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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 실력자 내고 현 정부 실세도 다수 배출

이춘삼 | 편집위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11.24(Tue) 17: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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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경북 지역 인재들의 요람으로 꼽히는 경북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제공


1969년 6월 어느 날 밤. 막 잠자리에 든 신현확씨(당시 경제과학심의회 상임위원, 49세)에게 청와대 비서실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부총리에 내정되었다”라는 전갈이었다. 신현확씨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김성곤 의원은 야심한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달려갔다. 신현확씨와 동문 수학한 사이이자 오랜 지기인 김성곤 의원은 쌍용의 사주이면서 공화당 재정위원장을 맡고 있어 발언권이 센 인물이었다. “쌍용이 든든해야 당 재정이 튼튼해질 수 있다. 지금 쌍용이 흔들리고 있다. 쌍용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신현확밖에 없다. 신현확을 내게 달라. 정부에는 나중에 불러다 써도 되지 않느냐.” 이런 김성곤 의원의 진언이 받아들여져 인사 내용은 밤 사이 뒤집혔고, 부총리 자리는 경제수석이었던 김학렬씨에게로 돌아갔다.

이승만 정부 말기에 이미 부흥부장관을 지낸 신현확씨는 4·19와 5·16을 거치면서 부정 선거와 관련해 책임을 졌다. 세간에서는 이승만 정권의 국무위원 18명 중 여덟 명을 ‘8인의 원흉’이라고 불렀고, 그는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2년 넘게 수감 생활을 한 그는 1964년 8·15 때 특별 사면되자 곧바로 박대통령에게 불려갔다. 같이 일하자는 박대통령의 권유에 그는 “내가 이른바 ‘8인의 원흉’인데 정권 초기에 나를 쓰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다”라며 고사했다. 박대통령이 “그렇다면 바로는 못 도와줘도 옆에서 도와달라”라고 간청해 경제과학심의회 상임위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부총리직에서 면탈(?)이 되고 쌍용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은 신현확씨는 김성곤 의원에게 수락의 조건으로 모든 계열사의 대표이사 인감을 맡겨줄 것을 요구했다. 사주 및 친인척의 간섭을 배제한 가운데 경영에 몰두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4년여에 걸친 각고 끝에 쌍용을 정상화시켜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 후 9대 국회에 진출했고(공화당, 구미·칠곡·군위·성주·선산) 1975년 보건사회부장관에 취임했으며, 마침내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에 올라 10·26 사건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 12·12로부터 이듬해 5·17 신군부 쿠데타 때까지 총리직을 역임했다.

   

“경상도 정권 용어 맨 먼저 사용한 이는 이효상 전 국회의장”

