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고소득자들 반포 삼각지대에 몰려 있다
  • 이철현기자 · 이석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09.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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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거주자 평균 소득 상위 20동네 가운데 7곳 포함돼

ⓒ시사저널 임준선


2000년대 초 강남 큰손들 사이에서는 ‘대치동 미도아파트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선경아파트에서는 빽(배경) 자랑하지 말고, 우성아파트에서는 학력 자랑하지 마라’라는 속설이 있었다.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각계 지도층 인사들이 대치동을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주상복합 아파트 ‘붐’이 일면서 부자들의 선호도는 달라졌다.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 대신 최첨단 주상복합 아파트가 부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나 삼성동 아이파크 등은 강남 집값 상승의 촉매제가 되었다.

  ⓒ시사저널 이종현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강남 부촌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고속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반경 5km 안에 자리한 반포·방배·서초4동이 대한민국 신흥 부촌으로 나타났다.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가 가구별 소득 수준을 동 단위로 취합한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계 부동산서비스업체 콜드웰뱅커코리아가 조사해 <시사저널>에 제공한 ‘대한민국 동 단위별 가구 소득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만을 상대로 한 조사여서 단독주택 거주자 등은 제외되었다. 자산 소득보다 근로 소득을 기준으로 했다. 한마디로 월급쟁이들이 입성을 꿈꾸는 부자 아파트들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자 동네 20곳 가운데 일곱 곳이 반포·방배·서초4동에 밀집되어 있었다. 이곳이 ‘대한민국 황금의 삼각지’로 떠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12월31일을 기준으로 한 조사 결과 평균 가구 소득이 제일 높은 곳은 반포4동이었다. 평균 가구 소득이 1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배본동(4위), 반포본동(9위), 서초4동(11위), 반포2동(15위), 반포3동(17위), 방배4동(20위)이 평균 가구 소득이 8천4백만원을 넘는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반포 돌풍의 핵은 반포 자이와 래미안 퍼스티지(이하 래미안)아파트 단지이다. 이들 아파트는 분양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래미안의 경우 이제 입주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거래 가격 면에서 이미 타워팰리스를 압도하고 있다. 반포 자이 매물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1백65㎡(50평형)의 경우 거래가가 22억~23억원에 이른다. 비슷한 크기인 타워팰리스 1백88㎡(57평형)의 평균 매매가가 18억원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이미 가격이 역전되었다. 정영호 백조부동산 대표는 “최근 입주를 마친 반포 자이의 경우 3.3m²(1평)당 호가가 5천만원에 이른다. 실거래가는 이보다 낮은 4천만원대 초반에 이른다. 입주한 지 8개월이 지나다 보니 이 가격으로도 매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반포 래미안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현재 중개업소에서 내건 매매 시세표를 보면 1백13㎡(34평형)가 12억5천만원, 2백38㎡(72평형)가 24억원에 이른다. 이 아파트의 분양가가 각각 10억원과 22억6천만원임을 감안하면 몇 개월만에 2억~3억원이 더 오른 셈이다.

이렇듯 반포 일대 아파트가 강남의 새로운 부촌으로 떠오르는 데는 입지 조건이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재벌가의 경우, 특성상 남에게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성북동이나 한남동 등 단독주택이 많은 곳을 선호한다. 하지만 강남에 둥지를 튼 부자 2세대는 대형 아파트를 더 좋아한다. 반포 일대는 강남 지역에서도 보기 드물게 대단위 아파트가 조성되어 있어 기대감이 더하다. 정영호 백조부동산 대표는 “작은 단지로는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반포 일대 아파트의 경우 단지가 크다 보니 아파트 내에 골프장, 공원 등 각종 편의시설 조성이 가능하다. 이같은 매력 때문에 부자들이 반포 일대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재건축 호재도 널려 있다. 서울 강남 지역 개발은 포화 상태로 치닫고 있다. 대형 아파트의 건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반포 주변에는 구반포주공, 한신3차, 경남아파트 등 한강 조망권을 확보한 아파트들이 줄줄이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다. 판·검사들이 많기로 유명한 서초동 삼풍아파트나 미주아파트, 한양아파트 등 인근에서도 재건축을 준비 중이다. 이 물량까지 합쳐질 경우 반포 주변에는 부자들의 새로운 클러스터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파트 낮고 평수 넓어 ‘인기’…교육 여건도 최상급

