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관계 바꿀 ‘은밀한 대화’
  • 김동현 (미국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 ()
  • 승인 2009.08.1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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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방북 후 ‘김정일 메시지’에 관심 집중…미국 대북 전담팀에서 정밀 분석 중

▲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왼쪽)은 여기자 석방을 위해 초기부터 깊숙이 개입했고, 결국 남편인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했다. ⓒEPA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 예정된 수순대로 난제가 해결됐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후 억류 중이던 미국 여기자 두 명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 두 명은 지난 3월 북한에 불법 입국해 적대적 행위를 하려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후 12년 중노동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물론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방북 조건으로 억류된 두 사람을 석방해 주겠다는 보장을 북한으로부터 받았다. 이런 보장이 없이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그의 방북은 형식상 미국 정부의 특사나 대표로 간 것이 아니고, 순전히 개인 자격이며 인도적 차원의 임무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결정되기까지 오랫동안 여러 사람이 방북 후보 대상으로 물망에 올랐다. 가장 유력한 후보자는 두 여기자가 소속해 있는 ‘커런트 TV’의 공동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부통령이었다.

그러나 지난 7월 북한이 억류된 두 명에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으로 오면 석방해 줄 수 있다”라고 했고, 이들은 허용된 전화 통화에서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 가족들은 고어 전 부통령과 미국 국무부에 이를 전달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두 기자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고, 7월 말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방북해 줄 것을 부탁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 전에 미국 정부 브리핑 받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여기자 석방 문제에 초기부터 깊숙이 개입했다. 국무부 내에서 석방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특사를 보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방북 후보자로는 고어 전 부통령 외에도 카터 전 대통령, 리처드슨 뉴멕시코 지사,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 여러 명이 있었다. 클린턴 장관은 처음에 스티브 보즈워스 대북 정책 대표를 평양에 보내려 했으나 북한이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기자 석방 방법과 북한이 누구를 대북 특사로 원하는지를 타진하기 위해서 북한의 뉴욕 유엔대표부와 미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 등 여러 경로를 활용했다.

일부 워싱턴 소식통은 북한 대표부에서 북한이 원하는 방문자 명단을 미국 국무부에 보냈다고 말했으나 그 명단에 누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북한 입장에서 1순위는 당연히 오바마 대통령일 것이고, 2순위는 클린턴 장관이겠지만, 제재·대치 정국에서 북한이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북한이 고어 전 부통령의 방북 제의를 거절한 것은, 결국 북한의 3순위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방북 전에 부인(클린턴 장관)과 살고 있는 자택에서 미국 정부의 브리핑을 받았다. 백악관은 클린턴의 방북이 핵협상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돌아오던 날 아침 오바마 대통령도 그의 방북을 ‘인도적 임무’였다고 말하고 그 성과를 환영했으나 북한의 핵문제 협상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국 관리들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전에 여기자 석방 문제 이외의 논의는 없을 것이라고 북측에 분명히 통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북·미 관계나 현안 문제들에 대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소한 클린턴 전 대통령이 출발 전에 받은 브리핑과 자신의 집권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의견과 자신이 이해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을 전달했을 가능성은 배제되지 않고 있다. ‘근본적으로 미국은 북한을 적대시할 의사가 없으며, 북한이 핵 포기 의사를 분명히 하고 공약한 의무를 준수한다면, 미국도 이에 상응하는 긍정적 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라는 수준의 말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1994년 5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북·미 간의 긴장은 지금보다 덜하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공격 준비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을 만나 경수로 제공을 전제로 북핵 철폐를 양자 협상을 통해서 해결하기로 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워싱턴에 돌아오기도 전에 평양에서 CNN을 통해 김일성과의 회담 성과를 발표하면서 핵 위기를 자신이 해소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실무 대표들이 할 일만 남아 있어

▲ 김일성 주석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로이터

바로 그 순간 백악관에서 참모들과 북핵 문제 대처 방안을 논의 중이던 클린턴 대통령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참모들은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외교나 협상은 정부가 하는 것인데 개인 자격으로 간 카터 전 대통령이 정책 방향을 결정해버렸다는 불만이었다. 그런 불만 때문에 클린턴 정부와 카터 전 대통령 간에 거리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미국의 정책은 카터 전 대통령이 정한 방향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경험도 있고 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국 행정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김정일 위원장과의 대화 내용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것임은 당연하다.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김위원장이 무슨 말을 했느냐에 쏠린다. 아마도 그 내용은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위협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미국이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 공존을 원한다면, 북한은 모든 현안 문제들을 대화로 풀 용의가 있다’라고 했을 것이다. 구체적인 회담 형식은 그가 직접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김위원장의 메시지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달될 것이고, 이를 대북 문제 전담팀에서 검토해 사후 대책을 강구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클린턴 방북으로 북·미 간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제재와 대화의 양 궤도 공식에서 대화의 축이 살아나게 될 것 같다. 이전과 달리, 이제 미국의 대북 특사 파견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보다 더 무게 있는 특사가 나올 수도 없고,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다시 방문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다음은 실무 대표들이 할 일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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