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일의 수상한 돈 베일 벗을까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05.05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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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수사 급물살 대선 앞두고 주식 집중 매도한 것도 의문

▲ 이명박 대통령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중국 방문 중이던 지난해 5월28일 조찬간담회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검찰의 칼끝이 ‘노무현’을 넘어 이명박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을 향하고 있다. 이미 검찰은 천회장과 관련한 계좌를 샅샅이 훑어보는 등 물밑에서 수사를 상당히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에서도 천회장에 얽힌 여러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소환은 시간 문제가 되었다. 그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대책회의를 했다는 의혹, 민간 기업인 포스코의 회장 선임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천회장이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재정적 후원자였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해지면서 그와 관련된 돈의 흐름이 드러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천회장이 별도의 자금을 마련해 선거 활동을 지원했다면 개인 비리 차원을 넘어 대선 자금 수사로 확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권에서는 천회장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분위기이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예단할 수 없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언론에서 제기된 의혹이나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수사를 진행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특별당비 30억원을 대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천회장은, 30년 지기인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사과상자로 받은 10억원도 이명박 후보 캠프에 건넸을 수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30억원 의혹’ 외에 천회장의 돈이 대선 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은 대선을 앞둔 지난 2007년 천회장과 그의 가족 그리고 일부 계열사가 그동안 보유하고 있던 세중나모여행 주식을 대량으로 매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욱 짙어졌다. <시사저널>의 취재 결과 밝혀진 매각 대금은 3백억원이 넘는다. 천회장은 “주식을 팔기는 했으나 현금화한 것은 없다”라고 주장하지만, 이 가운데 일부라도 정치권으로 흘러간 사실이 드러난다면 검찰 수사는 새로운 파장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별당비 30억원 대납 의혹’과 관련해 천회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와 관련한 그의 해명을 시간대 별로 정리하면 이렇다. ‘천회장은 2007년 11월8일 주식을 매도한 자금 46억원 중 30억원을 11월30일 HK저축은행에 5개월 만기로 정기예금을 했다. 이대통령은 같은 날 이를 담보로 30억원을 빌렸고, 천회장은 이대통령의 양재동 건물에 채권 최고액 39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이대통령은 빌린 돈을 12월3일 특별당비로 당에 제출했다. 정기예금 만기일 하루 전인 이듬해 4월29일 이대통령은 우리은행으로부터 30억원을 대출받아 HK저축은행에 빌린 돈을 갚았다. 우리은행은 이날 서초동 건물에 채권 최고액 36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고, 천회장은 양재동 건물에 설정했던 근저당을 해지했다. 다음 날 천회장은 HK저축은행으로부터 30억원과 예금이자 5천3백30만원을 돌려받았다.

이대통령의 특별당비 30억원 대납, 정상적인 거래로 보기 힘들어

하지만 명쾌하게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다. 먼저 정상적인 거래라면 천회장이 직접 이대통령에게 30억원을 빌려주면 될 일인데 왜 세금과 근저당비, 추가 이자 등으로 5천만원씩이나 손해를 보면서 복잡한 절차를 거쳤냐는 지적이다. 다음으로 시간이 없어 천회장의 예금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면, 곧바로 건물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서 갚으면 손해를 덜 보았을 텐데 왜 예금 만기일이 되기까지 그러지 않았냐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천회장의 돈 30억원으로 특별당비를 낸 이후에 차용이나 대출 근거 자료를 만들어냈다는 의심을 할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정기예금의 가입과 대출이 같은 날 이루어진 것도 의문이다. ‘특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 있다.