신현확씨는 경북 칠곡에서 태어나 경북고의 전신인 대구고보와 서울대 법대 전신인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한 뒤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상무성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39세에 장관(부흥부)으로 발탁된 자유당 시절부터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관직을 두루 거쳤고 정·재계에도 큰 영향력을 미친 그는, 10·26 때는 기세등등한 김재규를 눌러 사태를 반전시켰으며 신군부 세력에게도 할 말을 했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까닭은, 그가 대구·경북(TK) 출신의 원로로서 대접을 받았고 ‘TK 마피아의 보스’라는 칭호를 들었을 정도로 당시 그 지역을 대표했던 인물로 치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TK 마피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일 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 이래로 대구·경북 지역 출신들은 권력의 핵심에서 주류 세력을 형성해왔고, 그에 비례해 한국 사회에서는 ‘경상도 정권’을 비판하는 소리도 함께 높아져갔다. 그 TK와 경상도 정권의 관계를, KBS 보도국장과 내외경제신문 사장을 지낸 최서영씨는 자신이 쓴 책 <내가 본 현장, 여울목 풍경>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18년 동안 계속된 박정희 정권을 흔히 ‘경상도 정권’이라 했다. 박대통령이 경상북도 출신인 데다, 정권의 주요 실세들이 대부분 경상도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상도 가운데서도 경북·대구를 중심한 인맥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TK(대구·경북)’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경상도 정권이라는 말을 맨 먼저 사용하면서 경상도 사람들에게 박정희 정권의 지지를 호소했던 사람은 바로 국회의장을 지낸 한솔 이효상씨였다. 그는 1971년에 있었던 7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북 지방 유세를 통해 “솔직히 말해 지금 정권은 경상도 정권 아닙니까. 그러니 경상도가 안 밀어주면 누가 밀어주겠습니까?” 하면서 압도적 지지를 호소하고 다녔다. 이때 박대통령은 3선을 금지한 헌법을 고쳐가면서 출마했기 때문에 여당 안에서도 반대파가 생겼고, 야당들이 3선 출마에 일제 사격을 하고 있어 고전을 면치 못할 때였다. 이효상씨는 ‘경상도 정권’이라는 말이 지방색을 자극해 국민을 분열시킨다는 비판을 인정하면서도 인구 비율로 보아 경상도에서 몰표만 나온다면 선거에 이길 수 있다고 계산한 듯했다. 이 전략은 단기적으로 보아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정치를 괴롭히는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다. 어떤 책략가는 이것을 역이용해 ‘전라도 푸대접’을 들고 나와 호남표를 싹쓸이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충청도 핫바지’론을 외치면서 지역당을 만드는 데 성공하는 등 지방색은 이제 불치의 한국 정치병으로 악화되었다. 과거 제1공화국과 5·16 이전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다.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에서 출마해 당선된 일이 있었고 반대로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서 당선된 일도 있었다. 또, 정당 지지자가 지방별로 편중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나라가 경상도와 전라도로 편 가르기가 생긴 것은, 물론 어느 한 사람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6·25 전쟁 때 정부가 피란 다니면서 의지했던 지방이 경상도였고, 그 뿌리에서 자라난 가지들이 줄곧 중앙 정계를 지배한 데서 나온 결과였다. 그러나 이효상씨의 발언은, 정치하는 사람은 농담으로라도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일러준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재계에서는 김성곤-김준성-정수창 ‘두각’

최씨의 이 지적처럼 1971년 대선 이후 역대 선거에서 지역 분할 현상은 한국 정치에서 고질처럼 자리 잡게 되었고, 그 후유증은 지역 감정이라는 폐단으로 나타났다. 지금도 영남권에서는 민주당 등 야당 의원이, 호남권에서는 한나라당 의원이 거의 나오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고 김성곤 의원은 대구·경북이 낳은 또 하나의 거목이다. SK라는 애칭으로 불린 성곡 김성곤 의원은 그가 했던 모든 일에 ‘大’자를 붙여야 제격이라 할 만큼 큰 인물로 평가받는다. 대정치인, 대실업가, 대언론인, 대문화·육영사업가, 대스포츠맨이 그것이다. 1971년 이른바 항명 파동에 이은 공화당 ‘4인 체제’의 붕괴와 함께 정계를 떠난 성곡은 다양한 분야에서 족적을 남겼다. 은행원 경력과 구멍가게 같은 비누 공장 운영으로 큰돈을 번 그는 방직 공장(금성방직)을 세웠고,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5백60만t 규모의 생산 시설을 갖춘 시멘트 공장(쌍용양회)을 차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동양통신 창간과 연합신문 인수, 고려화재해상보험 경영, IPI(국제신문편집인협회) 참여, 국민대학 인수에 이어 대한유도회장 피선, 성곡언론재단·성곡학술재단 설립, 고려대 교우회장 피선, 대한상의회장 피선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그의 뒤를 이을 만한 재계의 인물로는 김준성 전 부총리나 정수창 전 두산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신현확씨와 1920년생 동갑인 김준성씨는 대구고보와 경성고상(서울대 상대)을 나와 광복 직후 대구에서 메리야스 공장을 차렸다. 1967년에는 대구 지역 상공인들의 힘을 모아 국내 최초의 지방 은행인 대구은행을 설립해 초대 행장을 지냈다. 이후 제일은행장, 외환은행장과 산업은행·한국은행 총재, 은행연합회장을 역임하며 금융인으로 활동했다. 5공 때인 1982년에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맡아 연 20~30%의 고물가를 한자릿수로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 바 크다. 

