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불똥’이용훈에 튀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5.2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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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 대법원장의 인사 정책에 불만…신대법관 사퇴 땐 동반 책임론 나올 수도

▲ 5월21일 이용훈 대법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신영철 대법관 사태를 단순히 신대법관 한 개인의 문제로 보면 안 된다. 신대법관뿐만 아니라 지난 4년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에 대한 법원 내부의 평가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간단하지가 않다.”

신대법관의 ‘촛불 집회 재판 촉구’ 논란으로 대법원 윤리위원회가 한창 조사를 벌이고 있던 지난 5월 초에 만났던 사법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신대법관이 지난해 10~11월 단독 판사들에게 보냈던 ‘촛불 집회 재판 촉구 전자우편’이 지난 3월 언론에 보도되면서 신영철 사태의 서막이 올랐다. 대법원ㄴ은 부랴부랴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진행한 뒤 “신대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볼 소지가 있다”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공’을 다시 대법원 윤리위로 넘겼다. 윤리위는 5월8일 “신대법관의 행위가 사법행정권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이용훈 대법원장으로 하여금 신대법관에게 ‘경고 또는 주의 조치’를 내릴 것을 권고했다. 그러자 법원 내부 통신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윤리위의 결정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신대법관을 향해 사퇴를 촉구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이대법원장이 5월13일 신대법관에게 ‘엄중 경고, 유감 표명’이라는 레드카드를 꺼내들었지만, 판사들의 집단 행동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지난 5월14일 서울중앙지법·남부지법을 필두로 ‘판사회의’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사법부 내부에서 얽히고설켜 있던 문제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사법부의 수장인 이용훈 대법원장이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신대법관의 ‘불똥’이 이대법원장에게 튀는 것이 아니냐”라는 관측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우선,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던 이대법원장이 신대법관과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신대법관은 지난해 10~11월 단독 판사들에게 여러 차례 ‘촛불 집회 재판 촉구’ 내용을 담은 전자우편을 보냈다. 그는 전자우편에서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다”라면서도 “대체로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라고 썼다. 이대법원장은 이번 사태가 터지자 “(신대법관의 전자우편이) 대체로 내가 말한 원칙과 일맥상통한다. 그런 것으로 판사들이 압박을 받아서야 되겠느냐”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일선 판사들은 “원장님이 정말 현실을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얘기한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 한 소장 판사는 “당장 부장판사가 재판과 관련해 한마디만 해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신대법관이 ‘원장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언급했는데, 어느 판사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와 맞물려서, 최근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장의 과거 발언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06년 2월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형제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해 “절도범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기업 범죄에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다면 국민이 수긍하기 어렵다”라고 비판했던 발언이다. 당시 법원 일각에서는 “대법원장의 발언이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당시와 비슷한 우려가 법원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근무 평정 시스템에 불만…법원행정처 출신 우대도 반감 사

▲ 지난 2월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신영철 대법관. ⓒ시사저널 유장훈

여기에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의 인사 정책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심지어 이번 사태의 본질이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승진 문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현행 인사 제도는 법원장이 각 법관에 대한 평가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고등부장 승진 여부를 결정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부하 판사들의 인사 고과가 높게 나와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다 보니,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대상자들은 부하들을 더 ‘닦달’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재판 개입으로까지 연결된다. 이로 인해 일선 판사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이대법원장은 법관 인사에 반영되는 근무 평정 제도를 대폭 강화했다. 판사가 형사 사건에서는 실형을 선고한 비율, 민사 사건에서는 조정이나 화해를 성사시킨 비율 등이 근무 평정에 반영된다. 여기에 사건을 처리한 비율과 평균 사건 처리 일수까지 세세히 인사 고과에 반영된다. 이는 그가 추진했던 사법 개혁의 일환이다. 하지만 일선 판사들은 이를 버거워하는 눈치이다. 부장판사 등으로부터 “사건을 빨리 처리하라”라는 재촉을 자주 받는다고 하소연한 판사도 있었다.

