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 ‘밤의 사장’이 있다?
  • 김세옥 | 기자 ()
  • 승인 2009.10.2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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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도 갈수록 추락…일부 방송인 퇴출에도 의혹의 눈초리

▲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이병순 KBS 사장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KBS에 밤의 사장이 군림하고 있다는 얘기가 방송가에 나돌고 있다.” 지난 10월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KBS 국정감사에서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이병순 사장에게 이같이 질의했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KBS 2TV <스타골든벨> MC에서 방출된 경위를 따지면서다.

잠시 틈을 두던 이사장은 곧 “밤에도 TV를 열심히 보고 있다”라고 답했고, 좌중에서 웃음이 터지면서 팽팽했던 분위기도 일순간 누그러졌다. 이사장이 정말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밤의 사장’을 거론한 전의원의 질문에는 지난 1년 동안 ‘낙하산 사장’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KBS의 현실이 그대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가시적인 현실은 KBS 신뢰도의 추락이다. KBS는 지난 2001년 <시사저널>의 언론 매체 관련 전문가 여론조사에서 조선일보를 누르고 영향력 1위에 오른 후, 지난 2003년부터 지난 2008년 6월까지 가장 신뢰받는 언론사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이사장 취임 1년째를 맞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우선 미디어법 개정 논의를 위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에 설치되었던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KBS의 신뢰도는 17.6%로 MBC(20.9%)보다 낮게 나타났다. 지난 8월 <시사IN> 조사에서도 KBS는(29.9%) MBC(32.1%)에 이어 신뢰도 2위를 기록했다. 같은 달 <시사저널>과 한국기자협회 조사에서는 MBC, 한겨레에 뒤진 3위로 추락했다.

지난 5년 동안 굳건했던 KBS의 신뢰도가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장세환 민주당 의원은 10월 초 국감을 앞두고 공공미디어연구소와 공동 작업한 정책자료집에서 “KBS 신뢰도 추락의 원인은 전국의 기자들을 상대로 진행한 기자협회 여론조사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응답자의 54.8%가 이사장 취임 이후 KBS의 보도가 불공정해졌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방송의 신뢰도를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는 보도 프로그램, 그중에서도 간판 보도 프로그램인 1TV <9시 뉴스>의 시청률도 이사장 취임 이후 하락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발표한 ‘KBS <9시 뉴스> 시청률 비교’ 자료에 따르면, 이사장 취임 이후인 지난해 8월부터 지난 7월까지 <9시 뉴스>의 평균 시청률은 14.8%로, 정연주 전 사장 재임 기간인 2007년 9월~2008년 7월 사이 평균 시청률(16.7%)보다 낮았다. 

KBS의 한 PD는 “방송이 사회의 공기라는 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신뢰도 1위라는 위치가 얼마만큼 중요한 가치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방송 민주화투쟁 이후 어렵게 찾은 ‘국민의 방송’이라는 위치가 이병순 사장 취임 1년 만에 무너졌다는 사실은 결코 쉽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라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하지만 정작 이사장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 지난 9월23일 국회 문방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이사장은 신뢰도 하락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추궁에 “언론재단에서 격년으로 신뢰도 조사를 하는데 2006년과 2008년에 이어 내년에 시행하는 만큼, 객관적이고 공정한 결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하면서 신뢰도 하락 자체를 부정했다.

이에 민주당의 장세환·서갑원 의원 등은 “그동안 언론재단과 다른 언론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타 언론 기관의) 자체 조사가 아닌 여론조사 전문 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 결과인 만큼 이사장의 변명은 타당성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KBS 안팎에서는 신뢰도 추락 현실을 탄식하고 있지만 이사장은 되레 ‘색깔 빼기’에 골몰하는 분위기이다. 지난해 취임 직후 폐지된 <생방송 시사 투나잇>의 후속 프로그램인 <생방송 시사360>마저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등 현 정권이 불편해하는 행사의 사회를 보고 쌍용차 사태 등에 소신발언을 해 온 소셜 엔터테이너(Social Entertainer) 김제동씨도 <스타 골든벨>에서 갑작스레 하차시켰다. KBS는 지난해에도 진보 성향으로 꼽히는 방송인 윤도현씨와 시사평론가 정관용씨를 프로그램에서 돌연 하차시킨 바 있다. 

정권 요구 ‘알아서’ 맞추고 있다는 지적 나와

그래서 다음 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이사장이 ‘무색 KBS’에 대한 정권의 요구를 ‘알아서’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병헌 의원은 “방송 장악을 위해 (정권이) 설치한 지뢰가 모습을 드러내며 여기저기서 지뢰 매설물이 폭발하고 있다. 마이크 통제, 화면 통제를 강화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반민주적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라고 탄식했다.

하지만 정작 KBS 구성원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조용하다. KBS 특유의 조직 문화에 더해 지난해 정연주 전 사장 해임을 비롯한 권력의 압박 속 보도의 연성화와 함께 직접 행동마저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KBS 구성원들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한계는 명확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지난 10월14일 미디어행동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 KBS에서 일어나는 비정상적 일들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축소판인데도 KBS 내부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KBS 구성원들이 이익 집단화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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