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타는 중동에 평화의 물꼬 트이나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9.07.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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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가뭄에 영토보다 물이 각국 최대 이슈로 떠올라 이란 등 4개국 에너지장관들, ‘새 바그다드조약’ 체결

▲ 영토 문제로 갈등이 깊었던 중동의 각국들이 물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AP

9년 전 시리아의 바사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아버지가 죽은 며칠 후 시리아와 이스라엘 간 최대 이슈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스라엘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안보, 땅, 물의 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물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이고 영토 문제가 해결된 뒤에 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9년이 지난 지금 영토 문제는 교착되었고 드디어 물이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중동에는 기후 변화에 겹쳐 5년간의 가뭄이 닥쳤다. 지금 중동 전역은 모든 평화 노력을 일거에 무산시킬 수 있는 물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요르단강은 바닥을 드러냈고, 갈릴리 호수는 최저 수위에 도달했다. 흑해의 수면은 3분의 1로 줄어들고 이라크의 고대 습지는 건조한 흙더미로 변했다.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도 말라간다. 

시리아 북부의 1백60여 마을은 물 기근으로 주민들이 떠나는 바람에 폐촌으로 변했다. 가자지구에서는 15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갈릴리 호수의 취수 펌프들이 수면 위로 노출되었다. 레바논에서는 폐수의 70%가 그대로 버려져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요르단의 강수량은 평균의 10%로 줄었다.

6년 전쟁으로 황폐된 이라크는 유프라테스강의 수량 감소로 고통받고 있다. 페르시아 문명의 젖줄인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은 이웃 터키와 시리아에 덮친 가뭄과 잘못된 치수 정책으로 수량이 거의 반으로 줄었다. 특히 유프라테스강은 요한 계시록에서 이 강이 마르면 인류의 종말이 온다고 예언한 바 있어 흉조의 조짐이 아닐까 하는 불안마저 일고 있다. 이 강변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들은 거의 도시로 떠나 인적 없는 강변의 밤은 귀신이 나올 듯하다. 물이 부족해 입는 피해는 극빈자들에게 가장 많다. 강변의 논과 밀밭은 사막으로 변했다. 34세의 한 농부는 평생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초점 없는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한해(旱害)는 이라크 전역으로 번졌다. 물이 풍부했던 북부의 밀밭과 보리밭은 수확이 95%나 줄었다. 이 지역은 과거 독일에 최고의 맥주 원료를 공급하던 곳이다. 이라크의 물 부족은 문화와 생태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국가로서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이라크에 가뭄이 닥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생존에 필수적인 두 젖줄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을 고갈시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신의 저주가 내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도 수량 절반으로 줄어

터키와 시리아를 원망하는 소리도 높다. 이라크는 원래 물이 부족한 나라는 아니었다. 그러나 터키와 시리아에서 흘러오는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두 나라에서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두면 이라크의 가용 수자원은 감소될 수밖에 없다. 터키와 시리아에는 일곱 개의 댐이 있다. 이 댐들은 모두 이라크의 상류에 있다. 물에 관한 조약이나 협정이 없기 때문에 이라크는 두 나라에 물을 구걸하는 입장이다. 최근 바그다드에서 열린 회의 참가자들은 사우디에서 수입된 물을 마셨다. 이라크에 비하면 물이 거의 없는 사우디의 물을 마시면서 대표들은 “재앙이 닥쳤다”라고 한탄했다. 이라크의 기획장관은 이 상황에서 어떤 국가도 생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라크의 물 위기는 스스로가 불러들인 측면도 있다. 1991년 당시 사담 후세인은 시아파의 봉기에 대한 보복으로 시아파의 주거지인 남부 습지를 인위적으로 파괴하고 북부의 수니파 거주 지역의 수자원만 보호했다. 터키는 최근 유프라테스로 유입되는 수량을 두 배 늘였으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물로 인한 고통이 가중되자 원망의 대상도 늘었다. 미국, 쿠르드, 이란, 이라크 정부가 모두 비난 대상이다. 급기야 앞으로의 중동전이 영토 때문이 아니라 물을 둘러싼 전쟁이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온다. 
그러나 물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적 전망이 위안을 준다. 중동 각국이 서로 협조만 한다면 물이 평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흐르는 물은 영토보다 타협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과 타바 평화회담에서 이스라엘 협상대표를 역임한 질리드 셰르는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우리는 중동 평화의 최대 변수로 물을 꼽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모든 회담에서 물 문제가 거의 타결점에 이르렀던 점을 상기시켰다.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의 협상 담당자들도 물이 대화의 물꼬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3국의 환경운동가들은 물의 공유를 통해  좋은 이웃을 건설하기 위한 에코피스(Eco Peace)를 운영한다. 이 조직의 궁극적인 목표는 물을 매개로 삼아 중동 평화를 구현하는 것이다.
시리아도 물 문제에서 자기 몫을 한다. 모하메드 나지 오트리 시리아 총리는 최근 이라크의 전력장관과 만나 물 자원 문제를 토의했다. 이에 앞서 이란, 이라크, 터키, 시리아의 에너지 장관들은 바그다드에서 만나 ‘새 바그다드조약’을 체결했다. 핵심은 미국이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중동 국가들이 상호 협력할 분야가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것이다. 이들은 물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상호 협력하는 분야가 될 수 있고, 따라서 물을 매개로 해 평화를 만들 수 있다는 데 합의했다.

터키, 평화를 위한 물 프로젝트 제안

이 원대한 목표를 위해서 터키,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는 이스탄불에서 모여 물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회담은 미국이 주선했다. 이스라엘의 물 학자 베르나르드 아비사이는 핵심은 수자원이 풍부한 북부 터키의 물을 인접국들이 나누어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가 물 공유에 동의한다면 수로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경유하게 된다. 터키는 과거 이런 노력에 동참할 의사를 보였으며 가장 최근에는 ‘평화를 위한 물’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내용은 터키의 마나브가트 강물을 중동 각국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물 전문가와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은 영토와는 달리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에 대화의 통로를 만들 수 있다. 이스라엘 청정수의 55%를 차지하는 골란고원의 물을 일부 활용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국은 가자지구의 물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 물위원회를 조직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따라서 이를 대체할 새 조직이 필요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가자는 물 없는 땅으로 전락할 것이다.

중동의 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유엔의 역할도 필수적이다. 유엔은 해수를 음용수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들의 경험에 의하면 해수의 탈염(脫鹽) 비용은 전통적 수자원 개발 비용보다 세 배 정도 더 든다. 여기에 사용되는 에너지는 거의 10배이다. 따라서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해수의 담수화 노력은 유엔의 지원 없이는 어렵다. 오는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 변화 회의에서 유엔은 중동을 위한 해수의 담수화 계획을 확고히 추진한다. 이스라엘에 불이 나도 아랍 인접국들은 물을 대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중동에 닥친 물 부족 사태에서 모든 중동 국가들은 한 배를 탄 운명이다. 과연 ‘평화의 물’이 중동의 불을 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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