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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가의 철학을 이야기해야 한다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ㅣ 승인 2009.08.18(Tue) 17: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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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광복 64주년을 맞았다. 일제 강점기의 비극적인 역사에서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남북 분단의 역사와 동족상잔의 전쟁을 경험하면서 근대화 과정을 거쳤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도 먹고살기 위한 생존 경쟁에서 치열하게 달려왔으며, 그 결과 세계에서 유래를 볼 수 없는 경제 성장과 정치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했다.

이웃 일본도 전후 폐허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 국민이 노력한 결과 전세계 2위의 부자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요즘 일본은 사회적으로 장기 침체에 빠지고 다른 나라로부터 대국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엄청난 해외 원조와 직접 투자로 제3 세계에 경제적 도움을 가장 많이 준 나라이지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고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다.

일본 사회는 점점 내부적으로 갈등만 심화되고 젊은이들은 왜소화되고 정치인들은 국수주의화하는 경향이 드러나고 있다. 이를 두고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국가의 비전과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얼마 전 <국가의 품격>이라는 책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도 그런 사회적 욕구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전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가치는?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인 여기자 두 명을 북한에서 극적으로 구출해오면서 자신은 개인적인 자격으로 다녀왔고, 지금의 미국 외교 정책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고 발언을 자제한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미국은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전쟁 중 실종된 군인의 유골을 찾기 위해서도 엄청난 비용을 들인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 북한에 억류된 납북자들의 생환 과정을 비추어보면 매우 착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외교나 협상에서는 그 국가에 대한 이미지가 중요하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라는 철학을 명목으로 전세계의 안보에 간섭하고 있다.

이민 사회로 이루어진 미국은 자유와 평등 사상으로 잘 무장되어서 다양한 사회적 구성원을 하나의 자랑스러운 국민으로 엮어내고 있다. 중국은 ‘화해(和諧·조화라는 뜻이다)와 번영’이라는 철학을 내세워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외교력을 발휘하고 있다. 다양한 민족과 하모니를 이루면서 세계에서 번영을 누리겠다는 철학이 제3 세계 국가들에게 먹혀들어가고 있다.

프랑스도 자유와 박애의 철학으로 외교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똘레랑스’라는 관용의 철학을 세계에 전파하면서 유럽연합에서도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

선진국이 선진국으로 대접받는 일은 단순히 국민소득이 몇만 달러인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가 갖고 있는 가치와 철학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때 존경받는 국가가 될 수 있다.
이제 앞으로 20~30년 후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때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국가의 철학을 세워야 할 때이다. 정치인들도 이익 정치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국가의 가치와 철학을 제시해서 국가의 품격을 높여야 한다. 지식인들도 이제는 경제적 여유에 안주해서 시장의 논리에만 빠져 있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철학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과연 세계에서 어떤 나라로 인식되고 인정받을 수 있는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와 인류를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 급변하고 불안정한 21세기 사회에서 우리가 전세계에 내세울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의 젊은이들은 우리의 미래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가? 광복 64주년을 맞으면서 이제는 먹고살기 위한 무한 경쟁과 치열한 사회적 갈등에서 벗어나 미래 지향적인 국가의 철학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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