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제2 도시’ 부산 사람도 기업도 보따리 싸기 바쁘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9.0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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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하위 취업률과 인구 증가율에 재정 자립도 갈수록 떨어져…“지금 부산은 달동네”

 

ⓒ시사저널 임영무

 


‘영화 <해운대>의 도시,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가득 쌓인 항구 도시, 해수욕장과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대교가 조화를 이루는 절경의 도시, 최대 규모의 백화점과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해운대의 상전벽해가 인상적인 도시, 부산국제영화제(PIFF)의 성공으로 떠오르는 영화 도시’.

올여름 주인공은 부산 해운대였다. 언론은 연일 ‘영화 <해운대> 입장객이 많은가, 해운대 해수욕장 입장객이 많은가’를 기사로 썼다. 다가오는 가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에 또 한 번 주목될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하게 보이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의 내면에는 짙은 그늘과 소외감이 드리워져 있다. 낮은 취업률과 인구 증가율 그리고 밑바닥을 헤매는 재정 자립도가 상징적이다. 뜻있는 부산 사람들이 지금 ‘부산의 변화’를 말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박인호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대표는 “항만? 세계 5위의 항만이면 뭐하나. 지금 인천, 평택, 당진 등 각 지역마다 항만이 다 들어서고 있다. 정부에서 손 놓은 것 아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 하면 거대한 컨테이너가 쌓인 ‘항만’이 떠오른다. 부산의 지정학적 장점을 살린 항만은 지역 경제의 젖줄이었다. 국내 제1항 부산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정부는 여기저기에 항만을 세우면서 ‘다(多)포트 정책’을 쓰고 있다. 박대표는 “제2의 도시이고 국가 항만인데도 여러 항만 중에 하나로 취급했다. 물류 허브로 키우려는 정부의 육성 의지가 없다. 이러면 모든 항만이 망한다”라고 말했다.

 

▲ 2014년 완공 예정인 부산 롯데월드 건설 현장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은 부산타워에서 내려다본 광경. ⓒ시사저널 임영무

 

지역 경제의 젖줄 부산항은 이제 옛말

항만은 부산 경제에서 큰 축을 차지한다. 항만이 부산 지역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나타내는 가장 최근의 자료는 2006년에 나온 부산항만공사의 보고서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05년 항만 산업은 2만4천개의 사업체와 11만8천명의 종사자를 창출했다. 부산 지역 전체를 놓고 보면 사업체 비율은 8.8%, 종사자 수는 10.3%를 차지한다. 총 생산액은 19조원으로 20.7%, 부가가치액은 8조2천억원으로 20.3%를 담당했다.

부산이 항구 도시로만 인식되는 동안, 다른 지역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산업 구조를 변화시켜왔다. 부산만이 21세기에 이를 때까지 도시 기반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로 유지되어왔다. 경성대 박성익 교수는 그 이유 중 하나로 “IMF(국제통화기금) 관리 체제 이후에 부산은 산업 구조의 변신에 미흡했다”라고 지적한다.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이 흘렀지만 대기업의 본사 하나 유치하지 못했다. 향토 기업은 거꾸로 부산 본사를 놔두고 서울 본사를 신설하는 등 수도권 쪽에 힘을 싣는 분위기이다.

변신을 제대로 못했으니 도시는 정체되고 있다. 부산의 취업률과 인구 증가율은 전국 최하위를 다툰다. 일자리가 없다. 부산이 왜 ‘늙은 도시’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젊은이도, 기업도 빠져나가려고만 하고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도 듣기 좋은 허명이다. 인구도 줄고 있다. 젊은이들은 여러 해 동안 일자리를 찾아 탈출을 거듭해왔다. 부산의 한 경제계 인사는 이에 관련해 우스갯소리를 한다. “예를 들어 A, B, C, D 네 등급의 젊은이가 있으면 A등급은 서울로 가고, B등급은 울산과 거제도로 간다. C등급은 창원으로 가고, 오갈 데 없는 D등급만 부산에 남는다.”