정수창씨는 박씨 성을 가지지 않고 두산그룹 회장 자리에 오른 대표적인 전문 경영인이다. 경성상고를 졸업하고 동양맥주에 입사하면서 두산가와 인연을 맺은 그는 대한상의 회장도 지냈다. 이동찬 코오롱 그룹 명예회장(포항)은 1957년 부친인 이원만 선대 회장과 함께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설립한 후 오늘날의 코오롱그룹을 만들었다. 평소 그림에 조예가 깊은 이회장은 지난 4월 미수(米壽)를 맞아 아끼던 작품 88점을 선보이는 ‘미수전’을 열였다. 고희전, 팔순전에 이은 세 번째 전시회였다.

   

차기 대권 주자군에도 TK 출신 여럿 포진

김수학 전 국세청장은 경주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주공립보통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가 경주군 서무과 고원(雇員)으로 출발해 서기, 주사, 사무관을 차례로 밟아올라가 내무부 지방국 과장·전남 부지사·대구시장·충남도지사·경북도지사를 지낸 후 국세청장까지 오른 것은 전례가 없는 기록이다. 팔순의 고령인 지금도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회 일로 분주하다. 기념사업회를 맡고 있던 신현확 전 회장과 뜻을 같이해 시작한 일이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금진호 상공부장관(영주, 대륜고-서울법대), 김복동 광업진흥공사 사장(청송, 경북고-육사), 금융계의 황제로 불린 이원조 은행감독원장(대구, 경북대), 정춘택 산업은행 총재(대구, 경북고-서울대 정치학과) 등 비슷한 나이의 인사들이 한 시대를 주름잡았고 황태자 박철언 전 체육부장관(성주, 경북고-서울법대)은 노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통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달성)는 지역 민심을 바탕으로 정치의 물줄기를 좌지우지할 만큼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로는 경주의 정수성 의원(무소속)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그 지역에 뿌리를 둔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로 채워져 있다.

이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포항 남·울릉)은 13~18대까지 내리 금배지를 단 6선 의원으로 국회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일의원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다.

재무부 근무 경력에 당 정책위 의장을 지낸 이한구 의원(경북고-서울대 경영학과, 대구 수성 갑),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낸 유승민 의원(경북고-서울대 경제학과, 대구 동구 을), 장덕진 대륙연구소장을 모시고 일한 경험이 있는 이병석 의원(동지상고-고려대 중문과, 포항 북) 등이 당의 두뇌로 꼽힌다. 주호영 의원(울진, 능인고-영남대 법학과)은 특임장관으로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영천, 경북고-서울대 경제학과)과 더불어 세종시 문제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광림 의원(안동농림고-영남대 경제학과, 안동)은 재경부 차관을 지낸 후 여의도에 입성했다.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복귀한 이재오 전 의원(영양, 영양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영일, 서울대 정치과)은 현 정권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대통령의 ‘경제 멘토’로 꼽히는 사공일 대통령 특보(군위, 경북고-서울상대)는 G20기획조정위원장으로 위촉되어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그 밖에 여성 장관인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장관(영천, 대구여고-영남대),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예천, 대창고-서울 상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대구, 연세대) 등이 행정부 내에서 눈에 띄는 인물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영천, 경북고-서울대 경영학과)는 대권의 꿈을 향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경주 출신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도 차기 주자로 꼽힌다.

현 정부 들어 첫 번째 대통령실장을 지낸 류우익 전 실장은 상주 출신으로 청계재단 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얼마 전에 주중 대사로 내정되었다. 그 자리를 물려받은 정정길 실장은 경북고와 서울 법대를 나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강의한 교수 출신으로 행정대학원장·대학원장을 거쳐 울산대 총장으로 재직하다가 이명박 정부의 두 번째 대통령실장으로 기용되었다. 1964년 한·일국교정상화에 반대했던 6·3 시위 당시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이었던 그는, 고려대 상대 학생회장이던 이대통령과 함께 100여 일간 옥고를 치렀으며 그 인연으로 그 뒤 6·3 동지회 멤버로서 꾸준히 친분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는 “학문만 하는 학자는 아니었다”라는 대학 동기생의 증언처럼 학계뿐 아니라 정·관·재계에서도 마당발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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