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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3세 경영’ 시대 서막이 열리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 내년 초 사장 승진 기정사실화 각 그룹사, 친기업적인 정부 배경으로 경영 승계 작업 활발

김진령 ㅣ jy@sisapress.com | 승인 2009.09.01(Tue) 17: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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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신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재벌 총수도 흐르는 시간을 막지 못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비워주어야 한다. 위 사진은 청와대 회의에 모인 재벌 총수들.


재계에 3세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난 2007년 이후 전무직에 머물러왔던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41)가 내년 초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지난 8월27일에는 서울고법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으로 기소된 전직 에버랜드 사장들에게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2000년 법학 교수 43명이 에버랜드 CB 발행 건으로 이건희 회장 등 33명을 특가법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면서 계속되었던 삼성그룹의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이 10년 만에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삼성과 함께 국내 재벌가를 대표하는 양대 축인 현대·기아차그룹의 3세 경영인인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39)은 이재용 전무에 앞서서 지난 8월21일 현대자동차 기획·영업 담당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삼성이나 현대차 등 국내 대표적 재벌 그룹이 승계 작업을 가속화하는 이유는 역시나 총수의 나이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삼성과 현대차그룹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국내 기업사를 돌아보면 우리나라 재벌 기업은 해방 전후에 그 씨앗이 발아되어 195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기업의 틀을 갖추었다. 그때 이병철 삼성 창업주나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나이는 대개 30~40대였다. 30년을 한 세대로 본다면 이들이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에 걸쳐 경영권을 이양해 2세 회장 시대가 열렸고, 2010년을 전후해서 3세 경영의 문이 열리는 셈이다.

친기업적 정서를 갖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 승계 작업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는 동안 경제 민주화운동이 거셌다. 에버랜드 CB 편법 발행 건에 대해 2000년 6월 법학 교수 43명이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 등을 배임죄로 고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10년을 끌다가 최근에야 마무리가 되었다. 재계 전문 사이트인 재벌닷컴의 정선섭 사장은 “정치적 환경이 친기업적이고, 경영권 승계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만큼 향후 3~4년 동안 경영권 승계 작업이 활발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보았다.

50대 그룹 조사 결과, 3세들 대부분 1960년대 이후 출생한 유학파

   
▲ 박세창(왼쪽), 정용진(오른쪽)
ⓒ시사저널 유장훈(왼쪽)

재벌닷컴이 공기업을 제외하고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해서 50대 그룹들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오너 자녀가 임원 또는 간부로 경영 수업을 받는 기업이 26개에 달했다. 이 중 회장이나 부회장, 사장급 이상의 최고 경영자 반열에 오른 인물은 11명이었다.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54),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47),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41),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37),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46) 등이 그들이다. 

조만간 대표이사(사장)급 경영진이 될 것으로 보이는 3세로는 이재용 전무와 박세창 금호아시아나 상무(34), 조원태 대한항공 상무(33),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32),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39)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1960년대 이후 출생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유학파라는 점이다. 2세 경영인들 중에도 외국 유학파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학위를 마쳤다기보다는 연수를 다녀온 정도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3세 그룹은 이와는 달리 정식으로 학위를 마쳤고, 외국 유명대에 다닌 경우가 많다. 

이재용 전무는 게이오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정의선 부회장은 샌프란시스코 대학 경영대학원을 마쳤고, 구광모 LG전자 대리는 스탠퍼드 대학 경영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상무는 MIT 경영대학원을, 조원태 대한항공 상무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현대중공업 오너인 정몽준 의원의 아들 기선씨(27)도 미국에서 경영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10대 그룹 오너 2세 중 미성년자인 최태원 SK 회장의 2세를 제외하고는 모두 유학을 했거나 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경영대학원이나 경제학과 등을 나왔다. 창업자들이 타고난 직관력과 추진력으로 창업했다면, 이를 물려받은 3세는 회사를 관리하는 첨단 기법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셈이다.

3세대 경영진들은 창업 회장이나 2세 회장이 갖고 있던 카리스마나 군주형 리더십을 물려받지 못한다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이것은 지배력의 근간이 되는 지분이 창업 회장이나 2세 경영자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은 데서 비롯된다. 재산 상속이 2세, 3세로 이어지면서 상속세 등으로 인해 지분 자체가 상당 부분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2세 경영인들은 대개 핵심 계열사에 우호 지분을 제외한 본인 명의의 지분으로 30%대 안팎의 지분을 보유했다. 3세대로 넘어갈 경우 많아야 20%대일 것이다. 사전 지분 상속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경우 정의선 부회장이 핵심 계열사에 갖고 있는 지분이 기아차 1.99%에 불과할 정도이다. 해당 기업의 주가가 크게 뛰면서 오너 2세들이 제 돈으로 지분을 마련하기는 힘들어지고 상속을 받아도 세금으로 50%를 떼기 때문에 지분율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

