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뜨는 이유
  • 김해·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09.07.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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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언행’과 균형 감각, 노무현 정치 승계 최적격자 군불 땐 민주당은 긍정적 반응…친노 그룹 신당 차단용?

▲ 7월10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서 열린 안장식에서 분향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 ⓒ시사저널 유장훈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늘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청와대 재직 때부터 공적인 자리이건 사적인 자리이건 ‘정치할 생각 없느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한결같이 “안 한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2004년 총선 때 그는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출마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자리마저 박차고 그는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떠났다. 과로했기 때문에 쉬고 싶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선거판에 발 담그기 싫다는 그의 강력한 의사 표현이었다. 반평생을 함께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청와대 생활도 고사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정치권과 담을 쌓고 지냈다.

안장식이 거행된 현지에서도 뉴스의 초점은 문 전 실장이었다. 하지만 그의 꾹 닫혀진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취재진이 몰려들어도 주변에서 아예 “오늘은 정치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다”라며 차단해 버렸다. 이날 그가 한 말은 “재단을 빨리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라는 한 마디였다.

정치에 대한 문 전 실장의 기피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그의 정치 참여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10월 재·보선에서 경남 양산 지역구에 출마하거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출마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한나라당 텃밭인 PK(부산·경남) 지역에서 ‘문재인 카드’가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주변을 흥분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카드’가 두 가지 측면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PK 지역에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을 승계할 수 있는 인물로 그가 최적격이라는 평가이다. 노 전 대통령도 그를 깊이 신뢰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선거가 전·현직 대통령 간의 대결 즉, ‘노무현 대 이명박’ 구도로 진행될 경우 문 전 실장의 출마는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다음으로 문 전 실장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대체적으로 후하다는 점이다. 문 전 실장은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으로서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에 빠진 대통령을 보좌했고, 퇴임 후에도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던 전직 대통령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의리의 사나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그런 가운데 말과 행동에 있어 항상 신중을 기했다. 또, 최고의 권력 기관인 청와대를 이끌었던 비서실장 출신으로서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권력의 힘을 경계했다. 이러한 점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문 전 실장 개인이 지닌 정치적 매력으로 거론된다.

문 전 실장이 현실 정치에 뛰어들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군불을 먼저 땐 민주당에서는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분위기이다. 정세균 대표는 최근 들어 ‘친노’ 그룹과의 통합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문 전 실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함께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대표의 한 측근은 문 전 실장의 출마와 관련해 “당내에서는 나와 주면 고맙다는 기류가 강하다. 49재 때문에 본격적인 논의는 안 되었지만, 앞으로 민주당으로 들어오든지 시민후보로 나오든지 조율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친노 그룹 내에서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들은 “장례에 집중할 시기이다”라며 정치 행보와 관련해 말을 아껴왔다. 또, 선거 출마 구상 자체가 문 전 실장 본인의 생각과는 무관하다 보니 일단 조심스럽다. 노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주변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 쪽에서 나온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민주당이 ‘문재인 카드’로 신당 창당 논의를 수그러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친노 핵심 인사를 민주당 간판으로 선거에 내보내면 신당 창당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또 다른 친노 인사는 “정치 세력화가 기정사실인 만큼 문 전 실장이 나설 수도 있다. 예전에 정치 안 한다가 100%였다면 지금은 반반 정도로 보인다.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실 정치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이 한 명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크다. 문 전 실장 카드는 유용하다”라고 밝혔다.

민주당의 한 친노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있을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미 문 전 실장은 정치 한 가운데 서 있다. 5백만 명의 추모 열기에서 국민의 열망이 무엇인지 보고 판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면서도 권력의 힘 경계해

이처럼 친노 그룹 내에서 다른 의견이 나오는 이유는 정치 세력화 방식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라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지만 이를 구현하는 방식을 놓고는 입장이 여러 갈래로 나뉜다. 민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는 해묵은 논쟁은 여전히 유효하다. 크게 세 가지 방안이 거론된다.

첫 번째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통합론이다.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의 바람으로, 당내에 안착한 친노 인사들 사이에 이러한 기류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두 번째는 ‘신당 창당론’이다. 친노 그룹이 새로운 정당 아래 모이는 것으로, 그동안 여러 차례 논의가 되었지만 실행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올해 초까지도 이런 움직임은 감지되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상당 부분 동력이 약해진 것으로 관측된다. 분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측면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세 번째는 영남의 친노 그룹을 중심으로 한 ‘민주개혁세력 연대안’이다. 정당을 만들기에 앞서 세력 간 합의를 통해 선거를 치르자는 것이다. 민주당에 대한 회의론과 함께 정치적 현실론도 반영된 절충 방안이다. 민주당 간판으로는 PK 지역 선거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동안 각개 약진하던 친노 그룹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등의 정치 일정을 감안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논의를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친노 그룹의 한 인사는 “아직 서로 의견 교환이 안 된 상황인데, 7월 말에는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서 8월 중에 가닥을 잡고 9월에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늦어도 10월에는 모습을 보여야 내년 지방선거를 치를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문 전 실장의 선거 출마 여부도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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