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철군, 그 다음은 아무도 모른다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9.07.0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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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협정에 따라 2011년 말까지 단계적 철수 아프가니스탄 전쟁 장기화되면 ‘실패’ 되풀이

▲ 6월30일 이라크 디얄라 주의 주도 바쿠바에 주둔 중인 미군 병사가 철수를 앞두고 짐들을 정리한 박스를 옮기고 있다. ⓒ로이터

‘불필요한 전쟁’으로 낙인찍힌 이라크 전쟁이 6년 만에 막을 내린다.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 13만명 중 선발대가 지난 6월30일을 기해 수도 바그다드와 주요 도시에서 철군을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공약에 따른 것이다. 미국과 이라크 간에 지난 1월 체결된 안보협정에 따라 전투 병력은 2010년 8월31일까지, 잔여 미군은 2011년 말까지 모두 철수한다.

살육과 파괴로 얼룩진 이라크 전쟁은 천문학적 기록들을 양산했다. 총 전쟁 비용 3조 달러, 미군 전사자 4천3백명, 이라크인 사망자 3만~4만명, 난민 4백만명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얻은 것은 별로 없다. 9·11을 자행한 알카에다는 여전히 준동하고 철군 이후의 이라크 정정은 불안하다. 심지어 미국 발 금융 위기도 이라크 전쟁 때문에 터졌다는 주장도 있다.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려던 이상은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알카에다의 지원을 받는 수니파 반군과 이란의 비호를 받는 민병대는 자살 폭탄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6월 한 달 동안에도 미군과 이라크인 2백50명이 사망했다.

이라크 정부가 스스로 치안을 담당할 준비가 되어 있든 아니든 철군은 시작되었다. 게다가 이라크인들은 철군을 환영한다. 이라크 정부는 철군 개시 D-데이로 잡힌 6월30일을 ‘주권의 날’로 정하고 휴일을 선포했다. 누리 카말 알 말리키 총리는 ‘축제의 날’이라고도 했다. 미군이 1차로 철수하는 바그다드와 주요 도시 주민들은 앞으로 더 많은 인명 피해를 낼 자살 폭탄 공격 등이 예상되는데도 철군이 반갑다는 표정이다. 미국이 엄청난 인명과 자원을 투입하고도 이라크인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역사적으로 외국 군대의 주둔을 경험하지 못한 이라크인들이 외국 군대에 대해 갖는 무조건적인 혐오감도 일부 작용하기는 했다. 

▲ 6월29일 이라크 안바르 주 주도 라마디에서 진행될 미군 철수 소식을 접한 보안군들이 일제히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다. ⓒAP연합

이라크 보안군과 경찰은 자력으로 치안 담당할 수준 못돼

2년 전까지도 증원에 열을 올리던 미국이 철군을 개시한 이면에는 오바마의 공약 외에 말리키 이라크 총리의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 지나친 권력 독점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는 그는, 내년 1월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 철군을 시킴으로써 이라크의 주권을 회복해 독립을 쟁취했다는 평가를 득표로 연결하고 싶은 것이다. 그는 재집권을 통해 시아파 정부를 강화하고 수니파의 저항을 무산시키겠다는 야망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철군이 가져올 후유증은 만만찮아 보인다. 우선 이라크 보안군과 경찰이 자력으로 치안을 담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철군이 시작된 당일에도 북부 도시에서 폭탄이 터져 24명이 죽었다. 말리키 총리가 선거를 의식해 철군에 너무 빨리 동의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실 몇 주 전까지도 미국은 바그다드 인근과 알카에다의 준동이 심한 북부 모술 지역에 일부 미군 병력의 잔류를 요청하기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이라크 정부는 그런 요청을 하지 않았다. 

명분과 논리가 결여된 이라크 전쟁은 미국 공화당 행정부의 퇴장과 미국 역사상 최초인 흑인 대통령의 등장을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이 최고 수준인 13만명으로 증원된 지난해 8월 당시 뉴욕타임스는 전비가 초당 5천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는 경제 상황 악화는 이라크 전쟁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라크에 투입한 돈을 국내에서 사용했다면 경제가 지금처럼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취약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유동성을 높이고 감세를 하다가 주택 버블과 소비 붐을 자초했다. 이로 인해 서브프라임 위기가 발생했고, 세계적 경제 위기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부시 행정부가 엄청난 전비를 주로 외국의 차입금으로 충당했다는 점이다. 이라크 전비로 발생한 부채의 40%는 중국 등 외국에서 빌린 것이다. 미국이 돈을 빌려 큰 전쟁을 치른 것은 이라크가 처음이다.

전쟁의 후유증을 둘러싼 논쟁은 뜨겁다. 매일 4억 달러를 쓰면서 이라크로 갈 필요성이 있었느냐는 것이 논쟁의 초점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을 전비 차원에서만 따지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듯하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참담한 실패로 규정한 오바마 행정부도 이 전쟁이 중동에 대한 미국의 결의를 과시한 전략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다만, 이라크 전쟁으로 너무 넓은 지역에 미군을 산개함으로써 한반도를 포함한 여타 분쟁 지역에서의 전력을 약화시킨 측면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 미국은 이라크에 주둔했던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동시켜 그곳에서 세를 불리고 있는 알카에다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태세이다. 또한, 파키스탄이 알카에다의 수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파키스탄 내 테러 그룹에 대한 작전도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라크 철군이 한반도에 미치는 의미는 특히 중대하다.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라크 철군은 긴 안목에서 보면 오바마의 도박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를 궤멸시키는 데 성공해 또 다른 9·11의 잠재적 위험을 근절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이라크가 다시 불안해지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장기화되면 부시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철군이 개시된 날 오바마 행정부 지도자들이 별다른 논평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도 철군 이후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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