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신세 공안 검사들 ‘부활’ 날갯짓
  • 이경기 (내일신문 기자) ()
  • 승인 2009.09.0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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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장 등 주요 보직 올라

▲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안통 검사의 전성시대’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만큼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 내 ‘공안통’의 전진이 눈에 띈다. 올해 초 ‘공안통’인 천성관 수원지검장이 승진과 함께 ‘검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중앙지검에 임명된 데 이어 지난 8월10일 노환균 대검찰청 공안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었다. ‘공안통’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데 두 번 연속이 갖는 상징성은 크다.

경북 상주 출신인 노지검장은 창원지검 공안부장(1999년), 대검 공안1과장(2002년), 대검 공안부장 등 공안 분야 ‘외길’을 걸어왔다. 노무현 정부 들어 눈에 띄는 보직을 맡지 못했지만, 지난해 공안통 검사장들의 주요 보직인 울산지검장에 임명되면서 다시 공안 분야 전면에 등장했다. 검찰 내에서도 ‘정통 공안’으로 불릴 만큼 강골로 평가되는 노지검장은 대구·경북(TK) 출신에 고려대를 나오는 등 현 정권의 중용 키워드 3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다.

검사장 인사의 또 하나의 특징은 황교안 창원지검장이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공안통’인 황고검장은 지난 2006년 검사장 승진이 유력시되었던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였다. 하지만 당시 황차장검사는 승진에서 배제되었고, 공안에 대한 보복성 인사라는 비판적 시각이 검찰 내부에 팽배했다.

2007년에도 성남지청장이던 황검사는 승진에서 누락되었고, 그 배경에는 청와대의 반대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황검사는 바로 검사장에 승진했다. 동기들보다 2년이나 늦게 검사장을 달았지만, 올해 초 창원지검장으로 발령받더니 불과 7개월 만에 동기들을 제치고 고검장으로 승진했다. 일선 지검장을 한 차례만 거치고 고검장에 오른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이 밖에도 안창호 광주고검장, 신종대 대검 공안부장, 김학의 서울남부지검장, 김영한 대구지검장 등이 공안통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박한철 서울동부지검장, 이재원 의정부지검장 등은 공안 경력이 있는 기획통, 특수통으로 평가되고 있다. TK 출신과 공안통들을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고검장과 일선 지검에 배치한 것은 다분히 내년 지방선거를 대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 왼쪽부터 황교안 대구고검장, 안창호 광주고검장, 신종대 대검 공안부장. ⓒ(맨 왼쪽부터)시사저널 이종현, 연합뉴스, 연합뉴스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물갈이’ 수난

지난해 촛불 시위 등을 겪은 현 정부가 법질서 준수를 전면에 내걸고 있는 상황에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공안통의 중용은 어쩌면 현 정부가 택할 수 있는 당연한 ‘카드’로 보인다.

공안통이란, 평검사 때부터 공안 부서에서 정치 사범들을 수사하면서 경력을 쌓아온 검사를 말한다. 광복 이후 공안부와 특수부는 검찰의 양대 산맥이었고 경쟁 관계였다. 과거 군사 정권 시절 공안부 검사들의 힘은 강했다. 검찰 내에서도 자기들끼리만 어울려다니는 폐쇄적인 문화가 있었고, 이른바 잘나가는 ‘엘리트 검사’라는 자부심이 컸다. 인사 우대라는 혜택도 있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의 공안 검사를 구 공안, 새 정부 들어 공안검사를 신 공안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인적 구성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안부 검사들이 대대적으로 물갈이되었다. 이 시기에 공안부 근무를 한 검사들을 다시 신 공안이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공안(公安)부 출신은 ‘공한’(公寒)이라고 불릴 만큼 한직으로 돌아야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과거 공안통들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사표를 강요받기도 했다. 송두율 교수 사건을 담당했고 검찰 내 대표적 공안통으로 꼽혔던 박만 당시 서울지검 1차장검사는, 2년 연속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하자 사표를 냈다. 당시 수사 검사인 오세헌 공안1부장 검사도 옷을 벗었다. 공안통으로 유명했던 고영주 전 서울남부지검장은 인사 직전 “공안 딱지가 붙어 희망이 없다”라며 자진 사퇴를 했다.

이러한 이유로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검찰 중간 간부급들 가운데 순수한 공안통은 사실상 찾기 어렵게 되었다. 공안통으로 꼽히는 한 부장검사는 “고위직에 남아 있는 몇몇을 빼고 공안통이라고 불릴 만한 검사는 별로 없다. 이제는 공안을, 거쳐가는 부서로 여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검찰청 공안기획관과 서울중앙지검 공안 부서를 지휘하는 2차장검사를 맡았던 김희관 대전지검 차장검사는 공안통이라기보다는 기획통이다. 이번에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발령을 받은 봉욱 검사 역시 손꼽히는 특수·기획통이다.

이 때문에 순수하게 공안통으로 커온 검사와 그렇지 않고 다른 업무를 맡다가 공안 업무를 하게 된 검사들 간의 인식 차이가 크다. ‘공안통’의 고지식한 사건 처리 방식에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다. <PD수첩> 사건을 담당했다가 옷을 벗은 임수빈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은 비공안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당시 대검 공안 1·2과장을 지냈다. 공안부의 인적 청산을 의미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했다.

통상 대검 공안1과장을 하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으로 가는 것이 ‘코스’이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임 전 검사는 형사부로 발령 났고, <PD수첩> 사건의 처리를 놓고 수뇌부와 마찰을 겪어야 했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부장검사는 “과거 무너졌던 공안 인맥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부활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공안통이라고 해도 현 정권에 맞는 TK나 고려대 출신이 아니면 요직에 가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젊은 검사들, 다시 공안부로 몰려

공안부에서 잔뼈가 굵은 검찰 중간 간부들은 오히려 공안통의 약진이 아니라 현 정권과 가까운 기획통들이 대약진을 한 것이라는 반응이다. 서울중앙지검장에 연거푸 공안통이 임명된 것은 상징적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젊은 검사들은 다시 공안부로 몰리고 있다. 검사들은 6개월마다 근무 희망 부서를 써낸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에는 10명 이상의 검사가 공안부를 지원했다. 올 초 3~4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세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특히 공안부를 지원하는 검사들은 과거 공안부 경력이 있는 검사들로 국한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숫자이다. 검사가 처음 발령을 받으면 형사부나 공판부 등에서 근무를 하고 지방 발령을 받으면서 일부 검사들이 공안 업무를 맡게 된다.

대검찰청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공안 업무를 해보지 않은 검사들에게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미 어느 정도 연차가 된 검사들은 공안부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장에 공안통이 임명되고 현 정권 하에서 공안 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지원자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같은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고 공안통의 부활로 이어질지 주목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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