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사몽’ 헤매는 개헌 논의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9.22 18: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라당, 친이계 “지방선거 전까지 논의 마쳐야”…친박계 “반대는 안 하지만 현행법으로 대선 치르자” 민주당,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어야 한다 주장…권력 구조도 4년 중임제와 이원정부제로 엇갈려

▲ 이명박 대통령이 9월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최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방문 결과를 보고 받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계획된 순서대로 하나하나 카드를 꺼내드는 모양새이다. 드디어 청와대에서 ‘개헌’ 카드를 내밀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9월15일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 대통령이 개헌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6월 ‘중도 강화론’을 내세우며 위기 정국에서 정면 돌파를 선언했던 이대통령은 이후 친(親)서민 행보, 검찰·국세청 등 사정기관장의 인사, 청와대 조직 개편, 정운찬 총리 지명 등 달라진 행보를 하나씩 밟아나갔다. 불편한 관계였던 박근혜 전 대표와는 지난 9월16일 단독 회동으로 한껏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시켰다. 지금 청와대는 표정 관리에 들어간 모습이다. 최근 한길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지지율도 53.8%까지 치솟았다. 지난 6월 20%대 초반까지 내려갔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반전인 셈이다.

이 때문인지 청와대의 행보에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개헌 카드를 먼저 던지고 나선 것 역시 그런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성사 여부를 떠나서 이대통령은 이미 개헌 카드를 꺼내든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라고 평가했다.

개헌 필요성에는 청와대나 정치권이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이지만, 개헌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시각과 정치권의 시각은 상당히 다르다. 정치평론가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이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선거가 너무 많고 지역색이 심화되어 있다는 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깊다. 이러한 정치권을 개혁하는 방법으로 개헌을 활용하려는 의도인 반면,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의회가 중심이 되는 시대적 흐름에 맞추는 거대 담론으로서의 개헌을 희망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서로 동상이몽을 꿈꾼다는 뜻이다.

실제 같은 한나라당에서도 ‘친이(이명박)계’와 ‘친박(박근혜)계’의 입장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고, 또 같은 친이계이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 사이에도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다. 야당인 민주당 역시 겉으로는 개헌을 반대하지 못하지만, 속내는 마땅찮다. 즉, 청와대와 친이계, 친박계 그리고 민주당 등 실질적으로 개헌 정국을 주도할 주요 이해 당사자들이 ‘4인 4색’으로 제각각 입장이 다르다. 향후 작지 않은 난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정가 주변에서 “개헌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만큼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 이어질 것이다”(신율 교수)라고 ‘개헌 현실화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개헌 추진 시기

▲ 9월9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안상수 원내대표와 장광근 사무총장(오른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친이계인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제 국회에서 개헌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 되었다. 의원총회를 빠른 시일 내에 소집한 뒤 당 개헌특위를 구성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대통령의 개헌 필요성 언급이 있은 바로 다음 날인 16일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였다. 그는 “10월 재·보선이 끝나면 국회에서도 개헌특위가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는 반드시 개헌이 완성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께 여야 의원 다수가 회원으로 있는 미래한국헌법연구회측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개헌 일정에 대한 시나리오를 제시한 바 있다. “내년 6월 실시될 지방선거가 데드라인이다. 반드시 지방선거 전까지는 논의를 마쳐야 한다. 지방선거 이후로 넘어가면 대권 주자들이 부상하고 그때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서 어려워진다. 9월 정기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약 8개월여 간의 활동으로 활발한 논의를 거쳐 지방선거 전까지 합의안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국민투표는 지방선거 시기에 맞춰서 하면 된다.”

여권 주류가 이처럼 지방선거 이전 개헌 추진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친박계와 민주당이 반대하는 한 이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한나라당은 독자적으로 개헌 가능 의석(2백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설사 의석 수를 확보한다 하더라도 개헌의 성격상 미디어법을 처리할 때처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친박계의 진정한 속내는 가급적 현행 헌법으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를 원한다. 독주하는 박근혜 전 대표 입장에서는 지금의 판이 흔들리는 것이 전혀 바람직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친박계 입장에서도 대놓고 개헌을 반대하지는 못하지만, 친이계가 갑자기 개헌을 서두르고 나선 것은 현행 질서를 깨뜨리겠다는 숨은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역시 원칙적으로는 개헌에 대해 공감하지만,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논의의 시기를 미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의 승리에 당의 명운을 걸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개헌론이 자칫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데에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여당의 음모론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한나라당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에 맞춰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려 한다는 음모론이 그것이다. 실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선거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에서 지방선거 때에 맞춰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도 좋은 생각이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럴 경우 자칫 여권이 주도하는 개헌안에 대해 유권자들이 찬성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지방선거에서까지 여당 후보에 표를 찍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민주당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 권력 구조 형태

