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지고 증발하고…장학금은 어디 갔나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7.2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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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광여자메디텍고, ‘네티즌장학금’ 횡령 의혹 커져

▲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염광학원 앞에서 교사들이 ‘장학금 원장을 공개하라’라며 피켓팅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기부금으로 조성된 장학금은 눈먼 돈인가.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있는 염광학원 산하 염광여자메디텍고등학교(이하 염광여자메디텍고)가 네티즌이 기부한 3억원의 장학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염광학원은 염광여자메디텍고 외에도 염광중학교와 염광고등학교를 운영하는 기독사학이다. 염광여자메디텍고의 장학금 횡령 의혹은 지난 4월30일 인터넷 단체인 ‘사이버행동네트워크’ 중심의 ‘네티즌장학금지키기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결성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비대위는 2001년 12월 당시 염광여자정보고등학교(현 염광여자메디텍고)에 기부한 장학금 3억원의 운영 실태를 규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돈은 1999년 벤처기업 N 사가 도메인을 공모하며 내걸었던 상금이다. 당시 N 사가 도메인을 공모했으나 1등에 당첨된 것은 N 사의 관련 업체였다. 그러자 네티즌들 사이에서 ‘사전  각본설’이 파다하게 퍼졌고, 사이버행동네트워크가 나서면서 N 사의 사기 공모 이벤트가 들통 났다. N 사는 사과문을 쓰고 해당 상금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이버행동네트워크는 돈의 용처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기부할 곳을 찾다가 최종 선택한 곳이 바로 ‘염광여자메디텍고’이다. 국내 최초로 ‘정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는 상징성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장학금을 받은 염광여자메디텍고는 “‘네티즌 장학기금 관리 규정’을 만들어 관리하고, ‘원금은 손대지 않고 이자를 가지고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돈이 8년여 만에 논란의 중심에 섰다. 네티즌장학회가 학교측에 ‘장학금 지급 내역’을 요청하면서부터 장학금 운용에 허점이 드러났다. 학교측이 장학회에 보내온 장학금 입출금 등의 서류는 곳곳에 오점투성이였다. 입금, 이자, 계좌 관리, 장학금 지급 등이 허술했다.

장학회는 장학금 운영 실태를 직접 점검하기로 했다. 학교측에 ‘장학금 실사’를 나가겠다는 공문도 보냈다. 그런데 실사 예정일인 4월17일에 이 학교 전 아무개 교장이 학교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교장은 그 후 20일 동안이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교장이 장기간 학교를 비우면서 장학금 실사도 무산되고 말았다. 그 후 학교측은 아무런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이원복 교무부장은 “교장 선생님은 몸이 좋지 않아서 장기간 학교에 나오지 못하신 것이지 피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장학금을 투명하게 관리했다. 횡령은 사실무근이다”라고 해명했다.

네티즌 장학회가 염광여자메디텍고에 장학금을 입금한 것은 지난 2001년 12월부터 3월까지 네 번에 걸쳐서이다. 학교측이 개설한 농협 계좌를 통해 3억원 전액을 입금했고, 수입이자 38만6천5백85원이 붙었다. 그런데 약 두 달 뒤인 5월4일부터 돈의 흐름이 바빠졌다. 이날 학교측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농협 계좌를 해지하고 원금과 이자를 포함한 3억1백23만6천여 원을 전액 인출해 타 금융 기관에 분산 예치했다.

삼성증권에서 2년 만기 공채를 2억6천8백여 만원에 매입하고, 한미은행의 세 계좌에 나머지 3천3백30여 만원을 분산 입금시켰다. 2년 뒤인 2004년 6월30일 삼성증권 공채가 만기되자 제2금융권인 믿음신협에 3억원을 다시 넣었다. 이 과정에서 학교측은 교감(현 교장)과 8명의 교사 개인 계좌로 장학금을 쪼갰다. 교감(현 교장) 명의의 계좌에 1억4천만원을 예치하고, 나머지 8명의 교사들 통장에는 각각 2천만원씩을 넣었다. 

