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도 ‘외국인’ 바람이 분다
  • 김지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9.06.2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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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홍보 등 ‘현장 밀착형’ 업무 수행…지자체에서는 “활약 뛰어나다” 반겨

▲ 경기도 과천시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더글라스 빈스 교수가 행정고시 합격자들을 상대로 영어교육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가장 선호하는 배우자 직업, 안정적인 직장의 대명사, 그래서 경쟁이 치열한 ‘공무원’ 자리를 두고 몇 년 후에는 외국인들과 경쟁하게 될지 모른다. 중앙 행정 부처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까지 외국인 공무원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외국인 공무원들의 업무는 외국어로 된 각종 서류를 감수하거나 국제 행사에서 안내나 통역을 하고, 공무원들의 외국어 교육을 담당하는 것 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투자 및 기업 유치를 담당하는 경제 부서나, 국가 이미지 홍보, 마케팅 업무에 참여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또, 행정안전부 중앙공무원교육센터에는 해외에서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준비 중인 정부 관료와 행정고시 합격자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외국인 공무원도 있다.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중앙 행정 부처 산하 기관과 전국 지자체에 근무하는 외국인 공무원 숫자는 총 23명이다. 지난 2008년 8월 행정안전부에서 집계한 결과이다. 올 들어 외국인 공무원을 채용한 지자체들이 늘어 지금은 그 숫자가 30명 가까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전국 지자체 중에서 외국인 공무원이 가장 많았던 부산광역시는 올해도 외국인을 한 명 더 채용해 여섯 명이 되었다. 제주도 역시 올 들어 외국인 공무원을 한 명 더 충원했다.

외국인 공무원들은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한다. 그것도 상당수는 전임이 아니라 일정 시간만 근무하는 비전임 계약직 신분이다. 이들에게는 ‘한국인도 일자리 구하기가 힘든데, 공무원 같이 좋은 직장을 외국인에게 넘겨야 하느냐’라는 세간의 눈총이 따라다닌다. ‘외국인 공무원이 중요한 국가 정보를 빼돌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의혹어린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이 때문에 지자체장들은 외국인 공무원을 고용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한다.

‘국가 기밀 유출’에 대한 우려도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경상북도 안동시와 같이 일본과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지역에서는 수년째 외국인 공무원이 맹활약 중이다. 업무도 단순히 외국어 통·번역이나 행사 안내를 넘어 지역 관광을 활성화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외국인 공무원은 안동시청 관광사업과에 6년째 근무 중인 오가타 게이코 씨이다. 관광 책자를 제작하거나 관광 일정을 기획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류를 감수하거나 행사 통역, 세미나 참석자 섭외 등 일본 관련 업무를 모조리 도맡고 있다. 4개월마다 한 번씩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기고도 하고 매주 라디오 방송에도 나간다. 안동시청 인사과 관계자는 “일본 관광객 유치 업무에서 게이코 씨의 활약은 매우 뛰어나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게이코 씨도 초기에는 ‘게이코가 나가면 다른 한국인 세 명이 일할 수 있다’라고 불만을 나타내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게이코 씨의 역할을 대체할 사람은 없다. 그녀의 말 한마디마다 전문성이 드러난다. “일본인 관광객은 본래의 안동 하회마을을 보고 싶어 하는데, 한국은 박물관이나 기념관 세우는 데 중점을 두니 효과가 작다. 또, 일본인들은 넉넉하게 한두 시간 동안 한 장소를 둘러보고 싶어 하는데, 한국인들은 빡빡하게 일정을 구성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내가 일정을 잡는다.”

게이코 씨와 같이 안동시 관광사업과에서 일하는 중국인 왕위 씨도 같은 취지로 말했다. “중국인이 선호하는 관광 형태는 중국인이 가장 잘 안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은 한국 어디에나 흔한 ‘한복 입기’ 대신 새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원한다. 이런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외국인이다. 또, 관광객 유치를 위해 중국 여행사와 접촉할 때에도 내가 중국인이라 거부감 없이 대해 유리했다. 적어도 관광 분야에는 외국인 공무원이 꼭 필요하다.”