아파트가 낮고 평수가 넓은 것도 소득 부자들이 반포 일대를 선호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층수가 낮다 보니 재건축 과정에서 대형 평수의 아파트 건축이 가능하다는 평가이다. 조민이 스피드뱅크 리서치팀장은 “지난 2000년 초부터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부자들은 여전히 미도나 선경·우성 아파트를 선호했다. 은마아파트가 중형 평수 위주인 반면, 미도 등은 대형 평수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반포 인근 아파트 역시 저층·대형 평수의 아파트를 재건축하다 보니 평수가 넓을 수밖에 없다. 반포주공 2단지와 3단지를 재건축한 반포 래미안이나 자이의 경우 1백65(50평형)~3백1㎡(91평형)의 대형 평수가 주종을 이룬다. 재건축 의무 물량인 84㎡(25평형)와 1백16㎡(35평형) 이후에 곧바로 50평형대로 올라가는 것이다.

교육 여건도 최상급이다. 강남 유일의 사립초등학교인 계성초교와 최근 자율형 사립고로 선정된 세화고가 반포 자이 인근에 들어서 있다. 단지 내에 원촌중학교도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서초구는 경부고속도로를 복개해 공원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강남고속터미널 역시 업무, 상업, 호텔, 주거, 문화시설이 밀집한 ‘한국판 라데팡스’(프랑스 파리의 신도시)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다. 이 계획이 마무리되면 반포 일대는 새로운 부촌으로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이같은 점 때문에 전통적인 부촌으로 꼽히는 반포본동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부동산업자는 “반포본동의 경우 아파트가 대부분 5층 정도로 낮다. 지분이 많기 때문에 땅값이 높다. 이곳에서 거주하는 부자들이 최근 반포 자이나 래미안으로 옮겨오는 추세이다”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경영진과 증권업계 임직원, 유명 연예인들에게도 인기 있다. 김갑렬 GS건설 부회장을 비롯해 정도현 LG전자 부사장, 변경훈 LG전자 중남미지역본부 부사장 등 기업인들은 반포 자이 입주민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부동산업자는 “정·관계 인사의 경우 대부분 대리인을 보내기 때문에 누가 왔는지 확인이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일부 인사의 대리인을 자청하며 시세 등을 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설명했다. 연예인 중에서는 소지섭·송승헌·한혜진·김남진·서지영·최재원·조경환 등 10여 명이 이곳에 살고 있다. 최근에는 권상우까지 이곳으로 이사 왔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언론이 주목하기도 했다.

외부에서도 입주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초·송파·강남 등 강남 3구에서부터 용산 등 재개발을 통해 목돈을 챙긴 부자들이 주 대상이다. 인근에 위치한 JW메리어트호텔에 있는 휘트니스센터 회원권 가격도 많이 뛰었다. 호텔측에 따르면 분양 당시 이곳 휘트니스센터의 회원권 가격은 5천만원이었다. 거래소 가격은 절반인 2천5백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회원권 거래 가격이 1천만원가량 치솟았다. 인근 아파트에서 이곳으로 몰려오기 때문이다. 이수정 JW메리어트호텔 마케팅팀장은 “아파트 내에도 휘트니스센터가 있지만 일부러 호텔로 찾아온다. 상류층들의 만남의 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반포 자이나 래미안 입주를 계기로 상품권 가격 상승뿐 아니라 고객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지난 7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반포 래미안은 거래 가격이 타워팰리스를 능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사저널 이종현
‘황금의 삼각지’ 반포·방배·서초 지역의 상권 중심지는 고속버스터미널에 잇닿은 센트럴시티이다. 센트럴시티는 43만㎡ 부지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JW메리어트호텔, 영화관, 서점, 상점 2백개가량이 밀집된 복합 쇼핑 공간이다. 신세계백화점은 부지 소유주인 통일그룹과 20년 장기 임대 계약을 맺고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운영하고 있다. JW메리어트호텔 소유주는 통일그룹이다. 미국 메리어트호텔로부터 호텔 최고급 브랜드 JW메리어트를 라이센스했다. 길 건너에는 가톨릭병원이 신축한 병원이 자리한다.