천회장과 그의 가족 등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도한 것도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총 3백29억원에 이를 정도로 상당한 규모이다. 천회장이 세중문화재단 등에 증여한 주식까지 합하면 무려 4백억원에 가까운 주식을 불과 반년 사이에 내놓은 셈이 된다. 그 전 해 주식 배당금 16억3천여 만원을 나누어 갖기도 한 이들에게 수백억 원 뭉칫돈이 왜 필요했고,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가 밝혀지지 않아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천회장은 주식 매각 대금 사용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지난 4월28일 보도자료를 통해 “나와 가족이 주식을 판 것은 사실이지만, 그 판매 대금은 각자의 증권계좌에 입금되었을 뿐 이를 현금화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세중나모여행이 공시한 감사 및 사업 보고서, 주식 보유 상황 보고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주식 거래는 여러 날에 걸쳐 ‘시간외 매매’ 형태로 이루어졌다. 천회장은 2007년 4월4일 주당 6천4백원으로 24만주를 15억3천6백만원에 팔았다. 같은 날 두 아들도 15만주와 12만주를 9억6천만원과 7억6천8백만원에 내놓았고, 부인과 딸은 13만주씩을 8억3천2백만원에 매도했다. 여기에 아들 둘이 최대 주주로 있는 세성항운이 23만주를 14억7천2백만원에 팔아 이날 하루 주식 매매 대금이 64억원에 이른다. 두 아들은 5월25일에도 주식 5만1천9백9주와 5만5천6백40주를 내다팔았다. 주당 가격은 7천6백40원으로 각각 3억9천여 만원과 4억2천여 만원을 벌어들였다. 또, 세성항운이 31만6천4백71주를 24억1천여 만원에, 세중아이앤씨가 50만3천6백12주를 38억4천여 만원에 매도해 이날도 70억원에 이르는 대량의 주식이 매매되었다.

주가가 바닥을 치던 시점에 주식을 판 것도 의심 불러

두 차례에 걸쳐 주식을 판 시점이 해당 주가가 서서히 오름세를 보이던 시기여서 주목된다. 2006년 4월 한때 1만7천10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이후 하향세에 접어들면서 2007년 3월에는 6천100원까지 떨어졌다. 그러던 주가가 4~5월을 거치면서 다시 1만원대로 올라섰고, 7월에는 1만3천4백원에 매매가 이루지기도 했다. 회사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대주주들이 바닥을 치던 시점에 주식을 내다판 셈인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식 매각 대금 일부가 대선 캠프에 건너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상식적이지 않아 보이는 거래를 왜 했느냐는 의문에서 비롯된다. 천회장이 주식 매각 나흘 전인 3월30일 고려대 교우회장에 선출되어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이대통령과 박근혜 후보가 본선보다 더 치열한 경선을 치르고 있었던 당시 상황은 의혹을 더욱 부채질한다.

천회장이 주식 36만7천1백98주를 46억6천여 만원에 매도한 11월8일, 두 아들도 32만7천3백57주와 41만2천5백주를 각각 41억5천여 만원과 52억3천여 만원에 팔았다. 딸은 22만5천1백71주를 28억5천여 만원에 넘겼고, 부인은 가지고 있던 주식 1만7천7백74주를 2억2천여 만원에 모두 매도했다. 천회장 가족은 이날 하루 총 1백69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주식 매매로 마련했다. 천회장은 이에 앞서 11월5일 주식 50만주를 세중문화재단과 고려대 교우회, 연세대 동문회 등에 증여했다. 이들 중 가장 많은 19만7천5백주를 증여받은 세중문화재단은 3일 뒤인 11월8일 역시 ‘시간외 매매’ 방식으로 25억여 원에 모든 주식을 내다팔았다. 자산 총액이 14억1천만원가량인 세중문화재단은 천회장이 대표 권한을 갖고 있으며 딸이 이사를 맡고 있다.

주가 조작, 세금 포탈 혐의 적용될 듯…특검 주장도 나와

세 번째 주식 매도의 경우 이전 두 차례와 시장 상황이 달랐다. 당시 주가는 1만2천7백원으로 천장을 찍던 시기였다. 매매 대금 규모가 가장 컸던 데는 주식 수량 자체가 많아서였기도 하지만 주가가 두 배 가까이 뛴 것도 한몫했다. 그러다 보니 대주주가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 주식을 대량 매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매매가 이루어진 11월 이후 주가는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렸고, 2008년 2월에 1만원 아래로 떨어진 주가는 2천원대까지 내려앉기도 했다.

