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부수 공개 제도, 마침내 뿌리 내리나
  • 윤상환 | 매일경제 기자 ()
  • 승인 2009.10.1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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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년 1월부터 ABC 인증받는 신문사에만 정부 광고 배정” 강력한 의지 표명

▲ 한국ABC협회는 서울 송파구의 한국광고회관에 입주해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ABC(Audit Bureau of Circulations, 발행부수 공사)’ 제도는 흔히 ‘정직한 신문’ ‘투명한 신문’의 보증서라고 불린다. 정확한 신문(혹은 잡지) 부수 공개는 광고주들의 합리적 광고 집행을 돕고, 독자들의 기본적 ‘알 권리’도 보장한다. 신문사의 공신력을 높이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도인 것이다.

대다수 신문사들은 ABC 제도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해왔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부수를 공개하는 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피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해에는 무료신문 세 곳과 지방지 두 곳 등 고작 여섯 개 신문사만 ABC 인증을 받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만 ABC 제도가 정착되지 못한 유일한 나라로 남아 있다. 한국 신문업계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ABC 인증이란 신문과 잡지 등 인쇄 매체가 자진해서 보고한 발행 부수 및 유료 부수 등을 한국ABC협회가 객관적인 방법으로 조사·확인한 뒤 인증하는 제도를 말한다. 한국ABC협회는 1989년에 만들어졌지만 20여 년간 유명무실한 상태를 지속해왔다.
내년 10월 국제ABC연맹(IFABC)의 서울 총회를 앞두고 정부는 ABC 제도를 정착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정확한 부수 공개마저 어려운 한국에서 총회를 개최하는 ‘국제적인 망신’만은 피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본적인 통계 자료인 정확한 부수도 모르고 광고가 집행되는 주먹구구식 신문 광고시장의 관행을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들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 1월부터 한국ABC협회의 부수 검증에 참여한 신문 및 잡지에만 정부 광고를 싣는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정부의 광고 제도 변경과 관련된 총리 훈령 개정 작업도 완료했다.

이에 따라 신문사들이 내년 1월부터 정부 광고를 배정받으려면 올 하반기(7~12월) 부수를 한국ABC협회에 제출해야 한다. ABC협회는 신문사별로 보고된 부수를 근거로 내년 초부터 검증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가 인쇄 매체의 최대 광고주이고 발행 부수가 적은 매체일수록 정부 광고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이번 조치의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정부 광고 규모는 2천9백억원에 달했고, 이 중 신문과 잡지에 1천2백억원이 집행되었다.

한국ABC협회는 이와 관련해 신문사들의 자진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ABC 인증 기준을 크게 바꿨다. ABC협회는 지난 9월30일 광고회사, 신문사 등 17개사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유료 부수 기준을 구독료 정가의 80%에서 50%로 낮추고, 무료 서비스 기간을 의미하는 준 유가 기간을 2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다. 미국의 경우 구독료 정가의 25% 이상을 유가 부수로 인정하는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50% 이상의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 ABC협회의 설명이다. 또, ABC협회의 신뢰성 및 전문성 향상을 위해 아홉 명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인증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방송 진출 신문사는 부수 공개 피할 수 없어

물론 세부적인 사항에 들어가면 일부 이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발행 부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매체들은 부수 기준 완화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고, 메이저 언론사들 사이에도 부수 공개 시점을 2012년으로 미루자는 의견이 일부 제기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용학 ABC협회 사무국장은 최근의 인증 기준 변경에 대해 “광고 효과 측면에서 기준 완화가 필요하다는 회원사들의 의견 수렴 결과를 받아들인 결과이다. 부수가 적은 매체는 특정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질적인 차별화를 이룰 수 있는 계기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방송에 진출하려는 신문사들은 부수 공개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방송법이 개정됨에 따라 지상파 방송사의 지분을 소유하거나 종합 편성, 보도 전문 방송 사업을 하려는 신문사는 ABC협회 인증위원회로부터 발행 부수, 유료 부수를 검증받은 뒤 방송통신위원회에 각종 경영 자료와 함께 제출해야 한다. 방송 사업자로 선정되면 1개월 이내에 이를 공개해야 한다. 현재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 매일경제, 헤럴드경제 등의 신문사들이 종합편성 채널과 보도전문 채널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지방 신문사들도 종합편성 채널의 컨소시엄 참여를 제안받고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종합편성 채널 사업자 선정은 내년 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내년 초 종합편성과 보도전문 채널 사업자로 선정된 신문사들의 발행 부수·유료 부수 등 경영 정보는 공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정부와 ABC협회는 내년 초 ABC 인증 업무가 폭증할 것에 따른 대비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광고업계에서는 단순한 부수 공개를 뛰어넘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매체력의 질적 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ABC협회는 신문의 질, 독자의 특성, 열독률, 회독률, 시장 침투율 등 과학적인 데이터를 얻기 위해 독자 프로파일 조사도 적극 실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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