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시인] 현실 놓치지 않는 작가를 이 시대는 바라고 있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10.2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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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수씨, 최근 펴낸 소설집 인기와 함께 가장 주목받아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 등 역사소설이 한때 번성하고, 지난해와 올해 여성 작가들이 쓴 ‘위로의 편지’에 독자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며, 그것이 문학의 흐름인 듯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던가. 한 출판 평론가는 몇 년 동안 문학 분야에서 출판의 흐름을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국내 문학 분야가 침체되었다고 말했고, 신진 작가들은 출판계의 현실에 절망하고 분통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문학평론가인 유종호 예술원 원장은 지난해 제1회 동아시아 문학 포럼에서 문학 독자의 현격한 감소를 예로 들어 “문학의 존속이 가능할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동아시아 3국에서 문학이 쇠퇴하고 있다며, 낭만주의 시대 주류였던 시가 변두리로 밀려났듯 본격 소설도 주변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유원장은 “이러한 새로운 환경 앞에 문학인들의 선택은 현재의 문화적 포퓰리즘에 굴복할 것인지 비판 정신으로 무장한 기존의 문학 전통을 이어나갈 것인지 기로에 놓여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문학 현장은 ‘소망이와 희망이, 그리고 절망이’가 함께 섞여 갈팡질팡하며 혼돈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의 본질에 충실하고, 문학이 이 사회에 기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젊은 작가들은 어떤 형태로든 작품 활동에 임하고 있었다. 이 사실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인지 올해 차세대 인물 1, 2위에 오른 두 문학인은 베스트셀러 작가는 되지 못했어도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온 소설가와 시인이었다.

차세대 인물로 가장 많이 지목된 작가는 소설가 김연수씨였다. 김씨는 지난 1월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최근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내고 이전과 사뭇 다른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씨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국민 작가’가 되기보다는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독자들을 겨냥한 작품들만 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에게 국내 문학에 위기라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인생만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하지만 복잡하다고 해서 회피할 수는 없는데도, 귀찮다는 이유로 다들 회피하려고 든다. 최대한 복잡한 일들에 직면하는 시기를 늦춘다. 이런 식의 회피가 일반화되면, 사람들이 깊이 있는 문학을 외면하기 쉽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의 위기란 그런 것이다. 인생이 점점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데도 그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실대로 표현해야만 하는 소설 같은 것을 읽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회피해도 소설가는 회피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소설가는 엇나가는 인생에 대해서 사실대로 써야만 한다”라면서 자신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고 또 소설로써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김씨를 바짝 추격하며 2위를 차지한 문태준 시인. 공교롭게도 김연수 작가와 같은 경북 김천 출신인 데다 중·고교 동창생으로 잘 알려져 눈길을 끈다. 최근 문시인의 산문집 <느림보 마음> 출간 기념 북콘서트에 김연수 작가가 등장해 우정을 확인했다. 문시인은 “김연수 작가가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 자랑스럽다. 축하한다”라며 김작가와는 허물 없이 지내는 친구라고 말했다. 문시인은 지난해에도 상위권에 포함되었는데, 지난해 차세대 인물 공동 1위를 차지했던 두 여성 작가보다 많은 지지를 얻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드물게 같은 수의 지지를 얻어 공동 1위에 올랐던 신경숙·공지영 작가는 올해 조금 적은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기는 올해도 식을 줄을 몰랐다. 신경숙 작가는 지난해 말에 펴낸 장편 <엄마를 부탁해>가 100만부 판매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3개월 이상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켰던 그 책의 흥행으로 봄과 여름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한편, 공지영 작가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연재해 화제가 되었던 장편 <도가니>를 출간해 큰 호응을 얻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건재함을 증명해 보였다.

문학이 처한 현실을 말해주듯 크게 눈길 끄는 신진 작가는 없어

그 밖에도 안도현 시인, 김영하 소설가, 성석제 소설가, 박민규 소설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차세대 인물로 꼽혔다.

안도현 시인은 따로 시집을 엮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방면에서 글쓰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안시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 국장 때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노제에서 자신이 쓴 조시를 직접 낭송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영하 소설가는 지난 1월에 산문집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펴내 각국을 여행하면서 성찰한 것과 내밀한 고백을 들려주었다. 몇 년째 여행기를 내면서 여행의 의미와 참맛을 전하는 작가로도 통하고 있다. 성석제 소설가는 자신만의 문장론을 담은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을 정리해 올해 초 펴냈다. 여러 매체에 글쓰기 또한 빠지지 않아 그의 입지는 올해도 견고했다고 볼 수 있다. 박민규 소설가는 최근 소설 <근처>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지난 7월 펴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뽑힌 차세대 인물 중에서 새롭게 이름을 올린 문인은 함민복 시인, 이승우 소설가, 공광규 시인 등이다.

