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종주국’ 앞길에 빨간불 켜졌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4.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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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온라인게임, 중국 추격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하락할 위기

▲ 세계 최대 게임 전시회인 E3에 국내 게임업체가 참여해 주목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온라인게임 산업이 성장을 멈추었다. 국내 업체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중국과 일본 업체들이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깎아내리고 있다. 지금까지 비디오게임 시장에 주력했던 미국이나 일본 업체들도 온라인게임을 차세대 성장 산업이라고 여기고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황영철 한나라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국가별 온라인게임 세계 시장 점유율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 5년 동안 답보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2003년 31.4%에서 2007년 34.5%로 소폭 올랐다. 이에 반해 일본이나 중국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빠르게 치솟고 있다. 특히 중국은 불과 4년여 만에 시장 점유율을 24%까지 늘려 종주국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오고 있다.

중국 업체의 성장은 괄목상대할 만하다. 중국 시장은 2005년까지 한국 게임업계의 텃밭이었다. 국내 온라인게임 ‘미르의 전설’, ‘리니지’(엔씨소프트), ‘뮤’(웹젠), ‘라그나로크’(그라비티)가 항상 상위권에 올랐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급변했다. 몇몇 게임을 제외하면 한국 게임 다수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특히 우리나라의 게임산업 원동력이었던 MMORPG는 사실상 중국 순위에서 배제된 상태이다. 그 자리를 중국 게임이 채워가고 있다.

인기 게임 순위에서도 10위권에서 밀려나기 일쑤

최근 엔씨소프트가 출시한 ‘아이온’의 경우 중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넥슨 자회사인 네오플이 개발한 ‘던전앤파이터’와 네오위즈게임즈의 FPS(1인칭 슈팅게임)인 ‘크로스파이어’ 등도 꾸준히 수위를 다투고 있다. 그러나 과거 10위권에 국내 게임이 대다수를 차지한 것과는 여전히 비교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이 종주국 온라인게임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중국 게임 개발사 완미시공이 한국에 서비스하는 ‘완미세계’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 게임은 웬만한 국내 MMORPG(다중접속역할게임)의 인기를 능가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최근 “국내 게임 산업의 경쟁력이 미국, 일본에 이어 3위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중국이 워낙 열심히 하고 있어 3위 자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게임 강국’ 미국이나 유럽의 공세도 위협적이다. 일렉트릭아츠(EA)나 액티비전블리자드 같은 세계 최고의 게임업체들이 온라인게임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부회장(중앙대 교수)은 “풍부한 개발 노하우와 자금력을 앞세워 국내 업체를 위협할 경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세계 온라인게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던 ‘리니지’ 시리즈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액티비젼블리자드)의 돌풍에 힘입어 점유율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업계 전반에 퍼져있는 밑바닥 정서이다. 국내 게임업계는 지난 2000년대 초만 해도 새 게임을 끊이지 않고 개발했다. 투자나 정책 지원도 활발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개념의 게임이 연일 쏟아져 나왔다. 그런 게임업계가 최근에는 모멘텀을 잃고 있다.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투자 자금이 말라버린 탓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엔씨소프트나 네오위즈 등의 1분기 실적을 ‘어닝 서프라이즈’로 예상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일부일 뿐이다. 상당수 업체는 현재 생존 자체를 우려하는 처지이다. 게임 개발사인 J2M소프트의 방경민 사업총괄본부장은 “앞으로 3~4년 시장 흐름은 지금이 결정한다. 최근 게임업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국내 게임업체들이 세계적인 게임업체와 경쟁해서 이겨낼지 걱정스럽다”라고 지적했다.

조만간 게임 개발 인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했던 병역 특례 제도마저 폐지될 위기에 놓이자 우수 인력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방경민 본부장은 “카트라이더나 던전앤드래곤과 같은 인기 게임이 병역 특례병의 손에서 탄생했다. 인적·물적으로 시장이 활발하게 움직였다”라고 말했다. 

게임업계 “정부 지원 없어도 좋으니 규제나 풀어달라”

최승훈 한국게임 산업협회 정책실장은 “과거 너무 많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올 만큼 넘쳐났던 문화 콘텐츠 산업 관련 단체들이 이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을 정도로 수가 줄었다. 새 정부 들어 게임 산업 육성을 전담한 게임 산업진흥원도 산업통합진흥원으로 흡수·통합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게임 산업 육성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해 3천5백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도 향후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게임 산업 육성 예산으로 3천5백억원을 책정했지만 뒷말이 적지 않다. 예산 자체가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황영철 한나라당 의원은 “엔씨소프트는 아이온 개발비로 4년 동안 2백30억원을 투입했다. 엑티비전블리자드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개발비로만 5백억원을 썼다. 전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황에서 외국 대작게임 7개 개발비에 불과한 예산으로 5년간 게임 산업 진흥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게임업계는 ‘지원은 없어도 좋으니 규제나 풀어달라’고 푸념한다. 정부는 지난해 말 ‘게임 산업진흥중장기계획’을 발표한 지 한 달 만인 올해 초 게임 심의료를 1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4백% 인상으로 낮추어 결정되었지만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차라리 투자액 3천5백억원 중 일부를 게임물등급위원회에 지원하고 심의 수수료를 낮추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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