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시험대 오른 ‘굴욕 의 권력’
  • 김지영·안성모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8.1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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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청장들의 잇따른 비리로 만신창이가 된 국세청에 백용호 청장이 부임하면서 개혁 바람이 불고 있다. 청와대가 밑그림을 그린 개혁 프로젝트의 윤곽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국세청은 ‘환골탈태’할 것인가.

ⓒ시사저널 임영무

백용호 청장은 개혁을 국세청 내부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밑그림은 청와대에서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백청장의 개혁이, 국세청이 주도권을 쥐고 내부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세정(稅政)하는 국세청이 세정(洗淨)하고 있다.” 지난 8월 초 기자와 사석에서 만난 한 세무 당국자가 우스갯소리처럼 던진 말이다. 세무 행정을 담당하는 국세청이 깨끗하게 정화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당국자가 던진 ‘농담’ 속에는 뼈가 숨어 있다. 지난 7월 백용호 국세청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국세청 내부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강도 높은 개혁 작업을 빗댄 표현이기 때문이다. 지금 국세청은 엄청난 변화의 채찍에 몸살을 앓고 있다.

국세청이 ‘세정’(洗淨)하는 까닭은 자명하다. 과거에 수장들이 줄줄이 사법 처리되거나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오염의 잔재가 아직 가득하기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 들어 더 심했다. 손영래 전 청장이 썬앤문 감세 청탁 사건으로 구속되었고, 이주성 전 청장은 프라임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연루되어 철창 신세를 졌다. 후임이었던 전군표 전 청장 역시 인사 청탁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비단 국세청장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최근 5년간 국세청 직원의 징계 현황을 보면, 모두 4백65명이 징계를 받았다. 이 가운데 44%인 2백5명이 금품 수수 혐의로 파면되거나 해임·면직 조치되었다.

백청장의 전임인 한상률 전 청장 역시 불명예스럽게 청사를 떠났다. 한 전 청장은 지난해 12월 대통령의 친인척 및 최측근 관계자들과 골프 회동을 해 ‘인사 청탁 의혹’에 올랐다. 여기에 전군표 전 청장에게 고가의 그림을 청탁성으로 상납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결국, 올해 1월 그 역시도 불명예스럽게 퇴임했다. 국세청은 쑥대밭이 되었다. 무려 네 명의 전직 수장들이 줄줄이 부패의 온상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한 전 청장 퇴임 이후 무려 6개월 동안 국세청은 수장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허병익 차장이 직무대행을 맡았지만, 조직은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정보 기관의 한 관계자는 지난 3월 말 사석에서 “국세청장의 내부 발탁은 없을 것이다. 외부에서 영입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부 인사로는 개혁이 어렵다는 뜻을 갖고 있다. 적합한 인사를 찾을 때까지 그냥 두고 보는 것이다”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국세청에 대한 청와대의 불신감과 불쾌감을 대변하는 듯했다.

국세청은 좌불안석이었다. 후임 청장 인사가 계속 지연되자 국세청 안팎에서는 갖가지 루머와 관측이 나돌았다. 허차장이 결국 청장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부터 영입 대상으로 나도는 외부 인사의 구체적인 관직과 이름까지 나돌았다. 심지어 하마평에 오른 일부 인사들의 각종 비리가 적힌 투서가 청와대에 쇄도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백용호 청장, 인수위 시절부터 개혁안 구상해 와

당시 국세청의 한 전직 고위 간부 또한 기자와의 만남에서 “상명하복이 철저하고 내부 인사에 민감한 국세청의 특수성을 (청와대가) 알고 있다면 청장 공백 사태가 이렇게 길어질 수는 없다. 이런 전례도 없었다. 허차장을 청장으로 승진시키려고 했으면 지금은 해야 했다. 청와대가 외부 인사를 수장으로 데려와 국세청을 대대적으로 손질하려고 하다 보니 인사가 늦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전망했다.