▲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운데)가 9월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사청문회와 세종시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위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제보다 의원내각제를 선호하는 의견이 많았다. 지금 대통령제의 폐단으로 대통령 1인에게 권한이 너무 과도하게 집중된 것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감안해서 이원정부제를 위원회의 안으로 선택한 것이다.”

국회의장 직속 기구로 최근 1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보고서를 낸 ‘헌법연구자문위원회’에 참여한 한 대학 교수의 전언이다. 그의 말처럼 당초 자문위원회의 대세는 대통령제가 아닌 의원내각제였다. 하지만 국민들의 정서와 거리가 있다는 현실적 고민을 반영한 것이 이원정부제라는 것이다. 김형오 국회의장 역시 지난 6월 기자에게 “내 소신은 의원내각제이다. 하지만 국민 정서와 안 맞아 고민이다”라는 속내를 피력한 바 있다. 

현재 친이계는 이원정부제를 원한다. 민주당에서도 이를 선호하는 목소리가 많다. 신율 교수는 “아마 의원내각제 하자고 하면 국회에서는 친박계 빼놓고는 다 찬성할 것이다. 다만, 국민 여론의 눈치를 보니까 대놓고 의원내각제를 말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이원정부제인 셈이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권력 구조 형태를 놓고, 청와대와 친박계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친이계와 민주당은 이원정부제를 선호하는 쪽으로 양상이 갈리는 형태이다.

청와대와 친박계 또한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뜻이 일치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딴판이다. 청와대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분위기이다. 굳이 말하자면 프랑스식 대통령제이다. 이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주호영 특임장관 후보자는 “굳이 택하라면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가되,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고 약화시키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면, 박 전 대표가 말하는 대통령 4년 중임제는 미국식 대통령제이다. 

친박계 진영에서 전략통으로 손꼽히는 한 인사는 “청와대에서 표면적으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말하지만, 그 내용을 잘 봐야 한다. 거의 이원정부제에 가까운 허수아비 대통령제를 말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즉, “현재의 대권 구도로 볼 때 박 전 대표가 만약 권력을 차지할 경우, 그에 따른 견제 장치로 대통령과 맞먹는, 아니 실질적으로 대통령을 오히려 능가하는 총리(의회)의 권한을 만들어서 권력을 분산하겠다는 친이계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많은 정치 전문가는 개헌 추진에서 친박계의 동의를 얻어내야 하는 청와대와 친이계 입장에서는 절충안을 카드로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유력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권력 분산형 대통령 4년 중임제’이다. 형태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권력의 일정 부분을 내각(의회)에 할애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과연 친박계 쪽에서 이를 받아들일지가 변수이다.

▒ 선거구 제도 개편

선거구 제도 개편 문제에도, 여야별·계파별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우선 청와대의 분명한 입장은 중선거구제 도입이다. 그래야만 지금의 지역색을 타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영남 지역 의원들은 이에 반발한다. 친박계가 중선거구제 개편 움직임에 가장 큰 불만을 나타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친박계 의원 대부분이 영남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한나라당 간사인 ‘친박계’ 중진 허태열 의원은 “중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오히려 지역주의를 더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친이계는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 중선거구제를 마땅치 않게 보는 시각도 있고, 또 대의명분상 옳다는 지적도 있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서울 지역구의 권영진 의원은 “중선거구제를 실시해야 지역별 독식 구도가 타파된다. 전면적인 중선거구제가 부담이 된다면 농촌은 소선거구제, 도시는 중선거구제를 복합 적용하는 절충점을 모색할 수도 있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민주당의 입장도 다소 모호하다. 민주당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중선거구제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호남 지역에 비해 선거구가 많은 영남 지역을 파고들 수 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보다 유리하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하지만 호남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일부 의원들은 “한나라당이 자기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라는 말로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두는 분위기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