과거 부산은 서울 때문에 열등감을 가졌다. 서울을 열심히 쫓았지만 2009년 지금 그 상대는 너무 멀리 달아났다. 열등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차이가 나고 있다. 대신 새롭게 부산을 ‘열폭’(열등감 폭발)하게 만드는 곳이 생겼다. 바로 지근거리에 위치한, 광역시 중의 막내인 울산이다. 부산의 경제 현실에 관해 물어보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은 “울산과 비교했을 때”라는 말이었다. 이미 울산의 아파트 가격은 부산을 따라잡았다. 2003년 6월과 올해 6월의 집값 상승률을 비교해보면 부산은 불과 3.3% 상승했지만, 울산은 24.5%나 올랐다. 부산의 상승치는 인접한 경남(17.1%)에도 크게 뒤진다. 울산의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자 부산에 집을 구해 울산으로 출퇴근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도시의 위상이 역전된 셈이다. 울산과 가까운 부산 금정구의 경우 이런 경우가 많다. 금정구 구서동에 위치한 스피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울산에서 부산으로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파트 가격이 역전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울산 사람은 저렴한 부산으로 들어오고 부산 사람은 더 저렴한 양산으로 나가는 웃지 못할 일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대형 낚시 용품점을 운영하는 김병호씨(53)는 “차라리 울산으로 가거나 서울로 가면 장사가 훨씬 잘될 것 같다. 외지에서는 부산에 낚시꾼이 많아 장사가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구매력이 없다. 고급 제품은 서울과 울산에서 돌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국 어느 지역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라지만 부산이 유독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산업 구조와 관련 있다.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부산의 서비스업 비중은 53.6%로 높은 편이다. 박인호 대표는 “부산의 서비스업은 자영업자 비중이 높다. 소매업이 과잉 상태가 되어 경쟁이 치열해 망하는 곳도 많다. 법인 설립이 늘어나고 있다지만 소법인 설립이 많은 것이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경기의 부침이 심할 경우 출렁거림이 더욱 심한 구조이다.

동양 최대 규모 백화점 들어서도 ‘속 빈 강정’

 

▲ 부산의 강남으로 떠오르고 있는 해운대 센텀시티.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부산이 전체적으로 가라앉는 반면, 해운대는 마천루를 뽐내며 솟아오른다. 해운대 센텀시티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올여름 휴가철에 부산을 찾은 관광객들은 해운대 해수욕장 외에 또 다른 구경거리를 찾았다. 해운대 센텀시티의 초입에 만들어진 동양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라는 신세계 센텀시티점은 평일·주말 할 것 없이 붐비고 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방문한 외지인 덕분에 전통적으로 비수기라는 여름철에도 신세계는 매출 대박을 쳤다. 센텀시티를 제외한 신세계 다른 매장의 8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9.7% 증가했다. 여기에 센텀시티점을 포함해 전체 매출을 계산하면 무려 24.2%나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여름 특수가 올해 한 해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장미빛 전망을 내놓았다. 부산을 꽉 쥐고 있던 롯데백화점 서면점은 롯데 소공점에 이어 매출액 기준 전국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양 최대와 전국 2위 백화점을 소유한 곳이 부산이다.

대형 유통업체가 부산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한국유통과학연구소의 박승제 소장은 “자본 자체가 부산에 남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본사로 다 올라간다. 대형 백화점들이 생기면서 전체적인 유통 규모가 커졌지만 부산만을 놓고 보면 알맹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부산시의 조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7월15일 부산시가 내놓은 ‘대형 유통기업 지역 사회 기여 활동 실적’을 보면 10개 대형 유통업체 중 지역 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하는 업체는 한 군데도 없었다. 급여통장을 지역 은행에 자동 이체하는 경우도 10%가 채 안 된다. 10개 대형 업체의 월평균 현금 수입은 약 2백84억원이지만 지역 은행에 예치되는 금액은 4분의 1 수준인 67억원 정도였다.

