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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그룹, 춘추전국시대 맞았다

소녀시대·원더걸스의 ‘투톱’ 체제 속 카라·다비치·쥬얼리·2NE1등 급부상하며 ‘각축’

하재근 (문화평론가) ㅣ 승인 2009.07.07(Tue) 12: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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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줄 왼쪽부터 카라, 원더걸스, 다비치, 2NE1. 뒷줄은 소녀시대.

ⓒ(앞줄 왼쪽부터)시사저널 임준선, 연합뉴스, 시사저널 임준선, 연합뉴스, (뒷줄)KBS제공

2009년 상반기를 강타했던 걸 그룹의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오히려 점점 더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다. 새해 벽두부터 한국사회를 평정했던 소녀시대는 여름을 맞아 신곡을 내놓으며 지난 주말 새로운 신드롬을 일으켰다. 소녀시대의 이미지컷, 의상, 춤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모두 화제가 되고 있다.

소녀시대의 신곡이 등장하기 직전에는 신인 걸 그룹 2NE1과 포미닛의 대결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이 두 신인 그룹은 데뷔하자마자 열렬한 팬들을 끌어모아 인터넷에서 대전을 펼치고 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유희열이 가장 열광한 가수는 바로 걸 그룹인 카라였다. 원더걸스는 계속 나라 밖에서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걸 그룹의 위상이 압도적인 현 상황을 일컬어 한 매체는 ‘걸 그룹 대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TV 연예 정보 프로그램의 상반기 가요계 결산에서도 걸 그룹의 활약이 단연 최고의 이슈였다. 수많은 걸 그룹이 일시에 백가쟁명하는, 가히 걸 그룹 춘추전국시대 할 만하다.

소녀시대는 진(晉), 원더걸스는 진(秦)나라

현재 걸 그룹 중 패자(覇者)를 지목한다면 아무래도 소녀시대일 수밖에 없다. 소녀시대는 춘추시대로 치면 진(晉)나라 정도의 느낌이다. 진(晉)나라는 춘추시대의 최강국 중 하나였으며 중원의 한복판에서 중화의 정통을 이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춘추시대 다음에 오는 전국시대 때에도 진(晉)나라에서 갈린 3국이 모두 전국 7웅에 포함될 정도로 진(晉)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소녀시대는 원더걸스와 함께 투톱을 형성하는데, 이 둘 중에서는 소녀시대 쪽이 정통 걸 그룹에 더 가깝다. ‘동생 같고, 조카 같고, 여자 친구 같은 밝고 귀여운 여자아이들의 발랄한 율동과 노래’를 특징으로 하는 걸 그룹의 성격에 소녀시대가 더 가깝기 때문이다. 동시에 현재 한국에서의 존재감도 압도적이다. 그러므로 소녀시대의 위상은 중원을 차지한 정통 패자인 진(晉)나라에 비견된다. 원더걸스는 진(秦)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진(秦)나라는 처음에는 존재감이 미미했으나 초강국으로 자라나 결국, 중국을 통일한다. 진나라는 원래 오랑캐에 가까운 나라로서 정통 중화 세력이 아니었으며, 중원에서 벗어난 서쪽 지방을 제패한 정도로 만족했어야 할 세력으로 보였다. 원더걸스도 처음 <아이러니>로 데뷔했을 때에는 존재감이 미미했었으나, <텔 미>를 발표하며 순식간에 지존이 되었다. 소녀시대의 경우에는 데뷔곡부터 파란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일단 힘을 기른 후에는 진(秦)나라의 무력이 더 압도적이었던 것처럼, <텔 미> 이후에는 원더걸스의 히트곡이 소녀시대의 히트곡을 압도했다.

