘어섰다. 50% 이상 상승한 셈이다. 부동산시장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3월 전국 아파트 거래량이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 지난 2월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경인운하 연계 사업의 상호 협력을 위한 공동 기자회견. ⓒ연합뉴스

부동자금 8백조, 증시·부동산으로 몰리면 가격 폭등 가능성 

중요한 사실은 시중에 부동자금이 8백조원이나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 자금이 본격적으로 증시와 부동산시장에 유입될 경우 가격 폭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정부가 재건축 규제 완화, 종부세와 양도세 감면, 초고층 뉴타운 개발 계획의 발표 등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한 갖가지 대책을 동원하고 있어 부동산시장의 폭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2006년과 2007년 부동산시장과 증권시장이 각각 30% 이상 폭등해 경제를 거품으로 들뜨게 한 투기 공화국의 망령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경제가 투기로 다시 들뜰 경우 실물 경제는 숨이 막혀 쓰러진다는 것이다. 자금 흐름이 투기로 집중되어 투자·생산·소비가 모두 위축되는 것은 물론 물가 상승과 투기가 악순환을 이룰 경우 경제가 스스로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실제로 증권과 부동산 가격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실물 경제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월 소비자 판매가 4.7%가 줄었다. 3월 설비 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5%나 감소하고 일자리는 무려 19만5천개나 줄었다. 

향후 어느 나라가 먼저 구조조정을 실시해 부실한 기업과 금융회사를 솎아내고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가에 따라 세계 경제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특히 기존의 산업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고 첨단 제조업을 대대적으로 일으켜 미래 경제 발전의 선두 주자가 되는 나라가 세계 경제 패권을 차지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러한 세계 경제 질서 개편 과정에서 우리 경제는 올바른 대응을 하지 못할 경우 후진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중국 경제의 부상이다. 영국 런던 G-20 정상회의에서 경제 위기의 발원지인 미국은 지도력을 크게 상실했다. 대신 세계 제1위의 외환보유국인 중국이 사실상 경기 회복과 국제 금융 질서를 좌우하는 초강국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세계 경제 위기의 극복에 중국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2조 달러에 이르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도움이 없이는 미국발 금융 위기의 해결은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은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 미국의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 부양 정책에 열쇠를 쥐고 있다. 여기에 세계의 중앙은행으로 일컬어지는 IMF에 대한 대규모 출연을 요구받아 국제 통화 제도 운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 경제가 위기를 방치하고 부실을 키우면 중국 경제 쓰나미에 밀려 쓰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부실한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선제적으로 실시해 다른 나라보다 먼저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면 중국의 압박을 이겨내고 세계 시장을 더 많이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현재와 같이 구조조정 시늉만 하고 돈을 풀면 경제는 부실덩어리가 되어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내수를 살리고 중소기업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하여 경제의 대외의존을 탈피하고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더 나아가 바이오, 신소재, 나노, 대체 에너지, 환경 산업 등 미래 산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기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에 따라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고, 일본을 딛고 중국을 공략하는 공격적인 산업 발전 전략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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