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나라에서 특별한 전시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6.3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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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여는 쿠바 한인 3세 화가 알리시아 데 라 캄파 팍 씨

ⓒ연합뉴스

1919년, 잘살아 보겠다는 꿈을 안은 한국인들이 영국 상선 일포드 호에 올라 머나먼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다. 일포드 호는 계약 노동을 맺은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이민선이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멕시코였다. 이들은 4년 동안 착취나 다름없는 저임금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작업을 해야만 했다. 막상 고용 기간이 끝난 뒤 이들은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일부는 멕시코의 다른 지역으로, 일부는 쿠바 등 다른 중남미 국가로 흘러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쿠바에 들어온 한인의 수는 대략 2백80명 정도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후손도 수만 명으로 늘어났다. 알리시아 데 라 캄파 팍은 쿠바의 한국인 3세 중 한 명으로 라틴아메리카, 유럽, 미국 등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화가이다. 1966년 스페인계 쿠바인 아버지와 한국 후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최고 아카데미상(Best Academy Award)을 수상한 적도 있다. 쿠바의 명문 예술학교인 산 알레한드로 아카데미(San Alejandro Academy)를 졸업한 뒤 이 학교에서 강사로도 재직한 바 있다. 이미 쿠바에서는 유명인이다.

얼핏 보기에도 그녀의 얼굴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가 아는 한국의 모습은 어머니에게서 들은 것이 전부였다. 어머니 역시 외할머니에게 들은 것이 전부였다. 대부분이 어렵고 힘들 때의 이야기였다. 한국은 ‘혈통’이라는 점에서는 특별한 곳이지만 미수교국이라는 이유로, 멀다는 이유로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서 찾을 수 있는 한국인의 정체성은 ‘Pak’이라는 이름 끝의 세 글자가 전부였다.


6월25일부터 7월12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반디에서는 알리시아 데 라 캄파 팍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개인전을 위해 알리시아 데 라 캄파 팍은 직접 한국을 찾았다. 갤러리 반디측은 “라틴아메리카의 거장인 프리다 칼로의 영향을 받았다는 그녀의 작품은 여성들이 가지는 환상을 주된 테마로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알리시아는 이곳에서 받은 느낌들을 토대로 “한국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라고 전했다. 30여 시간을 날아서 도착한 외할머니의 조국에서 그녀가 어떤 영감을 받고 돌아갈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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