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돈 펑펑 쓰고 ‘떵떵’ 남은 돈은 어디에 숨겨놓았을까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10.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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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두 전 동아건설 자금부장 “횡령액 1천8백98억원 중 9백40억원 썼다”…경찰, 국세청과 자금 흐름 추적

▲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의 자택(왼쪽)과 별장 용도로 구입한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호화 주택(작은 사진). ⓒ시사저널 임영무


박상두 전 동아건설 자금부장(48)은 신도 놀랄 만한 횡령의 달인이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회사 공금을 빼돌리면서 주위 사람들을 완벽하게 속였다. 그가 빼돌린 돈은 무려 1천8백98억원. 지난 7월8일 잠적할 당시에만 해도 횡령액은 8백98억원이었다. 그런데 박 전 부장이 체포되고 나서 1천억원이 더 불어났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박 전 부장의 체포는 횡령 사건의 서막에 불과하다. 추가 횡령액, 사용처, 횡령 가담자 등이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그렇다면 그가 횡령한 돈은 1천8백98억원이 전부일까. 숨긴 돈은 더 없는 것일까. 여기에 동아건설이나 모기업인 프라임그룹은 아무 관련이 없을까. <시사저널>은 일명 ‘박상두 횡령 사건’에서 드러난 의혹의 실체를 집중 추적했다.

박 전 부장은 지난 1978년 서울의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고졸 특채로 동아건설에 입사했다. 입사 후에는 대부분 경리·회계·자금 부서에서 일했다. 그는 지난 2005년 동아건설이 파산되자 자금부로 발령받았다. 
회사의 금고지기인 박 전 부장은 왜 회사 공금을 빼돌리게 되었을까. 그는 경찰에서 “회사가 부도가 나서 어렵다 보니까 더 이상 회사를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회사 돈을 잠시 유용한 뒤 나중에 살아갈 수 있는 돈만 벌면 안 하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부장은 ‘바늘 도둑’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회사 돈을 잠시 쓰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아예 빼내기로 마음먹는다. 원인은 ‘도박 중독’이었다. 박 전 부장은 지난 2001년부터 주식과 경마로 큰 손실을 보게 되었다. 도박 밑천이 바닥나자 회사 공금으로 눈을 돌렸다. 자금 부분에 빠삭한 데다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했기 때문에 회사 돈은 박부장의 주머닛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첫 번째 노린 회사 돈은 회사 통장이었다. 이를 위해 덕수상고 선배인 하나은행 을지로 지점 김 아무개 차장(50)을 끌어들였다.

그가 김차장에게 당근으로 제시한 것은 ‘예치금 유치’였다. 박 전 부장은 “회사 자금을 하나은행에 집중 예치할 테니 그 조건으로 건설공제조합 예치금 계좌를 서류상으로만 만들고 전산에는 입력하지 말아달라. 이 자금을 운용해 수익을 올린 뒤 다시 예치하면 된다”라며 안심시켰다. 이렇게 되면 돈을 출금해도 전산에는 남지 않기 때문에 거액이 빠져나가도 알 수 없었다.

은행원에게 수백억 원의 예치금은 곧바로 승진과 연결된다. 김차장은 다소 위험 부담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당장 들어올 거액의 예치금에 더 마음이 끌렸다. 한번 마음이 굳혀지자 김차장은 완전 범죄를 노렸다. 박 전 부장을 돕기 위해 해당 계좌가 출금이 제한된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전산상으로는 입출금이 가능하도록 했다. 박 전 부장은 이런 방법으로 24차례에 걸쳐 건설공제조합에 예치된 하자보수 보증금 4백77억원을 빼돌렸다.

그런데 올해 4월 뜻하지 않은 변수가 나타났다. 김차장이 본사 여신관리부로 전근하자 더 이상 건설공제조합 예치금에 손을 대기 힘들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회사 운영 자금에 손을 뻗쳤다. 여기에는 회사 같은 부서의 유 아무개 과장(37·구속)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법인 인감을 미리 찍어둔 예금청구서를 위조해 회사 운영 자금 계좌에서 24차례에 걸쳐 5백23억원을 횡령했다.

박 전 부장의 횡령은 거침없었다. 급기야 지난 3월부터는 신한은행의 채무 변제금 예치 계좌에 손을 댔다. 박 전 부장이 신탁재산을 빼돌리는 수법은 간단했다. 회사 인감을 위조한 후 하나은행 을지로지점과 시화지점에 동아건설 명의의 위조 계좌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신한은행 신탁부에 수익자를 지정하고 위조 계좌에 돈을 입금하도록 했다. 신한은행은 박 전 부장이 지정한 수익자의 계좌로 돈을 입금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 3월4일부터 6월26일까지 총 여덟 차례에 걸쳐 8백98억원을 빼돌릴 수 있었다.

체포당한 후 횡령액 1천억원 늘어

박 전 부장이 횡령한 9백88억원은 프라임그룹이 동아건설 채무자에게 대신 갚기로 한 1천5백67억원 가운데 일부였다. 