이곳 지하에 위치한 지하철 고속터미널 역은 지하철 3·7·9호선 환승역이다. 지하철 환승역이다 보니 유동 인구가 하루 69만명이 넘는다. 주변 반포역이나 논현역의 하루 유동 인구는 각각 6만명과 16만6천명에 불과하다. 주말에도 32만5천명이 넘는 유동 인구가 몰린다. 센트럴시티와 인접해 도심공항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이 자리한다. 경부고속도로 진입로는 눈앞이다. 이곳에서 한강공원까지는 5분 거리이다. 이곳 상권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곳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다. 강남점은 서울 명동에 위치한 본점보다 매출이 많다. 백화점업계 매출 순위에서도 2007년 하반기 롯데백화점 잠실점을 제치고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에 이어 2위에 올라섰다. 지금도 여전히 연매출 8천억원가량을 자랑한다. 소득 수준이 높은 가구가 반경 1km 안에 밀집되어 있다 보니 잠재 수요가 풍부하다. 또, 대한민국 최고의 교통 중심지여서 인근 거주민 외에도 쇼핑이나 문화 생활을 즐기기 위해 대중 교통을 이용해 이곳을 찾는 이가 많다.

센트럴시티가 갖는 단점은 경영진이다. 김성수 콜드웰뱅커코리아 사장은 “복합 쇼핑몰 운영과 관련해 전문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경영진이 복합 쇼핑몰을 비체계적으로 관리하다 보니 코엑스보다 훨씬 좋은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시설이나 입주자 구성이 낙후되어 있다”라고 지적했다. 센트럴시티 경영진은 복합쇼핑몰 운영 경험이 없는 통일교 신자로 구성되어 있다. 상가 구성이나 내부 시설, 규모 면에서 센트럴시티는 코엑스몰에 못 미친다. 소득 수준이 높은 주변 고객의 쇼핑 욕구나 취향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탓에 주변 가구의 주부들 사이에 브런치와 쇼핑을 즐기기 위해 청담동으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청소년들은 센트럴시티보다 코엑스몰을 선호한다. JW메리어트호텔의 피트니스센터는 회원권 값이 오르고 있다. 입주민들은 아파트 단지 안에 조성된 피트니스 시설에 가기보다 호텔 피트니스센터를 선호한다. 주변 아파트 거주민이 지닌 고급 취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센트럴시티가 갖는 또 다른 고민은 인접한 고속버스터미널이다. 지하철에서 터미널 상가까지 빼곡하게 밀집한 영세 상가는 신세계백화점이나 JW메리어트호텔, 센트럴시티가 추구하는 고급 쇼핑 공간이라는 이미지에 어긋난다. 고속버스 주차장 안팎 경관은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흉물처럼 자리한다. 그러다 보니 고속버스터미널 이전이나 지하화 논의가 잊을 만하면 튀어나온다.

 


‘뜨거운 감자’ 고속버스터미널 부지 개발

 
현재 반포 일대에서 주목되는 것이 강남고속터미널 부지의 개발 문제이다. 이곳은 부지 면적만 15만1천1백61㎡(4만5천7백여 평)에 달한다. 강남역 삼성타운보다 여섯 배 정도 규모가 크다. 고속터미널 이전을 통한 부지 개발이 성사될 경우 주변 부동산 시세뿐 아니라 상권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터미널 부지 개발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이다. 서초구는 지난 2006년 11월부터 이 부지의 개발 방안을 검토해왔다. 기존 터미널 핵심 기능은 지하로 옮기고, 지상은 녹지와 함께 주거, 업무, 복합 쇼핑 시설을 개발해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같은 명물로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이를 위한 연구 용역까지 마쳤다. 

서울시는 지금 고속터미널 개발에 반대하고 있으나 인근 부동산업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개발이 진행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한다. 강남고속터미널의 지분 38.74%를 보유한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최근 이 터미널 부지를 매각하기 위해 우선협상자 선정까지 마쳤다. 매입 금액은 4천억원 안팎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속터미널 개발을 부추기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만난 한 부동산업자는 “현재까지 터미널 이전설과 함께 지하화한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 하지만 고속터미널은 재정비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개발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주목되는 것이 이른바 경부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덮어 공원으로 만드는 덮개공원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경우 이곳은 청계천과 함께 서울의 또 다른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지금 “고속도로 IC주변의 상부에 덮개를 설치할 경우 차량 안전 운행에 지장이 있다”라는 이유로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서울시는 “사업 구역 내 관련 부지의 용도 변경에 대해 특혜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라면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서초구측은 “용인?서울 고속도로 등에서도 예외를 둔 구간이 있다”라면서 개발을 강행할 태세이다. 오세철 서초구 덮개공원 정책 추진단장은 “기존 차로 말고 고속도로 진출 차량을 위해 별도의 가변차로를 확보하는 방안을 놓고 시와 협의 중이다. 도심 녹지 공간 확보와 함께 고속도로로 인해 단절된 지역 간 생활권을 연결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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