국제적인 행사나 교류, 기업 간 경제 협력이 일상화되면서 이런 전문 분야에 외국인 공무원이 진출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부산시청 인사팀 관계자는 “국제 행사나 업무도 많고, 경제자유구역청이 있어 기업 간 교류가 흔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외국인 공무원이 더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자연히 부산에서는 외국인 공무원이 담당하는 업무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부산시청 국제교류협력담당관실 앤드류 폴 존스톤 씨의 주요 업무는 홍보팸플릿, 연설문 초안, 공고문 서안 등에 쓰인 영어 표현이 적절한지 감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처음으로 2010년 IWA(세계물환경협회) 행사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홍보물과 비디오 자료를 만들 때 외국인 입장에서 의견이 어떤지 묻고, 반영한 것이 기억난다. 단순히 영어를 감수하는 역할을 넘어 내용과 관련해서도 외국인 공무원을 활용하는 것이 한국에 유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투자유치본부의 폴 라나리 씨 역시 “투자 분야의 일이 하고 싶어서 지난해 투자유치본부의 홍보 업무에 지원했다. 이집트·케냐인 등 100명이 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홍보 업무를 했다. 외국인 공무원들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 한국에 정책을 조언하거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행정안전부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근무하는 더글라스 빈스 씨의 업무도 단순한 영어 강사 수준을 넘어선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기 위해 연수를 가는 정부 관료들에게 외국 생활에 적응하는 방법부터 수업 방식, 학위 논문 쓰는 방법까지 다양하게 교육한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5급 공무원들에게는 리더십 교육도 한다. 외국 협상 테이블에 나가는 정부 관료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일부 맡고 있다. 빈스 씨의 사례는 외국인 공무원들의 업무 영역이 단순한 서류 번역이나 통역에서 나아가 좀더 ‘중요한’ 영역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개방성·자신감 보여주는 사례

현재 국가공무원법 26조의 3은 외국인 공무원을 ‘공권력을 행사하거나 정책 결정, 그밖에 국가 보안 및 기밀에 관계되는 분야가 아닌’ 경우 ‘기간을 정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만 채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4조에 의해 외국인은 ‘계약직 공무원’ 신분만 가능하다. 계약 기간은 최대 5년까지이다. 5년이 지나면 같은 업무를 맡더라도 인터뷰 등 적절한 신규 임용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 등 제한이 많다.

하지만 최근 지자체들 사이에서는 조례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가 안보와 보안·기밀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외국인을 ‘별정직 공무원’으로도 임용할 수 있도록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미 서울·인천·전주 등은 이런 내용으로 조례를 개정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속도를 높이고 있는 조례 개정 움직임을 걱정하기도 한다. 전문위원이나 핵심 정책 결정 부서의 자문위원으로 외국인 공무원 임용을 확대하다 보면 국가 기밀이 유출되거나, 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초,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준비위원회가 출범하던 당시 ‘파란 눈 장·차관’이 바람직한지를 놓고 일었던 찬반 논란이 그대로 재현되는 양상이다.

현재까지 외국인 공무원은 중앙 행정부 차원의 외교·통상 등 굵직한 부분보다는 당장 필요한 곳에서 ‘현장 밀착형’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별정직 공무원’ 자리를 외국인에게 개방할 것인지는 논의의 대상이지만, 지자체의 관광객 유치와 홍보, 각종 행사의 통·번역, 외국어 교육 등을 담당할 외국인 공무원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현장 밀착형 요구는 더 높아져서 다문화가정의 폭력과 자녀 문제를 지원할 외국인 공무원이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방안도 나오고 있다.

늘어나는 ‘외국인 공무원’은 고려 시대에 다양한 귀화인들을 받아들여 문화의 힘을 키웠던 것처럼 우리 사회의 개방성과 자신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앤드류 폴 존스톤 씨의 표현대로 한국은 이미 다양한 외국인이 들어와 섞여 사는 ‘(미국을 샐러드 볼에 비유하듯) 아이언 라이스 볼’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 인연 이어 부산시청에서만 7년째

한국 최초 외국인 공무원 앤드류 씨

 
영국 잉글랜드 출신인 앤드류 폴 존스톤 씨가 한국 최초의 외국인 공무원이 된 것은 2003년 2월이다. 2002년 7월 국가공무원법에 26조의 3항이 신설되어 외국인도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되면서 앤드류 씨에게 최초로 이 법이 적용되었다. 첫 외국인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후 그는 7년간 변함없이 부산시청에서 일하고 있다. 동료들과 일상적으로 한국말로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우리말 실력도 수준급이다.

앤드류 씨는 살아온 인생 자체가 한국과 연관되어 있다. 1994년 한국에 처음 왔다가 매료되어 1996년에 재입국한 뒤 1999년까지 정부가 추진하는 영어교육 프로그램의 강사로 일했다. 2001년과 2002년에는 아시안게임과 한·일월드컵에서 무보수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부산시청과 인연을 맺었다. 2001년에는 당시 안상영 부산시장에게 직접 편지를 쓴 적도 있다. “부산시가 세계 도시가 되려면 시청 내에도 영어 감수와 영어교육을 담당할 외국인이 필요하다”라는 취지였다. 결국, 앤드류 씨는 2002년부터 2003년까지 근무하던 동아대에서 객원교수 지위를 유지하는 대신 전임강사로 바꾸고 부산시청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보통의 한국인 공무원보다 낮다고 보기 힘들 것 같다.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두 딸을 둔 그는 한국과 부산은 살기 좋은 도시이지만 나이가 더 들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잉글랜드에서는 가족들의 외모가 달라도 ‘동네 주민’으로 살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10년 넘게 살아도 외모가 다르다고 ‘외국인’으로만 대한다”라고 말했다. 앤드류 씨는 계약 기간이 끝나는 2012년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다며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부산시청 공무원’으로 일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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