이 전직 간부의 ‘우려’는 결국 현실화되었다. 지난 6월 이명박 대통령이 백용호 청장을 발탁한 것은 국세청 사람들 대부분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파격 인사였다. 당연히 국세청 내부는 상당히 술렁였다. 당장 ‘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에서 ‘차관급’인 국세청장으로 오게 된 ‘백용호’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심지어 일부 국세청 직원이 백용호 위원장 쪽에 ‘선’을 대보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되었다. 그러면서 국세청 한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백청장이 오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감지되었다.

하지만 지난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세정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인사청문회에 관여했던 민주당의 한 인사는 “백청장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것은 맞지만 국세 행정과 관련해서는 용어 자체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경제학자로서 훌륭한 논문도 많이 썼지만 국세청장감은 아니라고 본 이유 중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백청장은 국세 행정에 관한 실무 경험이 없고 조세 분야를 특별히 연구한 실적도 없다. 백청장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백청장은 인사청문회 당시 “구체적인 조세 행정은 잘 모르지만 전문가들을 잘 활용해서 전체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한다면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백청장이 국세청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 시절에 경제1분과 위원을 맡아 국세청 내부에 대해 어느 정도 정책적으로 살펴본 바가 있다고 했고, 전자세금계산서 도입 등 나름의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 자료 모음’에 나온 2008년 1월6일 활동 요약 보고서에는 ‘국세청 보고에서는 기업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의 감축, 부동산 가격 동향 모니터링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음’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그가 ‘주마간산’ 격이기는 하지만 인수위 시절 국세청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고 나름의 개혁안도 구상했다는 것이다. 인사청문회를 동시에 받았던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낙마하는 파동을 겪으면서 상대적으로 백청장에 대한 전문성 논란은 잠잠해졌다.

그리고 본격적인 백청장의 국세청 개혁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백청장이 취임한 이후 국세청의 최대 화두는 단연 ‘개혁’이다. 백청장은 취임식을 비롯한 공식 석상에서도 틈만 나면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백청장이 부임하기 오래전부터 국세청 개혁에 대한 밑그림은 그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인수위 시절부터 국세청 개혁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 정권 출범 이후에는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이 주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국세 행정 선진화’ 방안을 지난해부터 만들어왔다는 이야기이다.

이대통령은 지난 6월22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세 행정 개편과 관련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백청장은 개혁 작업을 국세청 내부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그 개혁의 골격은 외부에서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국세청 개혁을 국세청 스스로가 주도권을 쥐고서 밀고 나갈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백청장이 시험대에 서 있는 셈이다.

국세청 개혁안의 윤곽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국세청은 8월14일 열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국세 행정 변화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는 ‘비전문가’인 백청장의 개혁 구상으로 보기 힘들다. 앞서 언급했듯이 청와대 TF팀이 ‘장기간’ 구상했던 ‘보따리’를, 백청장이 하나씩 풀어놓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백청장은 이대통령의 경제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심지어 이대통령의 ‘경제 교사’로 불린다. 그는 지난 1996년 15대 총선 때 서울 서대문 지역에 출마하면서 인근 종로에 출마했던 이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었다. 지난 1997년에는 한나라당 미래경쟁력분과에서 분과위원장을 맡은 이대통령을 도와 분과 내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런 인연으로 이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재임할 때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 2007년 6월에는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바른정책연구원’(BPI)을 만들고 직접 원장을 맡았다. BPI는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핵심 공약을 만들어낸 자문 교수단으로 6백여 명의 대학 교수들이 22개 분과로 나뉘어 참여했다. 이대통령의 이른바 ‘7·4·7(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 공약’과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청장 취임 후에도 폐쇄성 여전하다는 지적

▲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한 뒤 검찰은 태광실업을 압수수색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과거 정부에서 국세청 고위 간부를 지낸 인사는 이런 말을 했다. “과거 10년 정부를 거치면서 국세청의 영향력은 다른 권력기관에 비해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줄어들었다. 금융감독위원회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국세청의 힘이 빠진 것이다. 여기에 세정 시스템이 점점 투명화하면서 일반 국민에 대한 국세청의 권력도 약화되었다. 4대 권력기관 가운데 국세청의 힘이 가장 약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국세청은 엄연한 권력기관이다. 여전히 기업인에게 세무조사는 저승사자의 출현과도 같다. 미국의 경우 세무조사를 실시하게 되면 국세청 직원이 해당 기업에 책상을 갖다놓고 6개월이고 1년이고 앉아서 서류 등을 검토한다. 물론 회사 업무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이다. 반면, 우리 세무조사는 무섭다. 느닷없이 들이닥쳐 서류와 컴퓨터 파일을 싹쓸이하다시피 압수해가기 때문에 회사 업무가 마비될 정도이다. 권력기관으로서의 위상이 여전히 크게 남아 있는 탓이다.