함민복 시인은 최근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펴내 주목을 받고 있고, 지난 7월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를 펴내 어린이들의 사랑도 받았다. 이승우 소설가는 지난해 말 소설집 <오래된 일기>를,  공광규 시인은 시집 <말똥 한 덩이>를 펴내 눈길을 끌었다.

신세대 작가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새로운 형식을 거론하며 문학의 위기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출판과 문학을 따로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출판인과 생존과 도약을 꿈꾸는 일부 작가들은 절망을 느끼고 있다.

외국 유명 작가에게 거액의 선인세를 주면서 국내 작가들에게는 출판계의 현실을 들어 적은 액수조차 깎으려 드는 환경에서 국내 작가들이 책을 내고 싶은 의욕이 생길 리 만무하다. 국내외 유명 작가들만 연명할 수 있는 풍토에서는 차세대 문학인은 물론 신인들의 분투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소설가와 시인이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한 분야의 지식인으로 자부심을 가지던 시대는 지나간 것일까. 소설가 지망생, 시인 지망생이 그런 대로 존재의 이유를 가질 수 있었고, 가난하다 해도 그들이 세상의 소금이요,  빛일 수도 있었던 시대가 손에 잡힐 듯한데, ‘절망이’를 닮은 한 문인은 월간 문예집에 단편을 기고해 받은 원고료 30만원을 들고 나타나, 소주 한 잔 마시고 닭발 뜯으며 성토했다. 지난해 국내 전업 작가들의 평균 수입을 조사한 한 통계에 따르면 평균 월소득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말이다.


▲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3년 를 통해 데뷔. 대산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수상.
지난해 두 여성 작가가 공동 1위에 올랐는데, 그들을 제치고 두각을 드러냈다. 독자들의 사랑이 느껴지는가?

내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누군가 내 소설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최근 신작이 이전 작품들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전 작품과 다른 점이라도 있어서인가?

잘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야심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예전 작품들을 쓸 때는 꼭 이루어내고 싶은 것들이 하나씩 있었다. 새로운 단어를 많이 쓴다든가, 유려한 문장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거나, 역사적인 사건들에 도전한다거나. 하지만 이번 단편집에 실린 단편들은 그냥 쓰고 싶어서 쓴 것들이다. 그렇게 하니까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소설집에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고민한 것들이 눈에 띈다. 특히, ‘용산 참사’와 관련한 내용이 있더라.

이것도 그냥 쓰고 싶었다. 용산 참사는 나 자신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나 또한 사회의 일원이니까 그 일이 그대로 잊혀지지 않도록 뭔가 기여하고 싶었다.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도 블로그를 만들어서라도 글을 썼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가 보는 눈앞에서 어떤 사람들이 공권력에 의해 죽어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변했다는 사실만은 말하고 싶었다.

16년 전 시로 등단했다. 등단할 때와 지금의 작품을 비교해 변한 것이 있나?

많이 바뀌었다. 바뀌는 게 맞는 것 같고. 등단할 때는 새로운 문학을 하고 싶었다. 문학 하면서 폼도 잡고, 멋도 내고 싶었으니까. 머리도 기르고, 이상한 말도 많이 하고, 괴상한 이야기들도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문학 하면서 폼도 잡고 멋도 내는 일이란 그 시점에서 자신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을 쓰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고의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면 다들 느끼겠지만, 내가 얼마나 하찮은 소설가인지 알게 된다. 매번 한계를 느끼는데, 창피해서 그만 쓰고 싶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생각들이 나를 좀 살려주는 것 같다.

사회가 양극화하고 있다. 논객들도 보수와 진보로 극명하게 갈리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정부는 ‘중도 실용’을 내세우기도 한다. 작가의 입장은 어떤가.

이 정부가 들어선 뒤에 사람들은 이 나라는 권력과 부가 있으면 다른 모든 것을 거머쥘 수 있는, 승자 독식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별로 좋지 않은 사회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 입장이다. 권력과 부가 있으면 반드시 관용도 함께 가져야만 한다고 말하는 쪽에 서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를 쓰고 나서 좋아한 소설이라고 말했다는데, 지금의 30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생에서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가장 낮았을 때가 바로 서른 살 무렵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시작하려고 보니까 완전히 밑바닥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밑바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밑바닥을 확인한 뒤로는 어쨌거나 좋아지고 있다. 다시 거기까지 내려가지 않는 한, 그때보다는 좋은 상태 아닌가. 그래서 서른 살들에게, 비록 그들의 손을 잡아서 위로 끌어주지는 못하지만, 그 나이에는 아무리 아래로 내려간다고 해도 괜찮다고, 먼저 지나온 사람으로서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 작품 세계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지난 몇 년간 사회가 마냥 개선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사회적으로는 이렇듯 비전이 암담하니까 개인적으로는 좀 더 낙천적인 소설을 쓰고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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