원더걸스는 소녀시대 같은 정통 걸 그룹이 아닌 변칙이다. 걸 그룹임에도 ‘섹시’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여움을 잃지는 않았다. 그래서 변칙 걸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진(秦)나라가 서쪽 오랑캐에 가까운 변칙 중화였던 것과 비슷하다. 진(秦)나라가 서쪽 지역을 평정하기 위해 중원으로부터 창끝을 돌렸던 것처럼, 원더걸스도 현재 서양인 미국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원정을 나가 있다. 다시 중원으로 컴백한 진(秦)나라의 위력이 대륙을 흔들었던 것처럼, 다시 원더걸스가 한국으로 컴백하는 날 소녀시대의 패권천하는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2NE1·카라, 각각 초나라·제나라와 닮은꼴

춘추시대에 중원을 떨게 했던 야성의 강국이 있다. 바로 남방의 초나라이다. 초나라는 더욱 오랑캐에 가까웠다. 춘추시대의 기본 질서인 주나라 왕실에 대한 존중을 가장 먼저 폐기한 것도 초나라였다. 이런 초나라의 이미지에는 2NE1이 어울린다고 하겠다. 2NE1은 새내기이다. 그러면서도 데뷔하자마자 기존 패권주자들에 못지않은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중원문명에 들어서자마자 중원을 뒤흔들었던 초나라처럼.

2NE1도 정통 걸 그룹이 아닌 변칙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귀여운 소녀다움도 아니고, 섹시함도 아닌 야성적 강렬함이다. 이들은 여타 걸 그룹들의 분위기를 완전히 무시하고 파워풀한 야성미를 장착했다. 그 변칙성과 패기가 오만한 남방 강국 초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초나라는 일단 진(秦)나라의 중국 통일 때 망했다가 순식간에 초패왕 항우를 앞세워 다시 천하를 뒤흔든다. 2NE1의 잠재력도 그에 비할 만큼 상당한 수준이다. 제나라는 두 진나라나 초나라보다는 존재감이 떨어지지만 어쨌든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내내 강국의 면모를 유지했다. 주나라의 개국공신인 강태공이 봉해진 나라이기도 하고, 춘추시대 최초의 중원패자로서 정통의 이미지가 강하다.

카라는 이런 제나라에 비할 수 있겠다. 카라는 소녀시대나 원더걸스보다 존재감이 떨어지며, 2NE1처럼 강렬하지도 않다. 그러나 가장 정통 걸 그룹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귀엽고 발랄한 소녀 이미지에 춤도 웨이브류가 아닌 소녀 율동 컨셉트이다. 그러면서 걸 그룹 천하의 한 축을 차지했으니 중원의 강국 제나라라 할 만하다.

쥬얼리는 어떨까? 걸 그룹 천하의 패자라고 하기는 힘드나 그에 못지않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패자의 지위를 넘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춘추시대에 이어 전국시대에까지 전국 7웅으로 살아남으며, 한때 제나라를 유린하고 진시황의 암살을 기획하기도 했던 연나라에 비할 수 있겠다. 애프터스쿨은 걸 그룹에 성인 취향을 섞은 경우이다. 데뷔 당시 상당히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므로 오랑캐의 전법을 채용해 잠시 국력을 신장시켰던 조나라에 비할 수 있다. 상반기에 남규리 탈퇴 소동으로 힘이 빠진 씨야는 국력이 쇠잔해졌던 노나라 정도라는 느낌이다. 다비치는 중원을 치기 위해 막강한 힘을 비축하는 오나라에 비할 수 있다. 오나라는 상당히 늦게 나타났지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자마자 중원의 판도를 흔들었다. 다비치도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하며 순식간에 주요 걸 그룹 반열에 올랐다. 최근 데뷔한 포미닛은 오나라 다음에 등장하는 월나라 정도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포미닛은 2NE1과 함께 데뷔하며 매스컴으로부터 양강 구도를 형성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어린 애프터스쿨 정도의 분위기로 아직까지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잠재력을 비축하고 있는 신흥 세력인 월나라에 비할 수 있겠다.

이상이 ‘걸 그룹 대란’이라고 일컬어지는 2009 걸 그룹 춘추전국시대의 지형도이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분열쟁패기를 ‘천하대란’이라며 두려워했었다.

걸 그룹들의 쟁패는 진짜 전쟁이 아니니 두렵지는 않고 흥미진진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가요계가 점점 더 부박해짐을 나타내는 징후라는 점에서는 ‘대란’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기도 하다. 3대 기타리스트 소리를 듣는 로커가 ‘예능 늦둥이’가 되어 있는 것은 이런 대란의 그림자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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