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에 가린 ‘씁쓸한 인생’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06.0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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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의 ‘현미경’으로 도시인의 심층 심리 파헤쳐

대한민국의 도시는 갈수록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새 모습으로 단장을 거듭해가는데, 도시인은 점점 더 외로워하고 불안해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무장하고, 밤이면 밤마다 술판이나 노래판, 춤판까지 벌이는 도시인이 왜 그럴까.

여기서 ‘도시인’이란 도시의 삶에 익숙해져 사회의 시스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자아를 찾아 헤매기 싫은 듯 정체성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북적대는 인파에 떠밀려가듯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살아간다면 ‘도시인’이다.

사회학적인 분석이나 경제학적인 해석이 때로는 도시인을 대변해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도시인의 일상과 행동 방식을 다 말해줄 수는 없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 심리학>을 펴낸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는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을 아우르는 현미경으로 도시 곳곳을 들여다보며 도시인의 심층 심리에 파고들었다.

저자는 “원래 도시의 삶은 이런 것이고, 너만 힘든 게 아니니까 참고 살라는 말은 무책임하다. 사회 현상을 병리적으로 해석하기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보다 이 안에 사는 ‘나’라는 개인, ‘너’라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결국 관계와 집단, 더 나아가 사회와 도시가 조금 더 행복한 곳으로 바뀔 수 있는 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집필 의도를 설명했다.

도시는 사람들을 모아놓았지만 ‘뭉치지는’ 못하게 장치들을 철저히 마련한 듯하다. ‘쾌락을 행복으로 오인하는’ 도시인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무분별한 쾌락을 추구하고, 복잡한 관계 속에서 소통의 부재와 상처만 쌓으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는 태연한 척 속으로만 끙끙댄다. 그래서 편안하기도 한 문명의 이기가 펼쳐낸 도시의 시스템과 도시를 구성하며 도시인을 먹여 살리는 조직 문화 등은 오히려 도시인들을 힘들게 하고 외롭게 하고, 그래서 찾아온 정서적 허기는 그 무엇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저자는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구분하면서도 감정적 단절이나 소통의 부재를 걱정하는 도시인의 속마음에 어떤 생각이 숨겨져 있는지, 24시 편의점·김밥집·교회·직장 회식 자리·노래방·사주카페를 뒤지고 심지어 성매매 장소까지 탐문했다.

▲ 촛불 집회 현장에 가면을 쓰고 참여한 영화 관련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 ⓒ연합뉴스
저자는 커피전문점에서는 자신의 취향을 한껏 드러내며 까다롭기 그지없어도 직장에서는 커피믹스에 관대한 도시인을 보며 개성화와 사회화의 극단을 발견해낸다.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폭탄주를 ‘평등’하게 돌리고는 집단 퇴행 상태에 빠져 동질성을 확인하는 모습에서, 그 순간만큼이라도 ‘우리는 친하다’라는 최면에 빠져 행복해하는 ‘씁쓸한 인생’을 재생해 보여준다. 실연을 탓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불완전한 삶에 대한 자기애적 폭력임을 일깨우고, ‘지름신(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사 버리게 만든다는 가상의 신) 강림’을 빌미로 사치와 낭비를 포장하는 도시인의 모습에 자기합리화에 익숙한 현대인의 모습을 들추어낸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편의점과 김밥집이 ‘편의’를 넘어 ‘욕망의 가속도’에 엑셀을 밟는 것임을 일깨우기도 하고, 노래방 등 놀이 공간에서도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즐길 줄 모르는 도시인을 꼬집는다. 학연·지연·혈연을 떼놓고는 군중 속의 고독을 견뎌내기 힘든 도시인에게서는 자기 확신의 부족 증세를 진단해낸다.

저자는 “자기 확신감이 없는 사람일수록 강력한 집단이 갖는 힘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향유하는 데 거리낌이 적다.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집단 논리를 100% 자기 것으로 흡수한다. 집단의 논리나 지향점이 분명할 때, 혹은 집단의 소속감이나 응집력이 단단할수록 큰 존재감을 경험한다”라고 말했다. 개인화로 인해 독립성이 강해지는 반면, 공동체적 삶이 주는 정서적 포만감에서 결핍이 생긴 사람들은,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집단’을 찾아나서고 그 집단을 안전망으로 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익명의 섬’ 인터넷 동호회가 붐비는 까닭

인터넷 동호회의 활성화가 눈부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덧붙였다. 최소한의 소통과 만남으로 자신의 안전망이 되어줄 수 있는 집단. 직장·학교와 같은 공적인 관계나 동문회나 향우회 같은 고전적 인간관계의 얽매임에서 오는 피곤함은 괴롭다면서, 대안으로 찾아낸 집단에서 아이디를 이름 대신 부르며 산행을 하는 등 뭉치기도 한다. 인터넷상에서 작은 노력에도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게 된 블로그나 카페의 출현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쩌면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이 영혼이 가난한 ‘도시인’일지도 모른다. 허세 부리거나 애써 밝은 표정을 짓는 도시인의 눈빛에, 아니라고 우겨도 속에 감춘 불안과 외로움은 금세 드러난다. 그래서 전화도 하지 않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인터넷에서 만나는 것이 더 편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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