   
▲ (왼쪽부터)정지이, 박정원, 정지선, 조원태
ⓒ시사저널 임영무(맨 왼쪽)

형제 많은 그룹들은 지주회사 체제에서 오너십 행사

형제가 많으면 지분 희석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재계에서는 지주회사를 만들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계열사 지분을 모조리 끌어다 핵심 회사 격인 지주회사에 밀어주고, 총수 일가는 지주회사의 지분을 과반수 이상 지배하는 것으로 지배 구조를 개편하는 것이다. 

형제가 많은 LG그룹이나 GS그룹이 이미 지주회사화를 끝냈고, 사촌끼리 공동 경영을 하는 SK그룹도,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내홍을 겪은 두산그룹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주회사 체제로 만들 경우 사촌 간이나 형제간에 공동 오너십을 행사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것이 용이해진다.

재벌닷컴의 정선섭 사장은 “지주회사 체제에서 3세 경영인들은 10%대의 지분이라면 충분히 오너십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3세들은 오너십과 경영을 분리해나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3세들이 창업 회장이나 2세 경영인이 가졌던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사내에 행사하기도 어렵고, 그래야만 할 이유도 없어졌기에 경영은 전문인에게 맡기고 오너십만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첨단 경영 지식과 화려한 학벌로 무장한 이들 차세대 경영진들이 어떤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이다. 학벌이 비즈니스의 성공을 보장해준 경우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시카고 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통합 과정을 마친 최태원 SK 회장은 1998년 SK 회장에 취임한 이후 뉴비지니스에 강한 의욕을 보였지만, SK 사태로 혹독한 경영 현실을 체험한 뒤에는 그룹의 기존 주력 사업이었던 SK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는 경영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역시 계열사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e삼성을 통해 뉴비지니스를 실험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고 이전무는 ‘올드 비즈니스’로 복귀했다. 차세대 한국의 실물 경제를 책임질 이들 3세대 경영인이 어떤 선택을 통해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지 궁금하다.


3세 경영인 대열에 딸·미망인도 한 자리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왼쪽). 아래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
ⓒ시사저널 임영무
재계전문 사이트인 재벌닷컴에 따르면 2005년께부터 여성 부호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재벌의 창업주가 사망하고 지주회사화하면서 딸이나 미망인이 지분을 상속받고 대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 여성이 그룹 회장인 곳으로는 현대그룹(현정은 회장)과 대신증권(이어룡 회장), 한진해운(최은영 회장) 등이 있다. 남성 위주의 보수적인 문화가 팽배한 재계에 변화라도 있는 것일까.

‘변화가 없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이들의 공통점이 모두 2세 경영인의 미망인이라는 점이다. 3세가 아직 어려서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는 동안 공백을 메워주는 구원투수로 나섰기 때문이다.
‘변화가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재계에서도 최근 들어 딸이나 미망인이 명예직이 아닌 직접 경영에 나선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현정은 회장은 실무에 직접 개입하는 회장으로 분류된다. 또, 삼성가의 2세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명실상부하게 신세계그룹의 오너 회장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나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이들의 고모인 이명희 회장이라는 롤모델이 있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딸만 있는 재벌가에서 후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딸만 둘을 두었던 동양그룹 이양구 회장은 큰사위(현재현)와 작은사위(담철곤)에게 그룹의 대권을 나눠서 넘겼다. 1980년대의 일이었다. 승계가 임박했지만 딸만 후사로 둔 재벌 오너로는 LG그룹 구본무 회장과 태평양그룹 서경배 회장,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 등을 들 수 있다. 재계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은 딸만 둘을 두었다. 그룹의 후계를 염두에 둔 탓인지 몰라도 구회장은 조카인 구광모씨를 아들로 입적시켰다. 반면, 대상그룹 임명예회장은 차녀인 임상민씨를 대상그룹의 최대 주주로 만들었다. 태평양그룹 서경배 회장의 장녀인 민정씨는 아직 미성년자(18세)이지만 보유 주식의 시가 평가액만 2백억원에 육박하는 확실한 후계자이다. 임상민씨나 서민정씨는 동양그룹의 상속녀였지만, 대외 활동과 그룹 경영을 남편에게 맡겼던 이혜경-이화경 자매와는 다를 것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모녀지간에 그룹 총수직을 주고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첫 사례로 꼽히는 경우는 현대그룹이다. 현정은 회장이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동행하는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는 현회장의 큰딸로 전문경영인으로 발돋움하고 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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