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막힌 ‘북핵’, 돌파구는 없는가
  • 김동현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05.1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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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재개 가능성 당분간 희박…미국?북한 관계도 로켓 발사 이후 갈수록 꼬여

▲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연합뉴스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북한 핵문제는 순조롭게 해결되는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였다. 부시 전 대통령은 북한을 원천적으로 혐오하고 불신했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과 같은 불량 국가들과 직접 외교를 통해서 미국과 동맹 국가의 안보 우려를 실용적으로 해소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또한, 과거 클린턴 민주당 정부가 북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 해결에 많이 접근했던 기록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오바마 출범 100일이 지난 현재 북핵 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될 전망은 어느 때보다 불투명해졌다.

북한은 4월14일부터 여러 차례 성명을 통해 “6자회담에는 절대로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4월5일 로켓 발사 직후에도 북한의 6자회담 조귀 복귀를 요구하던 클린턴 국무장관 역시 4월30일 “6자회담의 재개 가능성은 희박하다”라고 말했다. 5월1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조정관인 게어리 세이머는 “6자회담은 9개월 후에나 가능할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그래도 북한은 계속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고 아직 북한과 대화도 한 번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상황만 점점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올해 들어 북한이 크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미국 정부나 국제 기구에서 자기들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이나 불리한 조치들이 있을 때마다, 즉각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클린턴 국무장관이 1월 중순에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비핵화 이전에 북·미 관계 정상화는 없다”라고 말하자, 바로 다음 날 “정상화는 비핵화의 수  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1월 17일 외무성 성명)라고 응수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또 한 가지 달라진 것은 북한이 도발성 위협을 행동으로 바로 옮긴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제 한다면 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대화 실종은 워싱턴과 평양이 서로를 잘못 본 데서 비롯

유엔 안보리가 4월13일 로켓 발사에 따른 제재를 가동할 수 있는 의장성명을 낸 직후 북한은 6자회담 복귀 거부는 물론, 지금까지 6자 틀에서 이루어진 모든 합의를 무효화하고, 불능화된 핵시설들을 원상 복구한 다음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들을 재처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4월14일 외무성 성명). 4월25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재처리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확인했다. 북한은 압박의 강도를 계속 높이면서 “의장성명을 낸 유엔이 사과하지 않는 한 핵실험과 대륙 간 탄도미사일을 시험하고, 경수로 건설을 위한 우라늄 농축 개발에도 착수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4월28일 성명). 북한의 6자회담 불참 결정은 “만약 유엔 안보리가 로켓 발사에 대해서 ‘의장성명’이든 ‘보도문’이든 단 한마디라도 비난하면 6자회담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한 경고(3월26일 외무성 대변인)를 실현한 것이다.

유엔 안보리의 결정에 따라 일단 북한의 3개 기업에 대한 금융 제재와 감시가 추가 제재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압력에 못 이겨 협상에 응해올 것이라고는 지금의 미국 정부도 기대하지 않는 눈치이다. 클린턴 장관은 “우리가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 유엔 안보리 성명을 이끌어내고 강력한 금융 제재에 합의한 것을 보고 북한이 심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북한의 잇단 강경 조치의 배경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조치들은 결정된 것이 없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6자회담과 양자회담을 병행하겠다는 방침과 스티븐 보스워스 대사를 선임 전담 특사로 임명하는 절차상의 변화는 있었다. 그러나 북핵 계획의 검증 가능한 완전 철폐라는 궁극적 목표에서 부시 행정부와 차이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북한은 마침내 “미국의 현 정부는 이전 행정부와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5월4일 외무성 대변인)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현재 북·미 간 대화의 실종을 가져온 원인은 평양과 워싱턴이 서로를 잘못 보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직접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로켓 발사를 강행할 경우, 오바마가 결코 물러설 수 없으리라는 것을 북한은 소홀히 했다. 유엔 제재를 하면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며 반발할 것이라는 예상을 미국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북한의 로켓 발사 동기를 놓고 한국과 미국에서 여러 가지 분석이 뒤따랐다. 북한의 대내 체제 단속용, 오바마의 관심 끌기, 대미 협상력 제고, 미사일 판매 광고용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것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다. 일단 미국과 협상을 해보겠지만 잘 되지 않으면 북한은 자기 나름으로 살길을 찾기 위해 고립과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무력을 증강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지도부는 핵무기와 전달 체계인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면 미국이나 한국이 쳐들어오지 못한다고 믿고 있다.

미국, 북한에 끌려갈 수 없어 고민

워싱턴은 북한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은 일단 핵보유 국가로서 인정받는 것을 전제로 한 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그리고 자주권 존중을 원한다. 많은 전문가는 북한이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미국 정부 역시 여하한 경우에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분명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또, 북한이 아무리 압박을 가해와도 결코 북한에 끌려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미국은 당분간 북한에 대한 제재 수위를 조절하면서 북한이 대화에 응해오기를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로켓 발사의 여진이 가라앉을 때까지, 앞으로 길게는 9개월까지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은 아직은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아니다. 미국에게는 북한보다 시급한 문제가 많이 있다. 한국이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이듯 북핵 문제도 미국이 당면한 여러 비확산 안보 문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문제를 도외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북한의 비핵화에 실패하면, 핵을 가진 북한을 관리하면서 한국이나 일본이 핵개발을 하지 않고서도 안심할 수 있는 안보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할 가능성도 있다.

결코 전쟁이 대안이 될 수 없는 현실에서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 방법에 대해 좀더 다각적인 모색이 필요하다. 6자회담은 5개 참가국들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핵심 당사자인 북한이 싫다고 외면하는 데 문제가 있다. 북한은 최근에 미국의 식량 지원도 거부했고, 북한에 와 있는 인도적 지원 민간 기구들도 모두 추방했다. 북한은 미국이나 한국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결국, 평화적으로 북한 문제를 풀려면 한국과 미국이 장기 전략적으로 새로운 대화의 계기와 협상의 틀을 만들어내야 한다. 협상을 통한 비핵화는 여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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