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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힘 뺀 ‘싼티’와 ‘루저’들이 뜬다

‘양극화·민생 파탄’ 등 절망의 시대 정서 담은 장기하와 얼굴들 등에 대중들 호응…잘나가는 1류보다 친근한 3류에 주목

하재근 (문화평론가) ㅣ 승인 2009.06.02(Tue) 17: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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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저 문화를 표방하는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왼쪽), 오른쪽은 요즘 ‘싼티’를 내세우며 전성기를 맞고 있는 붐.
ⓒAP연합

루저(Loser) 문화의 공습이 시작되었다는 호들갑이 곳곳에서 들린다.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성공이 여기에 기폭제가 되었다. 대형 기획사의 화려한 아이돌들이 지배하는 가요판에서 인디밴드의 성공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장기하와 얼굴들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루저 코드였다.

과거에도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 같은 인디밴드들이 성공했던 예가 있다. 홍대 앞에서 태어난 이 밴드들은 1990년대 한국 경제의 낙관적인 자신감을 그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들의 음악은 밝고 빠르다. 그 노래에 담긴 코드는 낙관적인 젊음의 질주이다. ‘말 달리자’라며 흥겹게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1990년대 말 홍대 앞 인디밴드들의 부흥은 서구 펑크록과 얼터너티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펑크록과 얼터너티브는 상업화된 대형 록그룹에 대한 인디밴드의 반란이었다. 특히 펑크록이 이런 전복적 코드를 대표한다. 펑크록 밴드들은 기존의 가치들을 비웃으며, 생생한 날것의 불온함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한국의 홍대 앞에서 부흥한 펑크 인디밴드들의 음악은 전복이나 불온함보다는, 흥겨움의 색채가 강했다. 1990년대는 한국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풍요로워진 시기이다. 그때 이 땅의 대중문화는 획기적인 발전과 다양화를 이룩했다. 인디밴드들의 성공은 HOT와 영화가 성장하고, 한류 드라마를 준비했던 그 시기의 풍요로움과 맞물렸다. 그런 밝음의 코드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펑크록을 즐기던 홍대 앞의 사람들은 아주 쉽게 2000년대에 레이브파티, 테크노, R&B라는 환락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출구 없는 청년들이 루저 문화 주류” 

장기하와 얼굴들은 전혀 다른 정서를 표방하기 때문에 1990년대에 부흥한 인디밴드와 구별된다. 바로 2000년대의 정서이다. 한국 사회에서 2000년대를 표상하는 단어는 ‘양극화-민생 파탄’이라고 할 수 있다. 민생 파탄이 20대 젊은이들에게 투영된 것은 ‘88만원 세대’이다. 이제 풍요로움은 없다.

풍요 속의 빈곤과 불안이 있을 뿐이다. 2000년대 들어 자살률이 세계 최고로 치솟고, 빈부 격차는 사상 최대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다. 20대의 반 이상은 비정규직이 되어야 할 신세이다. 인디음악의 수요자층인 대학생은 엄청난 등록금의 부담에 채무자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도 흥겹게 놀지 못한다. 스펙 경쟁이 입시 경쟁 이상으로 20대를 짓누른다.

문화를 해설하는 사람들은 이런 시대를 표상해줄 문화 상품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래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등장하자마자 루저 문화의 공습이라며 너도나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최근까지도 TV에서는 막장 코드와 재벌 코드, 신데렐라, 코미디 판타지가 흥행을 휩쓸었었다. 루저 문화가 전면에 나섰다고 하기에는 이른 느낌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사회 상황이 출구 없는 청년 루저를 양산하고 있으므로 루저 문화는 곧 주류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결국, 출구 없는 빈곤과 양극화, 삶의 척박함이 독한 드라마, 독한 예능, 신분 상승 판타지, 코미디 판타지의 전성시대를 만드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출구 없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묘사하는 루저 문화를 키우게 되는 것이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 바퀴벌레 한 마리쯤 쓱 지나가도.”

장기하와 얼굴들의 히트곡인 <싸구려 커피>의 가사이다. 여기에는 미래의 희망도, 성공하려는 열망도 없다. 그저 반지하방에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일상의 묘사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패배자의 정서라는 뜻으로 루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것이 등장하자마자 문화적 분석 대상이 되며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얼마나 이 시대가 답답한 패배자들의 시대인지를 방증한다. 청년들의 처지가 비참해질수록 루저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갈 것이다.

싼티 나는 게스트에도 시청자들 환호 

스스로 루저이며 ‘싼티’임을 내세우는 예능인도 뜨고 있다. 최근 경제 불황으로 유명 MC들이 구조조정되는 가운데 노골적으로 ‘싼티’를 내세우는 붐이 조용한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붐은 자신이 결코 주연이 아닌, 주최측의 요구대로 몸을 던져 분위기를 띄워주는 3류라고 내세운다. 대중은 그런 3류를 받아들였다.

1류 MC들을 모아 버라이어티를 구성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대망>에 대중은 냉담했다. 반대로 좀더 생활 캐릭터에 가까운 아저씨들을 모은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은 호평받았다. 사람들은 승승장구하는 유명 MC들보다 인생의 굴곡을 안은 아저씨의 이야기에 더 친근함을 느꼈다.

<1박2일>의 출연자들도 럭셔리보다는 싼티에 가깝다. 결정적으로 <1박2일>은 싼티 나는 게스트들만을 고집함으로써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유명 MC와 유명 게스트로 쇼를 진행하며 침몰했다. <패밀리가 떴다>는 스타 게스트 전략을 고수하면서 시청률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특별히 지지를 받지는 못한다. 반대로 <1박2일>의 싼티 전략은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었다. <1박2일>의 게스트 가운데는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에서 루저라고 분류될 수 있는 인물도 있었지만, 대중은 스타가 아닌 그런 사람들에게서 동질감과 따뜻함을 느꼈다.

<무한도전>도 루저와 싼티의 집합체이다.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등이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고 할 때 시청자는 그것이 입에 바른 말이 아니라 정말이라고 느낀다. 최근 결코 럭셔리해 보이지 않는 가수 길이 <무한도전>에 진출하며 싼티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또, 승리자가 아닌 패배자가 되어 기꺼이 굴욕을 당하는 사람이 뜬다. 예컨대 1인자로 군림해온 탁재훈과 예능 천재로 불린 신정환이 약세로 돌아선 반면에, 1인자였다가 굴욕을 당하며 후배들의 놀림감이 된 이경규가 제3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절대 강자인 유재석과 강호동은 언제나 굴욕당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이 군림만 했다면 지금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스튜디오 안에서 항상 성공한 사람의 모습으로 있는 신동엽은 과거의 사랑을 잃어가고 있다. 그의 재능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여전히 천재적 예능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중은 비록 어눌하더라도 루저, 싼티, 굴욕 코드에서 사람 냄새를 맡으며 위안을 얻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출구 없는 불안, 양극화, 빈곤, 패배감 등이 이어지는 한 막장적 신데렐라 코미디 판타지의 허황된 밝음과 루저, 싼티, 굴욕의 ‘지질함’이 공존하는 이 기이한 풍경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전자는 대중에게 환상을 안겨주고, 후자는 위안과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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