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을 꺾어야 탈레반 잡는다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9.08.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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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프간 테러 세력의 군자금 원천 차단 비상…‘오바마판 이라크 전쟁’ 될까 우려도

▲ 지난 5월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피키스탄·아프가니스탄의 3자회담을 마친 뒤 공동 발표문을 읽고 있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선거 공약으로 이라크 주둔 미군을 조속히 철수시키고 잉여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아프간)에 투입해 최단 시간 내에 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많은 사람이 그의 계획에 동조했다. 이라크 도시에서는 철군도 시작되었다. 오바마 프로젝트는 잘 굴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의외의 사태가 벌어졌다. 아프간의 탈레반은 갈수록 강해져서 미군을 비롯한 나토군이 밀리는 형국이 되었다.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지금 오바마 행정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혼란에 빠지고 탈레반은 의기양양하다.

문제는 오바마가 한 가지 중대한 요인 즉, 아편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아프간은 세계 아편 수요량의 90%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GDP(국내총생산)의 60%를 아편 농사에 의존한다. 아편은 정부의 주력 산업이기도 하지만 탈레반에게는 군자금을 마련해 주는 원천이다. 탈레반이 아편 밀수로 버는 돈은 연간 3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 돈으로 무기를 구입하고 일당과 숙식을 제공한다는 미끼로 전사들을 모집한다. 탈레반 전사들은 하루 10달러를 받는다. 위험한 폭발물을 설치하면 수당이 추가된다. 

 미국은 이런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되었다. 최근 공개된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부는 탈레반에 자금을 대는 아편 밀수업자 3백67명의 명단을 입수하고 이 가운데 탈레반과 결탁한 업자 50명을 우선적으로 체포 또는 사살하기로 했다. 탈레반 소탕에 못지않게 아편 밀매 차단도 아프간 전쟁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얘기이다. 과거 부시 행정부는 주로 군벌과 지방 토호들로 구성된 아편업자들을 방치했다. 이들이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을 돕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은 부시의 실수였다. 업자들은 겉으로는 미군의 작전을 돕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탈레반과 밀착해 아편을 거래하면서 개인적 부를 축적했다.

 미군 사령관들은 상원 외교위에 제출한 극비 보고서에서 아편 거래는 탈레반 소탕 작전의 최대 장애물이자 아프간 정부를 부패시키는 근원적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아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아프간 전쟁 자체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상원의 보고서는 비군사 목표물로 전쟁을 확대한다는 비판을 낳았다. 나토 동맹국들도 민간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8년째 접어든 아프간 전쟁은 지금까지는 군사 목표물만을 상대로 진행되어왔다. 미군 사령관들은 아편 거래가 탈레반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아편업자들 또한 넓은 의미에서 군사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뉴욕타임스의 이러한 보도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으나 아편 거래가 탈레반의 테러 행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편 거래에 대한 미군의 전략 변경은 올해 초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여러 명의 아편 밀매업자들이 체포되거나 사살되었다. 아편 거래는 탈레반의 최대 거점인 아프간 남부 여러 주에서 주로 이루어지며 소탕된 업자들도 이 지역 거주자들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알카에다는 아편업자들의 돈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카에다는 대신 페르시아만 국가들의 부자들이나 자선단체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둔 미군 증원 예정…아프간 보안군·경찰도 두 배로 보강

▲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장 세력. ⓒEPA

아편 거래를 차단하는 작전에서 어려운 점은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 사이에 치안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아편 거래를 거의 방치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양국 국경에서는 아무런 제지 없이 아편 거래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미군은 아프간 남부 세 개 주에서 활동하는 업자들을 소탕하기 위해 해병대 2만명을 투입했다. 그러나 업자와 주민들이 서로 호혜적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 작전이 쉽지 않다. 업자가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미군이 마을로 들어가면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온다. 미군을 본 주민들이 업자들에게 정보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직접 아편 밀매를 하기도 하지만 아편 재배 농민을 보호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탈레반은 미군과의 통상적 전투에서는 형세가 불리하면 도주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보호하는 아편 재배 지역에서 미군을 만나면 목숨을 걸고 항전한다. 지난 7월 대규모 아편이 재배되는 남부의 한 주에서는 영국군이 탈레반 반군과 5일간의 격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탈레반 1백20명이 죽고 100여 명이 부상했다. 영국군 한 명도 부상을 입었다. 

 아편과의 전쟁으로 힘겨운 마당에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 스탠리 맥크리스털 장군의 입에서는 더욱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회견에서 아편 거래로 군자금을 두둑히 마련한 탈레반이 최근 남부 거점에서 세력을 확대해 북부 지역에서도 연합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프간 북부는 그동안 탈레반의 공격이 거의 없어 안전했다.  지난 6개월간 아프간 전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대로 간다면 아프간 주둔 미군은 1980년대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군 신세가 될 것이 확실하다. 소련군의 무덤이 되었던 30년 전의 아프간 악몽이 이제는 미군을 괴롭히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 주둔 미군을 연말까지 6만8천명으로 증원할 예정이다. 나토군도 3만명 늘어난다. 미군의 아프간 전비는 월 40억 달러이다. 아울러 아프간 보안군을 13만5천명에서 24만명으로, 경찰을 8만명에서 16만명으로 증강한다. 이 정도의 병력과 전비를 투입해도 아프간 전세가 탈레반에 유리하게 돌아간다는 것이 비극이다. 맥크리스털 장군은 미군 2만명을 추가 증원하는 문제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탈레반의 무기와 전술이 첨단화한 것도 우려할 사항이다. 이들은 도로 폭탄 매설, 기습 공격, 로켓 공격을 병행한다. 이전 같으면 탄약이 모자라 도주하던 이들이 지금은 무진장의 무기와 실탄을 확보하고 장기전을 서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연합군의 보호 아래 안정이 유지되던 북부와 서부 지역의 치안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게다가 아프간 정부가 8월20일의 선거를 앞두고 정치에 신경을 빼앗기는 사이 탈레반은 사실상 아프간 전역을 마음대로 활보한다.

 맥크리스털 장군의 전황 평가는 당초 몇 주 후에 나올 예정이었으나 지난주 벨기에에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및 마이크 밀런 합참의장과 극비 회담을 가진 후 앞당겨 워싱턴에 보고되었다. 아프간 전황이 그만큼 급박하다는 반증이다. 심지어 탈레반이 현 하미드 카르자이 정부의 붕괴에 대비해 임시정부를 구성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을 부시의 과오라며 혹독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취임 1년도 되지 않아 이제는 아프간 전쟁이 ‘오바마의 이라크 전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최소한 아프간 전쟁에 관한 한 대화나 화해 같은 말은 사치품일 뿐이다. 아프간이 탈레반에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가 절체절명의 문제이다. 여기에 아편과의 전쟁까지 겹쳐 아프간 주둔 미군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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