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단일화’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경남 양산·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10.1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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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 우세 속, 무소속 김양수·친노 송인배 등의 ‘바람’도 만만치 않아

▲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송인배, 무소속 김양수 후보의 현수막. ⓒ시사저널 임영무


이번 10·28 재·보선 선거구 가운데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은 경남 양산이다. 한나라당 전직 대표라는 ‘거물’에 한나라당 성향인 무소속 후보와 ‘친노’ 성향인 민주당 후보가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다.

양산은 ‘부산의 일산’으로 불린다. 서울에 인접한 일산처럼 부산의 ‘베드타운(bed town)’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부산으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런 만큼 신시가지는 근래 지어진 아파트들로 숲을 이루고 있다. 선거를 준비 중인 캠프 사무실도 대부분 이곳에 위치해 있다. 한 대형 마트 건너편 건물에는 눈에 익은 정치인들의 대형 사진이 경쟁하듯 걸려 있다. 시민들이 아직까지 선거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과 달리, 후보들 간의 신경전은 벌써부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양산은 원래 한나라당 텃밭이었다. 그렇다 보니 예전 선거에서는 이렇다 할 이슈가 없었다. 지난 총선에서 ‘친박(박근혜) 바람’이 불었지만 이것은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 당을 이끌었던 박희태 전 대표(71)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면서 선거 구도가 복잡해진 것이다. 이 지역에서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양수 전 의원(48)과 친박 인사인 유재명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55)이 공천 탈락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여권 성향인 후보들이 ‘집안 싸움’을 펼치게 되었다.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불었던 ‘노풍(盧風)’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 중 하나이다. 양산은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을 지척에 두고 있고, 민주당 공천을 받은 송인배 후보(40)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비서관을 지낸 대표적인 친노 인사이다. 민주노동당에서는 박승흡 전 대변인(47)이 노동계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출사표를 던졌다.

각 후보의 선거 전략은 선전 구호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박희태 전 대표는 여권의 중진이자 실세 정치인이라는 점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있다. 건물 한 면을 뒤덮은 현수막에는 ‘박희태 집권여당 한나라당 전 대표’라고 후보를 소개하고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찍은 대형 사진이 ‘대통령과 직접 통합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박 전 대표는 지하철 연장과 도로 개통 등 굵직한 개발 공약을 내걸어 ‘비약적인 양산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무소속으로 나선 김양수 전 의원은 ‘양산 소속, 양산 후보’라며 차별화에 나섰다. 박 전 대표가 경남 남해를 떠나 이번에 처음 양산에서 출마한 반면, 김 전 의원은 이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기반을 다진 경력이 있다. 그는 ‘양산이 키웠기에 양산을 가장 잘 안다’라며 지역민의 선택을 호소하고 있다.

민주당 후보인 송인배 전 비서관은 ‘남해의 큰 어른입니까? 양산의 큰 아들입니까?’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남해 출신의 5선인 박 전 대표를 겨냥한 질문이다. 박 전 대표의 출마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영남 지역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가 갖는 10~15%의 패널티를 감안하더라도 ‘승산이 있다’라는 것이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친노 진영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에도 기대감을 갖고 있다.

무소속 후보 단일화추진협의회 구성, 한창 논의 중

현재 현지에서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박희태 전 대표가 다른 경쟁자들보다 조금 앞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양수 전 의원과 송인배 전 비서관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구도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측에서는 이를 근거로 ‘1강 2중 2약’이라고 판세를 분석했다. 다자 구도가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큰 변화가 없는 한 당선을 자신하는 모습이다. 선거 구도도 결국 한나라당 대 민주당 대결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반면, 다른 후보측은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김 전 의원측은 절반에 가까운 무응답층의 표심 대부분이 박 전 대표에게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장군은 박희태, 병사는 김양수에게 있다’라며, 지난 4월 치러진 경주 재·보선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선거 결과는 박빙으로 나왔던 여론조사와는 달리 실제 무소속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며 당선되었다.

송 전 비서관측도 “무응답층이 50%에 이르는 것은 ‘박희태 카드’가 불안하다는 의미이다”라고 해석했다. 한나라당 후보이면 무조건 당선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당에 대한 지역 민심도 예전처럼 부정적이지 않다고 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민주당 지지도는 상당 부분 올라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빠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서지는 않았다는 지적이다. 제3 지대에 머무르고 있을 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박빙의 상황에서 결국은 막판 후보 단일화 여부가 최대 변수로 꼽힌다. 각 후보 진영도 상황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지켜보고 있다. 단일화 가능성은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뉜다.

먼저 흩어져 있는 한나라당 성향의 후보들이 단일 대오를 형성할 수 있느냐이다. 박희태 전 대표측은 김양수·유재명 두 후보자가 출마의 뜻을 접고 여당 후보를 지지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경우 당선은 떼놓은 당상일 수 있다. 박 전 대표측은 “모두 끌어안고 가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라며 투표 전날까지 설득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두 후보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 후보 단일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비한나라·비야권 후보 단일화’인 셈이다. 정세영 전 양산시의회 의장 등 지역 인사들이 ‘무소속 후보 단일화추진협의회’를 구성해 논의에 들어간 상태이다. 그러나 두 후보 간에도 의견 차이가 있어 단일화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유책임연구원은 ‘양산 출신 무소속 후보’로 한정해 단일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부산 출신인 김 전 의원을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갈래는 야권의 두 후보인 송인배 전 비서관과 박승흡 전 대변인의 후보 단일화 여부이다. 공식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현실화할 경우 선거 판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나라당측도 두 후보의 단일화 여부를 마지막 남은 변수로 여기는 분위기이다. 현재 두 후보의 지지도를 합하면 20%대 중반 정도이지만, 상승 효과가 나타날 경우 30% 선은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양당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단일화 여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단일화를 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독자 노선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일단 후보 등록을 마치고 각자 지지도를 최대한 끌어 올린 후에나 단일화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까지 고려한 공조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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