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어느 은행을 좋아할까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5.05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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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신학용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시중 은행의 PB센터 수익 규모’ 자료에 따르면 7개 은행 중 PB사업부의 수익이 늘어난 곳은 하나은행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 서울 정동의 씨티은행 씨티골드(왼쪽). 전국에 있는 KB국민은행 골드앤와이즈 PB센터에서 마련한 갤러리뱅크 전시회에 참가한 고객이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오른쪽·사진은 골드앤와이즈 여의도PB센터). ⓒ시사저널 유장훈

우리나라에서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금융 자산가는 지난해 10만명을 넘어섰다(미국계 투자은행 메릴린치 자료). 내년이면 13만5천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0억 부자들의 증가율 또한 18.9%(전년 대비)로 인도, 중국, 브라질에 이어 4위에 올라 비교적 높은 편이다.

국내 은행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부유층 고객’을 잡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시장 선점을 위해 PB(프라이빗 뱅킹)센터를 경쟁적으로 열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여왔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은행들의 부자 마케팅은 극과 극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부 은행은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PB사업부 수익을 꾸준히 늘려왔다. 반면, 다른 은행은 최근 3년간 오픈한 PB센터 모두가 적자를 낼 정도로 허덕이고 있다.

<시사저널>은 신학용 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에 요청해 제출받은 ‘시중 은행의 PB센터 수익 규모’를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7개 은행 중에서 지난해 PB사업부의 수익이 늘어난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6곳은 모두 수익이나 당기순이익이 전년에 비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신학용 의원은 “은행들이 PB사업의 외형 경쟁에만 치우친 나머지 내실을 다지지 않았다. 그 후유증이 지난해 금융 위기를 통해 드러나 부실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PB사업의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씨티은행도 선방했다는 평가받아

PB사업부의 수익을 유일하게 늘린 곳은 하나은행이다. 단자사에서 출발해 은행으로 성장한 하나은행은 비교적 일찍 PB 영업을 시작한 때문에 관련 인력이나 영업망이 잘 갖추어져 있다. 하나은행은 금융 위기가 한창이었던 지난해에도 17개 PB센터 가운데 16곳이 흑자를 냈다. 전체 수익은 3백29억2천7백만원으로 전년(2백96억3천6백만원)에 비해 9% 상승했다. 지난 2006년 수익(1백96억9천9백만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60%나 성장한 것이다. 당기순이익도 2백77억3천7백만원으로 2006년과 2007년에 비해 각각 46%, 9.4% 증가했다.

시중 은행 중에서 가장 먼저 PB 영업을 시작한 한국씨티은행 역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은행은 지난 1991년 PB 개념을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그러다 지난 2004년 한미은행을 인수하면서 관련 사업을 본격화했다. PB사업부의 규모만으로 본다면 국내 최대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1백47곳의 영업점에 별도의 PB센터를 운영 중이다. 상주하는 PB만 해도 2백46명에 달한다. 지난해 수익과 당기순이익은 6천3백19억2백만원과 3천9백78억3천5백만원. 전년에 비해 각각 4.8%와 9% 떨어졌다. PB 1인당 수익과 당기순이익 역시 전년 동기 대비 9%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같은 수치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은행측의 설명이다. 최원중 한국씨티은행 개인영업추진부 부부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투자심리가 많이 얼어붙었다. 여기에 지난해 말 설립된 PB센터 두 곳이 적자를 기록하면서 수익이 조금 줄었다. 새로 오픈한 센터가 본 궤도에 접어들 경우 수익 역시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외환은행 역시 센터 규모나 PB 수에 비하면 실적이 나쁘지는 않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 은행의 PB센터는 7곳, 상주 PB는 13명이다. 한국씨티은행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총 수익은 2백39억4천6백만원으로 지난해(2백56억3백만원)에 비해 소폭 하락했지만, 2006년(1백71억1천2백만원)과 비교하면 39.9%나 상승했다. PB 1인당 수익 규모나 당기순이익 역시 각각 18억4천2백만원과 13억5천7백만원으로 경쟁 은행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민은행, SC제일은행 등은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국민은행은 전통적으로 소액 다수의 개미 군단 계좌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지난 2002년 PB 영업을 개시하면서 PB사업부에 많은 투자를 했다. 거액을 지급하면서 전문 PB 인력을 영입했다. ‘GOLD & WISE’라는 PB센터도 잇달아 열었고, 금융권 최초로 갤러리뱅크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금융 위기 이전인 지난 2007년 말까지만 해도 수익이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수익이 급락하고 있다. 지난해 이 은행의 PB센터 총수익은 6백3억1천8백만원으로 전년 대비 20%나 하락했다. 특히 당기순이익이나 1인당 당기순이익은 전년에 비해 3백% 가까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은 국민은행·SC제일은행

전문가들은 “국민은행이 지나치게 영업을 확장하면서 겪고 있는 후유증이 아니냐”라고 말한다. 현재 이 은행이 운영하고 있는 PB센터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30개. 지난 2006년 18개에서 2007년 27개로 늘리는 과정에서 9개 센터가 적자를 냈다. 지난해에도 신규 점포를 3개 열었지만 12개 센터가 적자를 냈다. 우리은행의 경우 총 수익은 28억5천6백만원으로 2007년(27억8천3백만원)에 비해 증가세를 보였다. 이에 반해 당기순이익은 2007년 -15억1천5백만원, 2008년 -4억8천2백만원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은행측은 “은행별로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지만 적자 규모는 적은 편이다”라고 해명했다. 우리은행은 최근 3년간 운영한 PB센터가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2007년 3개 센터가 적자가 나 지난해 센터를 하나로 줄였는데도 여전히 실적이 부진한 상태이다.   

이밖에 신한은행이나 SC제일은행도 지난해 수익이 감소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 2006년 조흥은행과의 합병으로 PB사업부가 대폭 강화되었다. 그러나 지난해 수익은 8백29억7백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14.3% 하락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4백34억5천3백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27% 떨어졌다. SC제일은행은 지난 2006년까지만 해도 PB사업부가 있었지만 수입이 전무했다. 고객 자문 역할만 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계정을 분리해 실질적인 영업을 수행했지만 결과가 그렇게 좋지 않다.

4개 센터 중에서 적자를 내는 곳은 없지만 총 수익이 1백90억6천6백만원으로 전년(2백31억6천만원)에 비해 8.2% 감소했다. 이로 인해 PB 1인당 수익 규모도 12억8천7백만원에서 7억6백만원으로 54.9% 줄었다. 당기순이익의 경우 하락 폭이 더하다. 지난해 72억9천100만원으로 전년(1백50억4천2백만원)에 비해 48%나 감소했다. PB 1인당 순이익은 8억3천6백만원에서 2억7천만원으로 떨어졌다. 이 은행 관계자는 “PB사업부는 단순한 실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산이 많은 부유층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적만을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금융계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PB 사업 분야에서 덩치 키우기 경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차별화한 전략을 마련해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금융연구소 관계자는 “국내 은행의 PB비즈니스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자산 관리 노하우나 상품 개발을 위한 전문 인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당 경쟁을 벌이다 보니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점차 치킨 게임으로 변질되고 있는 PB시장을 자정해 건전하게 끌고 갈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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