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과의 전쟁’ 이기려면 공교육 본질 회복시켜라
  •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 ()
  • 승인 2009.07.1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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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앞장서 자율형 사립고 설립하면 사교육비 크게 늘어 되레 역효과…초·중·고 12년 무상 교육 도입하면 줄어들 것

▲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

최근 사교육을 줄이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제기되고 있다. 학원 야간 수강 금지를 추진하려고도 했고, 외국어고등학교 입시 제도를 변화시키겠다는 발표가 있었으며, ‘사교육 없는 학교’를 지정해 각종 지원금을 뿌리고 있다. 정부가 ‘사교육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서민의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겠다는 말도 흘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정 간에 정책 혼선과 갈등이 일어나면서 제대로 실천되는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효과가 의심되는 내용들도 있어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임시방편 처방과 아이디어 양산으로 사교육이 줄어들 수 있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교육을 줄이려는 이러한 시도는 무의미하게 끝날 것임이 명약관화하다. 왜냐하면 정부의 교육 정책이 오히려 사교육을 더 부추기는 방식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이 증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최근 문제시되는 사교육은 대학 입시를 둘러싼 고등학생 수준의 문제만이 아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중학교, 초등학교 학생들의 과도한 사교육 의존율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적어도 지금의 사교육의 총량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양적 규모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팽창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1980~90년대 초등학생들이 참여했던 사교육 활동은 지금의 그것과 내용 면에서 많이 달랐다. 그 당시에는 대개 피아노, 태권도, 컴퓨터, 수영 등 예체능 관련 사교육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예체능 이외에도 국어, 영어, 수학 등 입시 도구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특목고에 진학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에서 선행 학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중학교 입시가 문제시되면서 이제는 좋은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영어 공부를 위한 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화되었다. 초등학생들이 이렇게 사교육에 많이 참여하는데 중·고등학생들은 더 말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교육비 총량이 20조9천억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수치는 실제 지출되는 액수와 비교할 때 아주 일부분에 불과한 수준이다. 학원 강사들의 고액 불법 과외가 판을 치고 있고, 수강료 이외의 다양한 명분으로 추가 비용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러한 공개된 수치보다 실제 사교육비는 두 배 이상이 될 것이다.

지역 간·계층 간 교육 기회의 불평등도 더 깊어져

▲ 지난 2월12일 서울 덕성여중을 방문, 수업을 참관한 뒤 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자율과 경쟁을 주창하는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이 전면 수정되고 있다. 평준화 체제의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출발해 시험, 성적, 경쟁, 평가, 정보 공개, 책무성을 강조하는 일련의 정책들이 강화되고 있다.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자율형 사립고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에 2009년도에 30개를 시작으로 2011년까지 전국에 100개의 자율형 사립고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확정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다양한 고등학교 유형과 그 비중이 증가되면 당연히 고등학교 입시의 전면 부활 같은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교육시장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준비에 열을 올리게 되며 학부모들의 위기 의식을 자극하고, 그 결과 사교육비는 더욱 증가하게 된다. 이것이 현재 사교육 증가의 구조적 문제이다. 고등학교 다양화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현 정부가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정말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다.

학교 다양화 정책으로 특목고, 기숙형 공립고·자율형 사립고 등이 3백여 개 된다면, 이것은 전체 일반계고 1천4백93곳의 20%에 해당되는 수치이다. 또, 지역의 성적 순위에 민감한 유권자들을 의식해,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들이 앞다투어 특목고 설립을 추진할 가능성도 크다. 머지않은 시기에 전국 고교가 상위 20~30%에 해당하는 ‘명문고 리그’와 ‘나머지 리그’로 나뉘고, 지역 간·계층 간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의 입학 정원은 2008학년도를 기준으로 할 경우 전국의 23%를 차지한다. 따라서 고등학교 입학 단계에서 시험을 거쳐 입학하는 학교가 전국 고등학교의 20~30%를 차지하게 된다면, 이들 학교의 졸업자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입학 정원을 훨씬 넘어서게 된다. 아울러 대학 입학에 대한 자율권을 대학에 일임하게 된다면 고교 내신 제도의 근본적인 틀이 무너지고 고등학교 평준화 체제가 무너지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확대가 미치는 사회적 파장은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사교육을 절반으로 줄이고 학교 만족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이 정부의 교육 정책 역시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경제 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교육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도된다면 대도시에서 농어촌까지 전국에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교육 광풍이 몰아칠 것이다.

이러한 정책 기조 속에서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학원을 단속하고, 불법 과외를 줄이겠다고 엄포를 놓고,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노력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등학교 입시를 부활하는 정책부터 대폭 수정하고, 다양한 교육 활동이 공교육 장면에서 가능하도록 하고, 대학 입시에서 이러한 학교에서의 교육 활동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안에 더욱 몰두하게 된다면 사교육비는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을 근원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

적어도 사교육의 순기능을 살리고 역기능을 줄이려는 노력, 그것은 다름 아닌 학생 중심, 공교육의 본질 회복을 위한 학교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단계의 12년 교육을 선발이나 경쟁에 치우치지 않고 누구나 공통적인 내용을 학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려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선진 OECD 국가 대부분은 12년 무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루 빨리 12년 무상 교육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히 사교육비는 줄어들 것이다. 제발 드러난 현상에만 몰두하고 문제의 근원을 무시하는 접근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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