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검사 누가 유혹하나
  • 박지윤 (매일경제 기자) ()
  • 승인 2009.07.2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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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관리 이유로 나가는 돈 많아 늘 고민 사업가들이 ‘보험용’으로 접근해 비용 떠맡아

ⓒ시사저널 박은숙

▲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스폰서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낙마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시사저널 유장훈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내정자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7월14일 청문회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중도에 낙마했다. 그가 낙마한 가장 주된 요인은 무엇일까. 그의 가족이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고 고급 승용차를 리스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검사로서 스폰서(후원자)를 두고 있었던 부적절한 행위가 가장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가 사업가인 박경재씨로부터 15억원 이상을 빌려 아파트를 구입한 사실이 후보자에 내정된 직후 확인되었고, 또 청문회 과정에서 박씨와 함께 일본에 골프 여행을 간 의혹도 불거졌다. 그는 “그런 일이 없다”라고 부인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스폰서와의 해외여행’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진노했다고 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스폰서가 있는 검사는 수장이 되면 안 된다. 스폰서가 사건 민원 창구로 변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민유태 전 전주지검장도 덜미

최근 천 전 후보자 말고도 스폰서 때문에 곤욕을 치른 다른 검찰 고위 간부가 또 있다. 바로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민유태 전 전주지검장이다. 민 전 지검장은 1990년 연예인들과 마약을 복용하다가 잡혀 온 피의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두 사람은 ‘검사와 스폰서’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는 스폰서인 박 전 회장과 골프를 자주 쳤다고 한다. 또, 베트남에 출장을 갔을 때 용돈 형식으로 1억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런 이유로 그는 전주지검장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되었다. 민 전 지검장은 대검 중수 1·2·3과장과 수사기획관,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을 지낸 최고의 특수통으로 꼽혔는데 결국, 스폰서 때문에 그동안 쌓아왔던 명예에 먹칠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왜 스폰서들은 검사에게 접근을 하는 것일까. 박연차 전 회장은 돈을 많이 벌었는데도 권력을 가진 검사 앞에서는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게 되자, 그 힘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검사들에게 로비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대부분의 사업가들이 눈앞에 있는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향후 터질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용으로 검사에게 로비를 한다. 2007년 말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이 검사들에게 정기적으로 떡값을 주었다”라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만일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것도 보험용으로 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사 시절 이곳저곳에서 골프를 치자는 연락이 자주 왔다. 그곳에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임에도 대부분의 검사들이 쉽게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사례로 볼 때 실제로 스폰서를 두는 검사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검사는 왜 스폰서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일까. 서울중앙지검 부부장을 지낸 한 전직 검사는 “생각보다 검사들이 돈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전했다. 검사 생활을 하다 보면 조직 관리 차원에서 팀원들에게 밥값, 술값을 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상명하복 사회인 탓에 검사는 설령 수사관들이 연장자라 하더라도 상사로서 밥을 사주어야 하는 관례가 있다. 또, 팀플레이로 이루어지는 수사에서 성과를 내려면 팀원의 화합이 중요하기 때문에 회식도 자주 해야 하는 편이다. 그래서 스폰서 문제로 검찰을 떠난 검사들 중에는 이런 회식 자리에서조차도 스폰서가 비용을 대신 지불하도록 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폰서한테 직접 금품을 받지는 않더라도 대신 회식 비용을 내도록 하거나 골프 비용 등을 지불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한 셈이다. 예전부터 검찰을 떠난 변호사들은 이런 후배들의 고민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선배 변호사들이 후배 검사들에게 정기적으로 촌지를 건넸다고 한다. 변호사들이 검사들의 스폰서 역할을 한 것이다. 하지만 19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이런 현실이 폭로되자 이제는 검찰에서도 공공연하게 촌지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법조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검사로 성공하려면 미인보다는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돌기도 한다. 그래야 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스폰서의 유혹도 단호하게 뿌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모한테 용돈을 받아 후배들에게 썼다가 나중에 사업하는 장인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골치를 썩은 검사도 있었다.

그러자 요즘 검찰 안팎에서는 “검사가 민원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은 청렴하게 사는 방법밖에 없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청빈 법관’으로 유명한 조무제 전 대법관이나, 매년 공직자 재산 신고를 할 때마다 꼴찌를 기록했던 안대희 대법관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입에 오르내린다.

청렴한 검사는 손에 꼽을 정도

▲ 지난 5월15일 박연차 전 회장에게 돈을 받은 의혹으로 대검에 소환된 민유태 전 전주지검장. ⓒ연합뉴스

검사들은 명예에 대한 욕심 못지않게 물질에 대한 욕심도 만만치 않다. 매번 인사 때마다 더 나은 보직으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중에 변호사로 개업했을 때 더 많은 수임료를 벌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검사들이 청빈한 공직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굳게 다지지 않는 이상 스폰서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을 출입하는 한 언론사 기자는 “올바른 검사가 되는 것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일로 보인다. 그동안 많은 검사를 상대해 보면 그런 희생을 감수하고자 하는 굳건한 의지를 가진 검사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요즘 젊은 검사들이 스폰서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앞으로도 스폰서의 손길에 넘어가는 검사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앞으로도 ‘제2의 천성관’ ‘제2의 민유태’ 사태가 또 나올 수 있다”라는 우려가 검찰 안팎에서 쉽게 가시질 않는다.

검찰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스폰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내부 시스템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한,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민 전 지검장과 이종찬 전 고검장에 대해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한 비난도 상당하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3명의 검사 가운데 김종로 검사만 사법 처리를 했다. 이는 처벌 대상에 검찰 인사 한 명은 포함시키려고 한 모양새 갖추기에 불과했다. 민 전 지검장과 이 전 고검장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과연 국민들이 진정성 있게 받아들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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