▲ 믿음신협에 교장 차명으로 입금된 것을 증명하는 예금 잔액 증명서.

학교측 “투명하게 관리했다. 횡령은 사실무근이다”

장학회에 따르면 차명계좌에 이름을 올린 8명의 교사 중 6명은 염광여자메디텍고에 재직 중이고, 나머지 2명은 퇴직 직원이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학교측은 왜 공금인 장학금을 개인 계좌나 차명계좌로 쪼개 넣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원복 교무부장은 “차명계좌를 개설한 것은 잘못이지만 100여 만원의 이자를 더 챙길 수 있어서 학생들한테 혜택이 더 갔다. 차명계좌를 개설한 교사 중 이익을 본 사람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공채 만기일과 믿음신협에 3억원을 예치한 시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학교측은 2004년 7월(26일로 추정) 믿음신협에 3억원을 예치했다고 했지만 실제 이자가 발생한 날짜는 8월24일이다. 7월 이자는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았다. 이자가 발생한 날짜와 액수도 일관성이 없다. 같은 해 9월 이자가 입금된 날짜는 10일로 8월과 9월의 이자는 15일 만에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두 달치 이자가 한꺼번에 입금된 적도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학교 장학금 통장으로 들어오는 송금자 명의가 자주 바뀌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장학금을 믿음신협에 분산 예치했다고 해도 ‘믿음/장학금’ ‘믿음신협’ ‘염광여정보고’로 입금할 때마다 송금자가 변경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장학회 관계자는 “실제 원금이 신협에 예치되었다 해도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누군가 이자에 해당하는 금액을 임의로 매달 입금하는 것으로 보인다. 원금이나 이자가 유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장학금은 학생들에게 제대로 지급되었을까. 국민은행에 개설되어 있는 학교 명의의 통장에는 올해 1월 현재 최종 잔액(신협에 예치되어 있는 3억원의 이자)이 31만8천2백67원이다. 3억원을 최초로 예치한 2004년 7월 이후부터 계산해 보면 최종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남은 잔액은 6백97만5백원이 되어야 한다. 6백만원이 넘는 잔액의 행방이 묘연하다. 학교측은 처음 3억원이 예치된 후 2년 동안 3천3백여 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해야 했다. 하지만 장학금이 실제 지급되었는지도 의문이다. 2003년 1기분 장학금 공문 기안은 있으나 지급 내역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2년 동안 지급한 장학금 총액이 2천9백70만원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3백80여 만원의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학교측의 장학금 관리와 지급은 모순투성이이다.

장학금 운용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집행되었는지가 궁금해진다. 보통 장학금은 학교발전기금으로 분류되고 있다. 현행 ‘학교발전기금 운용 관련 교육청 지침’을 보면 학교발전기금 운용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해야 한다. 또한, 운용 결과는 즉시 학부모나 학교 홈페이지에 지급 내역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발전기금의 회계처리도 매년 1회씩 관할 교육청에 보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도 염광여자메디텍고는 장학금과 관련해서 한 번도 학교운영위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 교육청은 염광학원 장학금 운영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자 지난 6월23일 염광학원에 대한 종합감사를 실시했다. 이와 관련해 시 교육청은 염광여자메디텍고의 교무부장을 경징계하고 4명을 경고 조치했다.

네티즌장학회 황용수 대표는 “교육청도 사학재단과 한패라고 본다. 뻔히 눈에 보이는 횡령 사실을 눈감아 주고 면죄부를 준 것이다. 우리는 향후 감사원에 공익 감사 청구를 요청해서 염광학원의 장학금 횡령을 끝까지 파헤칠 것이다.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써야 할 장학금을 횡령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슬픈 이야기이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학생들이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횡령한 금액을 토해내 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학교측은 장학금 관리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다. 이원복 교무부장은  “이자율을 높이기 위해 입출금 서류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장부를 조작하거나 횡령한 것은 없다. (네티즌장학회가) 횡령했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학교 명예가 크게 실추되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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