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권력 승계, 여전히 ‘진행’ 중
  • 이승열 |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10.1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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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핵협상 먼저 마무리한 뒤 공식화할 듯…“김정은은 노동당 조직 부서에서 부국장급으로 근무 중”

▲ 10월4일 평양에 도착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왼쪽 두 번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시민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북한의 후계 구도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9월10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일본 교토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 시점에서 후계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라고 대외적으로 공언한 직후 후계 논의는 사실상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의 대북 소식지인 <좋은벗들> <열린북한통신> <데일리NK> 등은 “지난 7월 이후 북한 당국이 모든 후계 논의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김정은에 대한 선전 활동을 중단시켰다”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내에서도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계자 사이에 큰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거나, 건강에 자신감을 되찾은 김위원장이 더 이상 후계 논의가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는 등의 내용으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최근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일의 셋째 아들의 이름이 지금까지 알려진 ‘김정운’이 아니라 김정은이다’라고 보도하면서 후계 논의는 또다시 새로운 방향에서 촉발되었다. 후계자의 이름이 김정은이라는 것은 최근 원산에서 타이완인 방문객이 촬영한 북한 선전 벽보에서 ‘김정은’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부각되면서 이에 대한 확신을 더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국가정보원이 비공개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된 셋째아들 김정은이 현재 노동당 조직 관련 부서에 ‘부국장급’으로 근무하고 있다”라는 내용을 확인했다. 후계자의 이름이 김정은이라는 사실과 함께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공언과 달리 후계 작업이 북한 내부적으로는 이미 상당히 진척되고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놓고 보면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북한 후계 구도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 첫째, 후계 구도와 관련해 이와 같은 혼선과 엇갈린 보도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이유이다.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우선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인터뷰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현 시점에서 후계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라고 하면서, “외국 언론들이 북한을 무력화하기 위해 그런 보도를 하고 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었다. 여기서 외국 언론이란 한국과 일본, 미국의 언론들을 의미한다. 그동안 바깥에서의 관심과 달리 정작 북한 내에서는 후계자 문제에 대해 그렇게 비중 있게 인식되지 않았다. 물론 김위원장의 건강 문제가 나오면서 후계 논의가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매우 초보적인 수준의 준비 단계였던 것이다.

김정일, 후계 문제 파문에 정치적 부담 느껴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0월5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 숙소를 방문해 총리 일행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북한 후계 문제가 김정일의 건강 문제와 함께 북한 핵문제와도 맞물리면서 북한이 의도했던 방향과는 전혀 반대로 진행되었고, 오히려 김위원장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까지 다가오게 되었다. 우선 김위원장의 건강 문제와 후계 논의가 결합되면서 북한 체제의 불안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해서 급기야는 ‘북한 조기 붕괴설’로까지 확장되었다. 미국의 미래 국방 연구에서 북한 붕괴론이 파키스탄 핵문제와 함께 연구 과제 1순위로 책정된 것 또한 북한으로서는 매우 불만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다음은 후계 문제가 북한 핵문제와 함께 부각되면서 북한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미국과의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미국이 북핵을 협상용이 아닌 후계 체제를 보위하기 위한 체제 보위용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북핵 구도를 협상에서 제재로 전환시킨 논리적 근거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김위원장이 현 시점에서 생각하는 후계 구도의 비중을 고려할 때, 미국과의 핵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이처럼 왜곡된 구조는 협상을 위한 정치적 입지를 매우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이유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후계 논의 자체를 부정하게 되었고, 북한 내부에서도 7월 이후 후계자에 대한 선전 활동이 중단되게 된 것이다. 둘째, 김정은이 노동당 조직 관련 부서에서 ‘부국장급’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국정원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과연 김정은 후계 체제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다. 북한에서 노동당 조직 관련 부서는 두 곳이다. 즉, 당 조직지도부와 군당 총정치국이다. 국정원의 판단대로 김정은이 조직지도부와 총정치국 중 한 곳에서 자신의 조직 공간을 마련하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 내에서 후계 체제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내정 단계에 진입하는 순간이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공식 내정을 받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미국과의 핵협상이다. 김위원장이 김정은의 후계 체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핵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2012년 강성 대국의 기치를 높이 들어 올릴 수 있는 정치적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서 김위원장이 추구하는 정치적 동력이란 파키스탄과 같은 모델을 꿈꾸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개발된 핵은 인정받되, 향후 모든 핵 정책은 폐기하고 대신 그 대가로서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 및 에너지 지원을 맞교환하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미국이 김위원장의 의도대로 파키스탄식 핵협상을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매우 회의적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미 두 번의 대북 협상 실패 사례에서 충분한 교훈을 얻고 있다. 또한 ‘비확산’을 최고의 외교적 목표로 설정하고, 러시아와의 핵 군축 협상, 그리고 이란과의 핵협상을 앞두고 있다. 특히 중동 평화의 뇌관이 될 수 있는 이란과의 핵협상을 앞둔 오바마 행정부가 핵문제 해결의 선례가 될 수 있는 북핵 협상을 북한의 의도대로 이루어지도록 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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