지금까지 밝혀진 박 전 부장의 전체 횡령액은 1천8백98억원이다. 총 56차례에 걸쳐 하나은행 회사예치금(4백77억원), 회사 계좌(5백23억원), 법원 공탁금(8백98억원)을 빼돌렸다. 그중 통장 돌려막기에 사용한 9백억원 정도를 제외하면, 실제 박 전 부장이 개인 주머니에 착복한 금액은 1천억원 정도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일단 박 전 부장의 횡령 액수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광진경찰서는 지난 10월7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 전 부장이 횡령한 회사 공금이 1천8백98억원이며, 동아건설측에 확인한 액수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향후 계좌 추적과 박 전 부장 그리고 공범들의 추가 진술을 통해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이는 박 전 부장이 잠적했던 지난 7월8일에는 횡령 액수가 8백98억원이었다가 체포한 후에 추가로 1천억원이 늘어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횡령 자금의 사용처도 추가로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박 전 부장은 경찰에서 “횡령 자금을 도박과 주식 투자, 경마 등에 탕진해 현재 빈털털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주식 투자 손실(1백50억원), 경마(2백억원), 사설 카지노(2백50억원), 마카오 카지노(100억원), 강원랜드(1백90억원), 포커 도박(50억원) 등에 9백40억원을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박 전 부장의 진술일 뿐이다. 실제로 그가 어디에서 혹은 어디에다 얼마를 썼는지는 박 전 부장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 그가 횡령한 후 사들인 재산이 모두 가·차명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선 올해 3월에 구입한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에 있는 6백60㎡(약 2백평)의 저택(시가 16억원)은 구속된 부인 송 아무개씨(46) 명의로 되어 있다. 또, 지난 2007년에 구입한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에 있는 별장(시가 6억원)은 소유자가 박씨가 아닌 다른 사람 명의로 되어 있다. 

박 전 부장은 또 부인 몰래 내연녀인 권 아무개씨(32)를 두고 있었다. 권씨는 동아건설 자금부에서 박씨와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일했으며 지난 2006년 회사를 그만두었다. 박 전 부장은 잠적한 후 약 두 달 동안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권씨의 빌라에서 숨어 지냈다. 약 2백57㎡(78평) 규모의 빌라는 시가 15억원 정도의 고급 빌라로 전세금 3억3천만원을 주고 임대했다. 임대자는 내연녀 권씨가 아닌 박 전 부장의 어머니였다. 박 전 부장이 마지막으로 은신했던 송파구 방이동의 빌라(60㎡)에는 현금 7억원을 숨겨두고 도피 자금으로 사용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박 전 부장은 횡령한 돈 상당액을 감쪽같이 은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이 터지면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 중의 하나가 ‘동아건설은 과연 몰랐느냐’라는 것이다. 지난 2004년부터 최근까지 약 5년 동안 2천여 억원에 달하는 돈이 빼돌려졌는데도 회사측이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동아건설측은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라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시중 은행은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다. 동아건설은 지난 7월 박 전 부장이 잠적하자 “수탁은행인 신한은행이 신탁재산 관리를 못한 책임이 있다”라며 신한은행에게 책임을 돌렸다. 

하나은행은 김 아무개 차장이 연루되어 경찰에 구속된 상태이다. 하나은행 공보팀 이성권 팀장은 “경찰 수사 결과 하나은행 직원의 관련 여부가 나타나면 그때 가서 은행의 공식 입장을 내놓겠다”라며 말을 아꼈다.

추가 공범이 있는지도 밝혀야 한다. 우선 공범으로 지목된 하나은행 김 아무개 차장과 동아건설 유 아무개 전 과장에 대한 대가이다. 박 전 부장은 하나은행 김차장에게 1천만원을 사례비로 주었다고 진술했지만 김차장은 사례비는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부장은 또, 유 전 과장에게는 매번 2백~4백만원씩 수고비로 건넸다고 밝혔다. 액수가 너무 적다. 따로 성과급이 오갔을 확률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경찰은 은행이나 회사 내부에 공범이 더 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박상두 전 동아건설 자금부장은 회사에서는 ‘박부장’이었지만 강원랜드에서는 ‘강남 박회장’으로 불렸을 만큼 철저한 이중생활를 했다. 그리고 그는 도피 과정에서 일기를 썼다. 여기에는 지난 7월8일부터 약 보름간 도피 과정에서의 심경이 나타나 있다. 그의 일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가족과 회사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경찰 추적에 대한 두려움’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솔직히 많이 두려웠다’는 박 전 부장. 지금 심정은 어떨까. 혹, 숨겨놓은 재산이 들킬까 봐 조바심에 떠는 것은 아닐까.

▲ 동아건설 직원들이 현상금을 걸고 내걸었던 공개 수배 전단.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의 별장 내부에는 고급스러운 가구들로 채워져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그는 황제를 꿈꾸었다. 그리고 황제처럼 살았다. 박상두 전 동아건설 자금부장은 횡령을 시작한 2004년 이후 경기도 하남시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 고급 주택과 호화 별장을 구입했다. 이곳에서 그는 횡령한 돈으로 가족들과 함께 화려하게 살았다.

지난 10월9일 오후 <시사저널> 취재진이 찾아간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의 저택과 양평 별장은 여느 재벌 회장 집 부럽지 않다. 하남시 저택은 잔디가 잘 가꾸어진 정원이 소나무와 석등으로 단장되어 있고, 차고에는 고급 외제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정원 한쪽에는 박 전 부장이 가족들과 함께 앉았을 것으로 보이는 흰색 티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거실에는 고급 양주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고, 최고급 와인이 가득한 와인 냉장고는 박 전 부장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내는 일반 가정에서는 볼 수 없는 고급 가구들로 갖추어져 있었다.

경기도 양평군 목양리의 별장은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 같은 집’이었다. 온갖 정원수들로 뒤덮여 있는 것이,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싶은 별장이었다. 별장 건물 구조를 보면 여느 별장과 마찬가지로 앞 부분은 통유리로 만들었다. 실내에서 밖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구조이다.

박 전 부장과 그의 가족들은 하남시 저택과 목왕리 별장을 오가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박 전 부장은 또 부인 몰래 열여섯 살 연하의 회사 동료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호화 빌라를 임대해 이중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꿈같은 생활이 지금은 ‘하룻밤의 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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