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밖의 ‘숨막히는 전쟁’
  • 오광춘 (스포츠서울 기자) ()
  • 승인 2009.06.2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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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호 ‘신화 창조’의 숨은 조력자들 / 비디오 분석·의무·장비 등 지원 스태프 역할 막중

▲ 6월17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이란전에 앞서 국기에 대해 경례하고 있는 대표팀 스태프들. ⓒ시사저널 유장훈

#1.비디오 분석관 김세윤씨는 축구 대표팀의 소집 전부터 바빠진다. 결전 상대의 숨겨진 공략 포인트를 찾느라 비디오 카메라와 컴퓨터 사이를 분주히 오간다. 적의 평가전이 있으면 해외까지 날아가 정탐병처럼 상대 경기를 카메라에 담아오는 일도 한다. 대표팀보다 몇 발짝 앞서 적과 끊임없이 머리 싸움을 하고, 또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2. 1994년부터 대표팀의 몸 상태를 돌봐온 최주영 의무팀장은 소집만 되면 마음을 졸인다. 몸과 몸이 맞부딪히는 축구 속성상 부상은 언제나 따라붙는다. 부상자를 치료하고 관리하는 것이 그의 몫인데, 매일 훈련과 경기가 끝나는 심야 시간대에 선수들의 부상 치료를 하는 터라 자정이 되어서야 일이 끝나는 편이다. 경기가 시작되면 불안은 최정점에 이른다. 경기 중 그를 향해 손을 드는 선수가 가장 무섭다고 한다.

#3. 장비 담당 차윤석씨는 대표팀이 소집되면 파주NFC의 장비실에서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한다. 훈련복과 축구화, 운동화, 경기 유니폼까지 모두 그가 관리한다. 옷이 해지거나 더러워지면 선수들은 모두 그를 찾는다. 땀이 밴 운동복을 매일 챙겨 세탁까지 해서 정갈하게 개켜놓아야 하고, 훈련 전에는 축구공 등 훈련 용품을 미리 그라운드에 챙기는 몫까지 도맡는다. 해외 원정이라도 가게 되면 30kg짜리 큰 가방에 각종 옷가지와 훈련 도구까지 20~30개 분량을 싸야 한다.

대표팀의 지원 스태프는 어떻게 꾸려지나

▲ 훈련 중에 김진규 선수가 박주영 선수의 다리를 잡아주고 있다.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이 최주영 대표팀 의무팀장이다. ⓒ연합뉴스

지난 6월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이란(1-1 무승부)과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최종전을 끝으로 축구 대표팀 ‘허정무호’가 1년6개월간 달려온 ‘남아공으로 가는 길’의 마침표를 찍었다. 대표팀의 주장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막내 기성용(FC서울) 등 태극 전사들과 허정무 감독 등 코칭스태프는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며 대업을 이룬 주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축구팬들의 시선이 몇몇의 스타로 향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렇다고 화려한 ‘빛’에 가려진 ‘그림자’들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으려면 다른 선수에게 도움을 받는 팀플레이가 중요하듯, 선수들의 활약이 있기까지는 우직한 조력자들의 뒷바라지는 필수적이다.  

대표팀은 남아공월드컵 예선을 치르면서 매번 소집 때마다 23명 내외의 선수단을 꾸린다. 허정무 감독과 정해성·김현태·박태하 코치는 오랜 기간 K리그와 해외 리그를 돌며 대표팀 후보들의 면면을 살핀 뒤 소집 명단을 짜는데, 그 명단 발표와 맞물려 대표팀 지원 스태프도 일제히 규합된다. 

구성은 이렇다. 대표팀의 해외 업무(해외 원정시 사전 답사 및 훈련장·숙소 예약 등)는 전한진 국가대표팀 지원팀 차장이 도맡는다. 아울러 대표팀 소집시 각 구단에 차출 공문 발송부터 비행 스케줄, 대표팀이 소집되면 각종 일정부터 소소한 뒷수발까지 책임지는 것은 주무 조준헌 과장의 몫이다. 이외에 대표팀이 뜨면 언론에 관계된 통로를 구축하는 이원재 미디어 담당, 또 상대팀 정보 수집의 젖줄을 만드는 김세윤 비디오 분석관, 또 선수들의 몸 관리를 도맡는 최주영·황인우·임현택 의무 담당, 차윤석 장비 담당, 반데를레이 피지컬 트레이너, 신승호 통역이 고정 멤버이다. 여기에 해외 원정이나 경기 당일 합류하는 송준섭 대표팀 주치의, 또 해외 원정시 대표팀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김형채 조리사, 또 오지나 위험성이 있는 해외 원정시 동행하는 김성태 안전 담당이 추가된다. 대표팀 지원 스태프는 기본적으로 10명에서 13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대표팀 지원 스태프 중 경력이 가장 오래된 인물은 최주영 의무팀장이다. “이번 남아공월드컵 예선전에서는 유난히 부상자들이 많아 애를 먹었다. 지난 2월 이란 원정에서 나를 괴롭히는 ‘4인방’이 있었다. 당시 김정우·이청용·기성용·조용형은 결국, 선발 출전했지만 부상 때문에 결전일까지 씨름해야 했다. 또, 지난 4월 북한전을 뛰고 종아리 근육 파열로 프리미어리그 위건에서 데뷔전을 늦춰야 했던 조원희를 보고는 굉장히 미안하고 서글펐다”라고 말했다.

김세윤 분석관은 “이번 예선을 치르며 이란과 UAE 원정을 가서 선수단의 비디오 분석 시간이 마련되었는데, 빔 플레이어와 노트북을 연결하는 케이블이 말썽을 부려 애를 먹었다. 왜 한국에서는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이 원정만 가면 잘 안 되는지, 이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있다”라고 회상했다. 반더를레이 피지컬 트레이너의 말을 전하는 통역 신승호씨는 “체력 프로그램은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훈련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체력 훈련을 레크리에이션화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따분하고 힘들 수 있는 상황을 재미있고 즐거운 프로그램으로 대체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지원 스태프 체제가 한국 축구에 자리를 잡은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준비할 때만 해도 대표팀에는 주무와 해외 업무를 담당하는 이가 전부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훈련 장비는 대표팀 내 막내들이 들고 다녔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 체제가 들어서면서 지원 스태프 체제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이어서 뭔가 성적이 필요했던 당시 축구협회는 대표팀에 전적인 지원을 쏟았다. 의무 담당도 추가되고 아울러 장비 담당도 생겨났다. 이와 더불어 히딩크 감독은 ‘파워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체력 담당 전문 코치를 들여오고, 또 경기를 분석하는 전문가도 등용했으며, 대표팀을 관장하는 언론 담당관까지 두기도 했다. 비로서 이 시기부터 대표팀 관리가 체계화되고 분업화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일찍이 월드컵 등 주관 대회의 선수단 인적 구성원에 선수뿐 아니라 지원 스태프까지 포함시켜왔다. 한국의 지원 스태프 구성은 사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다행히 2002년부터 체제가 잡히고, 2006 독일월드컵을 거치면서 대표팀 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했다. 대표팀 관계자는 “세계 각국의 지원 스태프 현황은 비슷하다. 그러나 점점 갈수록 지원 체계가 세련되고 업무 또한 구체화·전문화되고 있다”라며 세계적인 조류를 소개했다.

7연속 월드컵 본선행의 근저에는 2002년 이후 도입된 지원 스태프의 대표팀 관리법이 자리를 잡은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리는 남아공월드컵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선수들의 최적의 컨디션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지원 스태프의 도움이 더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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