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입과 시장 경제 사이 균형 갖춰 외환위기 돌파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08.1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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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분야 / ‘DJ노믹스’로 경제와 민주주의 병행 발전 꾀해…기업에 투명 경영 유도

 

▲ 1998년 1월23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나라 사랑 금 모으기 캠페인’에 참석해 금붙이를 기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경제 영역에서 거둔 가장 큰 업적은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1998년 2월 취임과 함께 부도난 경제를 떠안아야 했다. 취임 직전인 1997년 12월 미셀 캉드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임창렬 당시 경제부총리가 IMF 지원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한국의 경제 정책 전반이 IMF 관리 체제에 놓이게 되었다. 김대통령은 위기 극복에 필요한 개혁 조처들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자신과 지지층이 공유한 진보적 정치 이념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제 정책만은 실용적으로 접근했다. 경제 개혁과 위기 극복에 대한 방안으로 김대통령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는 집권과 동시에 부실 기업집단을 청산하기 위해 기업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유효수요를 늘려 경기 활성화를 꾀하고자 내수 부양 조치를 단행했다. 금융과 실물 경제를 완전히 개방하고 외화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외환 부족을 만회하고자 했다. 위기 극복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덕에 김대통령은 다소 무리가 있는 경제 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그 덕분에 외환위기는 빠르게 해소되어갔다. 김대통령은 2001년 8월23일 IMF 구제금융 1백95억 달러를 전액 상환하고 “한국이 IMF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이 IMF로부터 경제 주권을 되찾은 날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DJ노믹스’라고 불린다.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이 주도한 공급 위주의 경제 정책을 일컫는 ‘레이거노믹스’에서 따온 용어이다. DJ노믹스의 기본 명제는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 병행 발전’이다. 김대통령은 경제 정책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개혁해나갔다. 시장 개입, 권위적 지시, 불필요한 규제를 잇달아 철폐했다. 관치 금융의 폐해도 없애고자 했다. 금융 기관을 경쟁력 있는 영리 기관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유도하되 건전성 감독 기능을 강화했다. 기업 정책은 정경유착의 관행에서 벗어나 이해 당사자의 경영 감시 기능을 높여 투명 경영을 유도했다. 노동 정책은 성장 우선 논리를 내세워 노사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과거의 권위주의 방식에서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민주적 방식으로 전환했다. 대외 개방 정책도 과거의 소극적이고 규제 위주의 정책에서 외국인 투자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외환 제도를 국제 규범에 맞도록 선진화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산업 정책은 자본과 노동 투입량을 중시하는 수익성 낮은 산업 구조를 혁파하고 지식과 정보가 중심이 되는 고부가가치형 산업 구조를 도입하고자 했다.

 

 

IT 등 고부가가치 산업 주도의 선진 경제 구조로 바꿔

김 전 대통령은 줄곧 정부 개입과 시장 경제 사이의 균형을 찾고자 골몰했다. 시장 경제를 내세우면서도 재벌 집단을 개혁하고자 할 때는 정부가 깊이 개입했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기업과 금융 기관 부실을 없애면서 경영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기업인은 서슴없이 퇴출했다. 시장주의도 아니고 정부 주도 경제 방식이 아닌 DJ노믹스는, 집권 초기에는 탁월한 경제 정책으로 평가되었다. IMF 관리 체제를 조기에 극복하고 한국 경제를 정보기술(IT)이나 바이오기술(BT)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이 주도하는 선진 구조로 바꾸는 데 일정 정도 성공했다. 일본 정부는 10년 장기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DJ노믹스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한때 한국의 경제 정책을 비난했던 오마에 겐이치 일본 경제평론가가 DJ노믹스를 극찬하며 일본도 한국 같은 경제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이다. 민주당 강봉균 의원은 “(DJ노믹스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넘어 디지털 경제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정보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 바탕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김대통령 재임 기간 한국의 무역 흑자는 8백46억 달러나 되었다. 외환보유고는 1천2백억 달러가 넘어 세계 4위 외환보유국이 되었다. 건국 이래 첫 순채권국이 되었다. 국가신용도는 7단계 올랐다. 지식정보 산업이 발전했고, 나노기술이나 바이오기술 같은 미래 산업의 싹이 발아했다. 그 덕에 과학기술 경쟁력은 28위에서 12위로 올랐다. 한류 문화 산업이 성장해 아시아 전역에서 한국 대중문화 열풍이 일면서 ‘한류’라는 문화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당시 김대통령은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경제 개혁을 멈출 수 없다. 외환위기를 극복했으나 그것은 출발점이다. 세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충분할 경쟁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대통령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IT(정보기술)와 BT(생명공학기술)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려고 시행했던 여러 가지 정책들이 예상치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내수 부양 차원에서 남발한 카드 발행이 신용 위기로 비화해 신용불량자 수가 65만명이나 늘어 총 2백65만명이나 되는 신용불량자가 거리를 배회했다. 나라 빚이 1997년 73조원에서 2001년 말 2백29조원으로 늘어났다. 가구당 빚도 1997년 1천5백60만원에서 2002년 말 3천만원으로 늘어났다. 부동산 가격은 치솟았다. 계층·지역 간 불균형과 양극화도 심화했다. 임기 말에는 주가가 무너졌다. 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을 육성하고자 지원한 코스닥에는 거품이 끼면서 IT 거품으로 이어졌다.

DJ노믹스는 국내 정치 역사상 경제 정책의 이념적 성향과 실용성이 균형을 이룬 경제 정책으로 평가된다. 그 성과와 과실이 뚜렷하게 엇갈려 경제 정책 논쟁과 관련해 쟁점으로 부각되기 일쑤이다. 최근에는 세계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기나 현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도 경제 정책 논쟁의 출발점은 DJ노믹스였다. 정치인이자 남북 화해를 주도한 지도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노믹스라는 경제 정책과 함께 경제 분야 리더로서도 한국인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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