특히 재판의 조정·화해 비율이 높을수록 인사에 유리하게 반영되는데, 이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경력 21년차인 한 법조계 인사는 “이대법원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판사들이 재판을 진행하던 도중에 ‘화해하라’고 권고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화해하고 조정하려는 취지는 좋지만, 잘잘못은 끝까지 따져야 할 것이 아닌가. 조정이나 화해를 성사시킨 비율이 높을수록 인사 고과 점수가 높기 때문에 판사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은 이해한다. 하지만 권투 시합을 한창 하고 있는 선수들(검사와 변호사)에게 심판(판사)이 먼저 나서서 경기를 중간에 끝내는 꼴이다”라는 불만을 털어놓았다. 

아무튼 법원의 인사 문제가 이번 사태가 빚어진 본질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판사들 가운데는 “대법원장이 인사에 대한 쇄신책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야만 ‘판사회의’와 같은 집단 행동을 그만둘 수 있는 명분도 생긴다는 것이다.

신영철 파문을 계기로 터진 ‘사법파동’ 막후에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한 2005년 9월 이후 법원행정처나 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들에게 쌓였던 불만들이 폭발한 측면도 있다. 판사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근무 평정 제도의 컨트롤타워가 바로 사법부의 요직으로 통하는 법원행정처이다. ‘케케묵은’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엘리트주의도 일선 판사들의 반감을 사왔다. 여기에 이대법원장 체제 이후 법원행정처 자리를 거쳐간 판사들만 우대하는 사법부 내부 분위기가 강화된 것도 일선 판사들이 불만을 갖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법원장의 재판 배당권 남용 막기 위한 예규 개정에 씁쓸한 반응

▲ 5월21일 신영철 대법관 사태와 관련해 열린 판사회의에 판사들이 참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대법원장은 박시환 대법관이 초대 회장을 지냈고,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등이 소속되었던 개혁 성향의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을 행정처의 요직에 앉혔다. 이 모임의 김종훈 변호사를 비서실장으로 앉히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법원장이 ‘우리법연구회’ 출신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말이 법원 담장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이 변했다’라는 말까지 덧붙여졌다. 취임 초기만 해도 ‘개혁 성향’이었으나, ‘보수 성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을 잘 알고 있는 법무부장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난 5월18일 기자와 만나 “노무현 정부 당시 부산·경남 출신들이 대거 공직에 오르자, 호남 출신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이대법원장은 전남 보성 출신이다). 그는 원래 보수적인 성향이었다. 2005년 대법원장이 되고 나서는 개혁적인 성향으로 바뀐 듯했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를 맞추기 위해 노선을 바꾸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사법부 안팎에서 ‘대법원장의 사법 개혁 의지가 떨어진 것이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내가 보아도 그는 원래의 보수 성향으로 돌아온 듯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이번 판사회의를 주도한 판사들이 대체로 젊고 개혁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판사 경력 10년차 안팎으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법복을 입었다. 1968년부터 법관 업무를 시작했던 이대법원장과는 이래저래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13년 동안 판사 생활을 했던 한 변호사는 “내가 20대 말에 처음 법관으로 임용되었을 때는 나름대로 개혁 성향이었다고 자평한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듯이, 당연히 법관 개개인의 양심에 따라 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원장이든 부장판사든 그 어떤 권력이든 그 누구도 내 재판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법원도 엄연한 조직이었고, 조직의 규칙에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개인의 양심’이 아닌 ‘법원의 양식’에 맞추어서 재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점은 내가 재직했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일단 신영철 파문이 이대법원장에게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만약 신대법관이 사퇴하게 되면 대법원장의 책임론이 급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지난 2월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대법관으로 제청했다는 책임론을 피할 수 없다. 신대법관이 대법관으로 제청될 당시는 법원 내부에서는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촛불 재판에 개입한 것 같다’라는 소문이 나돌던 시점이었다. 대법원장도 사태의 심각성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신법원장을 대법관으로 제청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법원장를 비롯한 수뇌부가 임기응변식으로 이번 사태를 대처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5월15일 법원장의 재판 배당권 남용을 막기 위한 ‘배당 예규’를 개정하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오는 9월까지 결과물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도 법원 안팎에서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그때그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대책안을 내놓는 것 같아 씁쓸하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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