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 선생님’ 온라인 게임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6.0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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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몰입 가능해 교육 현장에서 교재로 인기

▲ G러닝 시범학교로 지정된 서울 발산초등학교는 오는 2학기부터 온라인 게임 ‘디지몬RPG’를 활용한 수학 수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온라인 게임 하면 학부모들은 달갑지 않게 받아들인다. 폭력적이고 중독성이 강해 자녀들의 교육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온라인 게임에 사용하는 아이템을 거래하거나 사이버 머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기 사건에 연루되는 10대 청소년들이 적지 않아 더욱 그렇다. 일선 경찰서에는 관련 고소·고발 사건이 하루에만 수십 건씩 접수되고 있다.

그런 온라인 게임이 최근 교육용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재미’와 ‘몰입’이 가능한 게임의 특성을 학교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 이름도 ‘G러닝 프로젝트(게임 활용 교육)’로 정했다. 위정현 콘텐츠경영연구소장(중앙대 교수)은 “온라인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도 많다. 게임의 재미를 학교 수업에 접목한다면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위교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G러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는 특히 학습 의욕이 낮은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어 온라인 게임에 내재한 흡입력을 교육에 활용할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위교수는 이에 따라 지난 3월 서울 발산초등학교(수학)와 우신초등학교(영어), 동두천 중앙고등학교(영어)를 G러닝 시범학교로 지정했다. 이들 학교는 9월부터 영어나 수학 시간 일부를 온라인 게임으로 대체할 예정이다.

‘G러닝 프로젝트’ 이름 내걸고 게임 활용 교육 연구 활발

온라인 게임을 공교육에 적용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일례로 수학 수업에서는 교과서에 표시된 그림을 일일이 세며 숫자를 읽히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에서는 훨씬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사냥을 하면서 1레벨 몬스터가 몇 마리 나타났는지, 2레벨 몬스터 숫자는 얼마인지를 알아맞히며 흥미를 자극한다. 비율이나 확률 영역도 응용이 가능하다.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는 레벨에 따라 때리는 횟수가 달라진다. 레벨이 다른 몬스터를 내보내 그 비율이나 확률을 계산하는 식이다. 발산초등학교 김학래 교사는 “일반 게임과 마찬가지로 ‘퀘스트’(임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수업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 현재 콘텐츠경영연구소 및 게임업체와 함께 콘텐츠를 다양화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영어 수업도 마찬가지이다.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를 보면 된장 만들기 과정이 있다. 그림이 일부 있지만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온라인 게임인 ‘군주온라인’의 영어판 서비스에 접속하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게임을 통해 된장 만들기를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 단어도 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원 청명고는 지난해 9월 영어 수업에 온라인 게임을 도입해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교육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평균 점수(67.8점)가 그렇지 않은 학생(62.4점)보다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 학교 영어교사인 이은경씨는 “학생들이 놀라울 만큼의 집중도를 보였다. 그 전에는 50분의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온라인 게임을 적용하니 학생들이 1시간30분 동안 진지하게 학습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이라고 불리는 기능성 게임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독일 외무장관은 “청소년의 창의성 개발에 도움이 되는 기능성 게임을 육성해야 한다”라며 그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유엔 미래포럼 회장인 제롬 글렌은 한 포럼에서 “미래 교육의 키워드는 직접 보고, 만지며, 느끼는 게임 형태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럽의 상당수 국가는 현재 게임업체와 민간 연구 기관이 공동 개발한 에듀 게임(교육용 게임)을 정규 수업 커리큘럼에 포함시키고 있다. 때문에 기능성 게임의 시장 규모는 미국에서만 지난 2005년 5천만 달러를 넘어섰고, 2010년에는 3억6천만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등에 비해서는 늦었지만, 일본도 최근 게임의 활용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아예 기능성 게임을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게임’으로 부르고 있으며, 교토 야와타 시 교육위원회는 닌텐도DS를 수업에 도입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문화진흥팀 윤종원 책임연구원은 “기능성 게임은 차세대 기술과 교육 콘텐츠를 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기존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급속한 성장이 예상된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온라인 게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빛소프트, NHN, 엔씨소프트 등은 온라인 게임과 학습지를 결합한 ‘에듀 게임’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NHN이 최근 선보인 ‘한자마루’의 경우 출시 한 달여 만에 30만명이 회원에 가입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위정현 교수팀이 진행 중인 ‘G러닝 프로젝트’ 역시 세계 최초로 온라인을 통해 에듀 게임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성장은 더뎌

이런 가운데 아주대 조선미 교수팀은 최근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터넷 중독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청소년 2백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3분의 2 이상이 리니지, 와우(WOW) 등 RPG(역학 수행 게임)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의 게임 시간은 평균 4시간이었고, 21.7%는 하루 10시간 이상 게임을 했다.

이들 가운데 71.1%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라고 답했다. 우울증, 충동 조절 장애, 주의력 결핍 행동 장애 등 공존 질환을 겪고 있는 청소년도 85%에 달했다. 온라인 게임이 단순히 즐기는 수준을 넘어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황보택근 경원대 교수는 “미국의 기능성 게임 시장은 5년여 만에 7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도 닌텐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능성 게임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고 이로 인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시장 창출이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G러닝 프로젝트의 시범학교로 선정된 발산초등학교에서도 한때 학부모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김학래 교사는 “게임을 수업에 도입하는 문제를 놓고 학부모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처음에는 70~80%가 반대했다. 나중에 학부모 연수를 통해 게임의 순기능을 전하며 설득하고 나서야 수업을 할 수 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학교측은 자칫 생겨날 수 있는 아이들의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강구 중이다. 수업 시간 외에는 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하고, 별도의 게임 중독 예방 교육을 통해 중독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위정현 교수는 “G러닝 프로젝트의 핵심은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며 교육 효율을 높여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방치했다가는 자칫 게임 중독자를 양산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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