재정 모자라 성장 발판 마련도 어려워

김영상 부산발전연구원장은 “부산이 새롭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혁신 기반 산업의 증대, 창조적 계급을 이루는 인력의 증가, 문화와 예술이 꽃피울 수 있는 기반, 지속적으로 인재 양성이 가능한 교육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혁신 기반 산업이라고 볼 수 있는 IT 산업이나 문화 콘텐츠 산업을 성장시키는 지원은 그동안 부족했다. 말만 많았고 계획만 나왔을 뿐이다. 그 사이에 인재는 계속 빠져나가고 젊은이의 빈자리를 고령의 노인들이 채워가면서 도시는 늙어가고 있다.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모든 것은 재정이 받쳐주어야 한다. 부산시는 정책을 만들고 싶어도 어려운 실정이다. 재정 자립도가 2008년을 기준으로 59.2%에 불과하다. 2004년 72.7%에서 불과 4년 만에 50%대로 떨어졌다. 부산보다 낮은 광역 지자체는 광주밖에 없다. 이런 추세라면 50% 아래까지 금방 내려갈 수 있다. 부산시의 1년 예산 9조원 중 사회복지 예산 1조6천억원을 빼고 인건비와 보수·유지 비용을 빼면 전환점을 마련할 만한 사업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승제 소장은 “도시는 점점 매력이 없어지고 투자 요인도 점차 사라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최근 부산이 주목된 이유는 고층 빌딩이 즐비한 해운대가 부각되면서부터이다. 그것은 도회지의 윤택함을 상징했다. 반면, 그 이면에는 광범위하게 퍼진 그늘이 있다. 한 부산시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부산은 해운대나 부산국제영화제처럼 멋있고, 있어 보이는 것보다 배를 타고 들어올 때 보이는 달동네에 가깝다.”


“한나라당 뽑아줘도 뭐 한 게 있노?"

 

정치학계에서는 경제 지표가 대통령이나 정당 지지도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힘들다’ ‘어렵다’는 부산이다. 부산은 대구·경북(TK)과 더불어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높은 곳이지만 요즘은 좀 달라 보인다. 자영업자부터 택시기사까지 하나같이 “예전과는 다르다”라며 손사래를 친다. 동의대 선거정치 연구소의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동의대 전용주 교수는 “연구소에서 정례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20~30%대에 불과하다. 부산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지지율 하락이 분명해 보인다. 이제 TK와 PK(부산·경남)는 확실히 분리해서 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지역 정치인이 부산 경제를 살려주는 데 앞장서 주기를 원한다. 한나라당 출신의 초선 의원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재선, 3선도 가능했다. 그 때문에 부산에는 다선 의원이 많다. 하지만 “그렇게 뽑아주어도 한 것이 무엇이 있나”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지역 정가의 한 인사는 “김형오 의장이 지역구인 영도에 해안보행로 예산 90억원을 따왔다고 현수막을 크게 내걸었던데 어이가 없었다. 군수도 수백억 원씩 끌어오는 세상인데 국회의장이 90억원, 그것도 부산의 큰 사업도 아니고 지역구 사업에 쓰는 예산을 따왔다고 자랑할 일이냐”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에 대한 실망이 나오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물밑 기류는 항상 존재했다. 그동안 부산은 대안에 목말라했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는 것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다. 전교수는 “지난 총선 때 무소속이나 친박연대가 당선된 것처럼 민주당이 곧바로 대안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남는 것은 정치적 허무감이다. 허무감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어지거나, 기권율이 높아지면서 투표율이 떨어지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나라당에 대한 일체감이 떨어질 경우 부산의 정치적 공동화(空洞化) 현상은 심해질 수 있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해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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