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 축소에 중점 둬야”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7.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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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 “권력 구조만 바꾸는 게 개헌의 전부 아니다”

▲ 김종인 위원장의 사무실에는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조부 김병로의 사진이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지금의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산물이었다. 당시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가 탄생했고,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당시 국회 개헌특위에 참가해 지금의 헌법을 만드는 데 산파역을 담당했던 김종인 전 의원은 현재 국회의장 직속 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2년 전의 헌법을 손질해야 할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당사자인 셈이다. 그는 “1987년 당시의 화두가 민주화였다면, 이제는 국민의 기본권 확립이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너무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문제이다”라고 강조한다. 약 1년간의 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하는 개헌 보고서 작업에 한창인 김종인 위원장을 7월9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헌법연구자문위원회 활동이 거의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는 이번 제헌절에 맞춰서 연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현재 국회 사정이 원활하지 못해서 좀 늦춰지게 되었다. 7월 말쯤이 될 것 같다. 어쨌든 우리의 연구 결과 발표를 계기로 국회 내에서 헌법특위가 구성되는 등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는데, 현재 여야 대치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어려운 점이 있다.

발표될 내용은 어떤 것들인가.

우리의 역할은 헌법 전반에 대해 자문을 하는 것이지, 무엇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역할은 우리 위원회 다음에 구성될 개헌특위에서 하게 될 것이다. 다만, 우리는 가장 바람직한 권력 구조랄지 그런 것을 잘 선택하도록 자료와 근거를 제시해주는 것이다. 

아무래도 관심은 정부 권력 구조에 있는 것 같다.

사실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 권력 구조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헌법에 대한 기본적인 것을 잘 모른다는 얘기이다. 권력 구조 개편은 역대 집권자가 자기의 집권 연장을 위해 핑계를 댄 결과이다. 지금 우리 헌법은 1987년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이다. 그때에 비해서 국제 사회는 엄청나게 변화했다. 경제 구조도 크게 달라졌다. 통신의 발달로 새로운 기본권에 대한 인식이 마구 생기고 있다. 우리 사회도 다민족 사회로 변하고 있다. 헌법에 대한 국민 의식이 높을수록 나라가 잘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세 번째가 법치국가로서 확고한 기반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가치를 전제로 해서 헌법이 확고히 서야 한다.

그러한 요소들이 지금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제대로 안 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것을 찾아보면 결국, 우리 헌법은 대통령 한 명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데서 문제점이 나타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자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흔히 말하는 이원집정부제니, 분권형 대통령제니 해서 단순히 대통령이 총리하고 권한을 나누어 갖는 그런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원집정부제와 분권형 대통령제 등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인가. 왜 그렇게 보는지 이유를 설명해달라.

실질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흔히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표현을 쓰는데, 사실은 프랑스도 막강한 대통령 책임제 국가이다. 다만, 여러 가지 내부의 복잡한 정치 상황에 따라 대통령이 속한 집권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를 경우, 대통령이 총리에게 일부 권한을 나누어준 것에 불과하다. 즉, 그렇게 엄격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혼란도 뒤따른다. 실제 대통령과 총리의 정파가 각각 다를 경우, 국제회의 등에 프랑스 대통령과 총리가 각각 따로 가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통치의 장애물만 생긴다. 그런 제도가 과연 우리에 적합한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의회 중심이면 확실히 내각제로 가던가, 아니면 대통령제로 가던가 해야 한다.

위원장 개인의 소신인가, 위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인가.

오늘 말씀드리는 것은 내 개인의 소신이다. 우리 위원회가 13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자 소신이 다 다르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자문을 하는 기구이지 무언가를 결정하는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소신을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없다. 내가 위원장이라고 해서 내 입장을 위원들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위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떤가.

물론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를 말하는 이들도 있고, 내각제나 대통령 4년 중임제 등 주장하는 바가 다양하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5년 단임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단임제에 비해 중임제는 분명히 장점이 있다. 괜찮은 대통령이면 4년을 더 시킬 수 있는 것이고, 괜찮지 않은 대통령이면 4년만 하고 물러나게 할 수 있다. 즉, 국민의 냉정한 평가가 뒤따른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괜찮은 대통령이나 괜찮지 않은 대통령이나 다 대통령을 두 번 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통상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대통령은 첫 임기 4년 동안은 자신의 재선을 위한 선거 준비에만 몰두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직업 공무원제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자칫 공무원을 다 정치화시킬 수 있다. 거기에서 오는 비효율은 더 크다. 그런 위험성이 있다. 

많은 국민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이유는 미국식 대통령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제와 우리는 엄연히 다르다.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 상당히 강한 것 같지만, 미국 대통령은 주변 견제가 굉장히 심하다. 우선 국회에 상하 양원이 엄연히 버티고 있어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과거 우리가 개발도상국일 때에는 대통령에게 강력한 리더십을 부여하기 위해 권한을 좀더 강하게 준 것이 맞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대통령 권한이 커질수록 국민들의 저항도 그만큼 커지는 것 아닌가.

앞으로의 개헌 일정에 대해서도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다 달라 쉽지 않을 듯하다.

순서는 우리 위원회가 그동안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면 김형오 의장이 헌법개헌특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임기 중에 개헌 논의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보는 이들도 있는데, 현 정부의 임기와는 상관없이 가야 한다. 새 헌법의 적용은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차기 정권부터 시행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대선과 총선을 한꺼번에 가야 한다는 소위 ‘원포인트 개헌’을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미국의 하원 선거는 2년에 한 번씩 하는데, 내가 미국의 한 지인에게 “너무 번거로운 것 아닌가”라고 질문하자 “그것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큰 요인이다”라고 하더라. 오히려 중간에 그런 선거들이 있어야 대통령이 자기 성찰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대통령의 통치 능력이 중요하지, 시간적인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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