그럼에도 백청장은 여러 차례 “국세청은 권력기관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인사청문회에서도 “국민은 국세청이 공평하고 투명하게 세법을 집행하고 국민의 성실한 납세 의무 이행을 지원하는 기본 임무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권력기관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도덕성과 청렴성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봉사하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그의 정치적 중립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4대 권력기관장 가운데 이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백청장과 원세훈 국정원장이 꼽힌다. 두 사람 모두 대표적인 ‘S(서울시청) 라인’ 출신들이다. 물론 이대통령에 대한 ‘충성도’만 따지고 보면 원세훈 원장이 훨씬 더 강하다는 평가가 많다. 상대적으로 백청장의 충성도는 떨어진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백청장이 대학 교수 출신이기는 하지만 총선에 출마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원원장은 정치인이 아니다. 오로지 ‘MB맨’이다. 비교가 안 된다. 다만, 이대통령은 과거 백청장이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시절과 대선 당시 공약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상당한 ‘공(功)’이 있어서 두텁게 신임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백청장의 어깨에도 MB의 신임이 상당히 실려 있다는 점이다.

백청장이 부임한 이후에도 국세청의 ‘폐쇄성’은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사청문회를 준비했던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의원들의 보좌관들은 “인사청문회 때 청장 후보자와 관련된 자료를 요청해도 제대로 주지를 않았다. 취임 이후에도 국세청 개혁안과 관련된 자료를 요청하고 있지만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국세청의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 백용호 국세청장이 취임하기 위해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백용호 국세청장이 ‘개혁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백청장은 지난 8월14일 부임 후 처음으로 가진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앞으로 국세청이 추진하게 될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주목되는 부문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이다. 먼저 ‘국세행정위원회’(국세행정위)의 설치이다. 지난 8월12일 출범한 국세행정위는 세정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국세청 내부에 설치된 심의 기구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민간위원 여덟 명과 이현동 국세청 차장 등 아홉 명으로 구성되었다. 국세행정위는 앞으로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고 △투명한 세정 운영을 위한 세정 시스템 개선 방안 △납세자 권익 보호 방안  △세무조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기본 원칙 수립 등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세무조사의 기본 원칙도 제시되었다. 대기업은 4년 주기로 순환 조사하고, 중소기업은 신고 성실도 평가로 조사 대상을 선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안이 팽배해진 불신과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당초 기대한 성과를 보이지 못할 경우 외부로부터 개혁 요구가 또다시 제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관계자는 “국세청은 그동안 4년마다 정기적인 세무조사를 한다고 했지만 특별세무조사가 시행될 경우 그 기준과 원칙이 명확하지 않았다. 지난해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처럼 다분히 ‘정치적인’ 세무조사가 이루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납세자보호관’ 신설이다. 납세자보호관은 납세자에 대한 권리 침해가 중대하다고 판단될 경우 세무조사 일시 중지, 조사반 교체, 관련 직원에 대한 징계 요구 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납세자의 권익 보호가 주목적인 만큼 외부 인사를 영입할 예정이다. 부서도 독립된 옴부즈만 형태로 운영하는 방안이 논의되어왔다.

마지막으로 본청과 지방청 그리고 세무서 간 기능 조정이다. 이를 통해 ‘작고 효율적인 국세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방청의 폐지 문제는 이번 방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동안 검토해 온 여섯 개 지방청 재편 방안은 미국 국세청(IRS)의 편제를 반영해 본청과 세무서로 업무 단계를 축소하자는 것이 골자이다. 인력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지만 본청에 세무조사권이 집중되어 권력화가 오히려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태스크포스(TF)에서 논의되었지만, 국세청이 강하게 반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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