천회장 가족이 2008년 10월 이후 주식을 사들이는 모습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특히 큰 아들은 10월과 11월 두 달 동안 모두 9차례에 걸쳐 42만여 주를 매수했다. 주가는 최하 평균 2천100원대에서 최대 평균 4천2백원대였다. 이로써 큰 아들은 회사 지분을 11% 넘게 보유하게 되었고, 올해 3월27일 아버지인 천회장과 함께 대표이사에 올랐다. 그가 37.4% 지분으로 최대 주주인 세성항운도 2008년 9월과 10월 사이 11차례에 걸쳐 6만여 주를 사들였다.

세중나모여행이 ‘세중’의 모기업 역할을 맡고 있다는 측면에서 큰아들이 회사 지분을 높여 대표이사를 맡게 된 상황은 사업 승계를 염두에 둔 수순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는다. ‘세중’에 소속된 회사 중 코스닥 상장 법인은 세중나모여행이 유일하며 회사 규모도 가장 크다. 나머지 비상장 법인 13개사는 직·간접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관계사로서 천회장 가족이 최대 주주이거나 세중나모여행이 출자한 회사가 대부분이다.

그런 만큼 세중나모여행 지분만 안정적으로 확보해놓으면 다른 회사들도 경영과 소유에서 천회장 가족에게 문제 제기를 하기 힘든 구조이다. 현재 세중나모여행 주식은 천회장이 2백59만여 주(14.62%), 큰아들이 2백9만여 주(11.84%), 작은아들이 1백26만여 주(7%), 딸이 66만여 주(3.76%)를 보유하고 있다. 계열사와 임원까지 합하면 천회장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이들이 보유한 주식이 전체의 약 43%에 이른다. 

천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기 전부터 증권거래법 위반이나 조세 포탈 혐의가 적용될 것이라는 말이 나도는 배경도 이런 기업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 천회장 일가의 주식 매매 행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검찰이 대선 자금 의혹에는 손을 못 대고 주가 조작이나 세금 포탈로 사건을 마무리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라고 예상하면서 “특검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주장했다. ‘천신일 의혹’은 이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 태양열 전지패널.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이명박 정권 출범 후 차세대 에너지로 각광받는 태양광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어 주목을 받았다. 새로운 영역이지만 거침이 없었다. 2008년 5월16일 태양열 전지패널 재료업체인 이너블루에 12억원을 투자해 40.1%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시동을 걸었다. 이어 6월25일 중국 청해성과 규석 채굴권 계약 체결을 완료하면서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규석은 태양열 전지패널의 재료인 폴리실리콘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광물로서, 고순도 규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태양광 산업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런 만큼 ‘규석 매장량 3천만t 이상, 평균 순도 98% 이상, 광구 임대 50년 보장’을 골자로 한 계약 내용은 높은 수익을 기대하게 했다. 11월 현지 광산 탐사를 마친 후 12월 중국 현지법인 설립도 완료했다. 이너블루가 설립 자본금 1억3천만원 전액을 투자한 세중에너지는 13번째 계열사로 등록되었다.

이처럼 사업이 빠른 속도로 추진되자 일각에서는 천회장이 정권 덕을 본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너블루가 계열사로 편입된 직후인 5월27일 천회장은 3박4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대통령의 첫 중국 순방에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동행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구체적인 계약이 좋은 조건으로 체결되었다.

천회장은 방중 기간 사업 지원 방안을 모색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가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중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광산 개발 등에 관해 법적·제도적·인적 자원 등의 협력 및 지원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나누었다. 베이징에 파견 나와 있는 주중 한국대사관 공사의 도움으로 베이징의 유명 법학 박사 및 변호사들을 소개받아 광산 개발과 관련한 자문을 구했다”라고 밝혔다.

사업이 한창이던 시기에 정부가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신생 에너지 분야에 2030년까지 총 1백1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이다. 태양광 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이너블루는 올해 2월11일 한국맥쿼리그룹을 중국 사업을 위한 자본 유치 주관사로 선정해 계약을 마쳤다. 4월8일에는 청해성으로부터 채광 허가증도 취득했다고 밝혔다. 지난 1년여 간 발 빠르게 달려온 사업은 검찰 수사가 임박하면서 궁지에 내몰리고 있는 천회장의 입지 변화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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