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대통령’ 되는 길 멀다
  • 이강은 (세계일보 기자) ()
  • 승인 2009.07.14 18: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권에서 바라보는 개헌론 / 국회의원 89.1%가 찬성…대권주자들 속내는 ‘제각각’

ⓒ연합뉴스

“대한민국에서는 하나님이 대통령을 해도 성공 못 한다.” 대선에 두 차례 도전했던 무소속 이인제 의원이 몇 달 전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한 말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로 궁지에 몰렸을 당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지적하고 개헌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든 비유이다. 여의도에서 만나는 정치인 열이면 열, 모두 이의원의 비유에 고개를 끄덕인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제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이의가 없다는 얘기이다. 이는 역대 우리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길을 걸었다는 점만 봐도 수긍이 간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현행 통치 구조를 손질해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하다. 특히 18대 국회는 어느 때보다 개헌론이 힘을 받고 있다. 18대 국회 임기 중에는 대선이 없는데다, 2012년은 20년 만에 차기 총선과 대선이 겹친다는 이유에서이다. 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임기를 크게 손해 볼 일이 없어 그만큼 개헌 작업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실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해 12월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68.5%가 ‘개헌 가능성이 있다’라고 답했다. 또한, 서울신문이 올해 1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전체 국회의원의 89.1%가 ‘개헌에 찬성한다’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개헌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필 시기가 언제냐는 것이다. 다른 모든 현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개헌론의 파괴력을 모두가 잘 알기 때문이다. “경제 불황의 터널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한가하게 무슨 개헌이냐”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엄연히 존재한다. 개헌의 키를 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도 중요하다. 대선 후보 시절에야 긍정적이었지만 ‘살아있는 권력’이 된 지금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박근혜 “4년 중임제와 대선·총선 동시 실시 모두 찬성”

ⓒ연합뉴스

여러 가지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향후 개헌 문제가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이 경우 ‘현행 대통령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뜨거울 전망이다. 특히 자신들의 집권 가도에 ‘개헌 변수’의 영향력을 따져봐야 할 차기 대권주자들도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다. 여야 주자 모두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헌법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데는 찬성한다. 다만, 통치 구조와 관련해서는 입장 차가 있다. 크게 ‘현 제도에서 단점만 보완하자’라는 쪽과 ‘통치 구조 자체를 완전히 바꾸자’라는 쪽으로 나눌 수 있다.

한나라당 ‘잠룡’들부터 보면,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 7월2일 몽골을 방문했을 때 개헌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입장은 이미 밝혔다. 변함이 없다”라고 했다. 기존의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녀는 앞서 지난 5월 초 미국 스탠퍼드 대학 초청 강연에서 “대통령이 4년 일하고 국민이 찬성하면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이전부터 4년 중임제와 대선·총선을 동시에 실시하는 것 등에 모두 찬성해 왔다”라고 밝혔다. 

2012년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와 대통령 선거 중 최근 대선 출마 쪽으로 기운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 역시 “빠를수록 좋다”라며 개헌론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어떤 통치 구조를 선호하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정최고위원측은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개헌 논의를 통해 가장 바람직한 개헌을 하자는 취지에서 단정적인 방향 설정은 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4월 기자간담회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지방분권을 강화해 대통령을 위시한 중앙정부의 과도한 힘을 빼자는 쪽이다. 김지사가 최근 정부의 행복도시 사업과 학원 과외 단속 등을 강하게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친이명박계’의 핵심인 이재오 전 의원은 개헌론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측근인 진수희 의원은 “나라 안팎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서인지 ‘개헌’ 얘기는 못 꺼내게 한다”라고 말했다. 

야권은 부정적 또는 유보적…지방분권 강화에 목소리 높이기도

ⓒ시사저널 이종현

야당 주자들도 생각이 제각각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기본적으로 4년 중임제를 찬성하지만, 조기 개헌 논의에는 부정적이다. 정대표는 여권의 개헌 논의 움직임도 국면 전환용 꼼수라는 판단이다.

강원도 춘천에서 칩거 중인 손학규 전 대표는 지난해 퇴임 직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권력 구조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의원내각제는 불안정성으로 비용 문제가 발생하고, 대통령 4년 중임제는 ‘8년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정치와 권력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제의 효율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문제점은 의회주의로 견제하고 극복해야 한다”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조기 개헌론자인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미국과 비슷한 형태의 ‘지방분권형 연방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다. 이총재는 최근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20세기형 중앙집권제의 틀 속에서 4년 연임 대통령제냐, 내각제냐를 따지는 개헌론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고이다. 21세기에 국가의 생존 에너지와 경쟁력 강화는 지방분권과 지방 살리기에 달려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전국을 5∼6개 권역으로 나눈 뒤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지방정부에 부여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지난 대선에서 이대통령과 맞서 참패한 무소속 정동영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4년 중임제 선호 입장을 제시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한 측근은 “2007년도 개헌 논의 당시 나왔던 내용을 다시 얘기할 수는 없다. 현재 (정의원이) 전문가 그룹과 개헌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어서 명확한 입장을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라고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차기 주자들의 이런 다양한 견해는 철학 차이에서 비롯된 듯하다.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면 이들을 중심으로 한 세력 간 논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정치적 유·불리를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적지 않게 드러난 것이 사실이지만 남북이 대치한 특수 상황에서 장점 또한 적지 않다”라고 밝혔다. 그는 “통치 구조 개편은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며 냉철하게 접근해야 하고, 제도별로 득실을 면밀하게 저울질하면서 진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